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획 | <디 워> 미국 개봉 결과는?
필름 2.0 | 기사입력 2007-10-09 04:40

말 많았던 <디 워>가 전미 개봉했다. 9월 14일 미 전역 2,275개 스크린에서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디 워>는 개봉 첫 주말 504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남겼다. 할리우드 시장 공략을 전면에 내건 <디 워>에 대한 현지 반응을 정리했다.

9월 14일(미국 시간) <디 워>가 드디어 개봉했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고 결과를 주목했던 <디 워>의 미국 개봉 규모는 2,275개 스크린, 흥행성적은 주말 3일 동안 504만 달러(약 46억 8천만 원,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 집계자료)다.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상으로 5위에 해당한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로만 따지면 닐 조단 감독의 <브레이브 원>, <미스터 우드콕>에 이어 3위다. 2,275개에 달하는 스크린 수를 고려했을 때 <디 워>의 첫 주 개봉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디 워>가 거둬들일 최종 수입은 1천만~1천5백만 달러 정도로 전망되고 있다. 개봉 후 언론, 평단의 평가와 관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다. 전체적인 반응은 차라리 ‘무관심’ 쪽에 가깝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첫 주

박스오피스 5위라는 표면적인 기록에 비해 <디 워>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조용하다. ‘야후 무비스’ ‘박스오피스 모조’ ‘IMDB’ ‘로튼토마토닷컴’ ‘버라이어티’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 영화 관련 저널들에서 <디 워>를 논한 기사나 평을 찾기는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출품된 허진호 감독의 <행복>을 더욱 크게 보도했다. 많은 한국 언론들이 미국 개봉 전부터 <디 워>의 개봉 스크린 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흥행 가능성을 점쳤던 풍경을 상기한다면 머쓱함마저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미국 현지의 썰렁한 반응들은 개봉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바다. 와이드릴리즈로 개봉하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개봉 전 <디 워>의 포스터나 광고, 홍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코리아타운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포스터나, 할리우드 근처 길거리 광고판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한국영화로서 길거리 홍보를 한 것도 <디 워>가 처음이지만, 미국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뉴욕타임스’ ‘빌리지보이스’ 등에 신문광고를 했지만, <브레이브 원>을 비롯한 경쟁 영화들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다.

<디 워>의 미국 배급을 담당한 배급사 ‘프리스타일’이 미국 평단이나 언론을 위한 시사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소문이 돌지도 않았다. 오히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경제면을 통해 <디 워>의 미국 상륙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배급사인 프리스타일이 여러 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다…스튜디오가 애국심 넘치는 한국 관객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와 같은 도시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의 이 기사 제목은 ‘한국영화를 미국시장에서 히트시키는 새로운 전략(New Tactics Aim to Make Korean Film a Hit in the U.S.)’이었다.

평단의 냉소

개봉 후 평단의 반응은 특히 냉담했다. 9월 18일 영화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평가가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에 올라온 <디 워>의 리뷰는 모두 19개. 같은 날 개봉한 <브레이브 원> 리뷰가 122개, <미스터 우드콕> 리뷰가 78개인 것을 감안하면, 주목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관객들의 설전이 오가고 있는 ‘야후 무비스’ 비평란(The Critics)에 올라온 글은 하나도 없었다.

평단의 냉담한 반응은 이 같은 '침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뜨거운 설전이 무색한 냉혹한 평가에서도 감지된다. <디 워>가 ‘로튼토마토닷컴’에서 기록한 신선도는 '21%'이다. <디 워>에 리뷰를 보탠 19명의 전문가 중 단 4명만이 영화를 신선하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점을 매기는 평가에서 <디 워>는 3.2점을 얻었다.

완성도를 시비하는 견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영화산업지 ‘할리우드 리포터’의 프랭크 쉑은 “위트와 스타일로 몬스터영화를 부활시킨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달리 심형래 감독은 가장 낮은 수준(Z단계)의 감각을 <디 워>에서 선보인다”고 일갈했다. 그의 평문은 “웃음이 나올 만한 이야기 구조와 귀에 거슬리는 대화, 싸구려 유머는 영화의 재미를 심각하게 감소시켰다”고 덧붙이고 있다. ‘보스턴글로브’의 웨슬리 모리스는 “거대한 뱀과 익조들이 LA 도심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영화가 볼만해지지만, 그 전까지는 누구도 이 우스꽝스러운 판타지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디 워>의 빈약한 전개는 전문성의 결여가 빚어낸 안타까운 상황이다.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 연기, 연출, 의상, 편집, 소품, 음악 등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평가는 계속 이어진다. ‘이필름크리틱’의 브라이언 오느도프는 “영화적 언어가 풍부한 한국에서 이런 끔찍한 영화를 만들면서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망치려고 하는가?”라고 반문했으며 ‘릴닷컴’의 짐 햄프힐은 “<디 워>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것들이 박살나는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출구에 있다. 물론 아주 멍청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결론적으로 그 자체의 얼빠진 아이디어에 치열하게 매달렸다는 것은 기묘하게도 칭송할 만하다”고 비꼬았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CG 완성도까지 도마에 올랐다. ‘릴닷컴’은 “훌륭한 CGI에 대해 호언장담했지만, <고질라>나 그와 비슷한 영화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문 중에는 일부 호의적인 대목도 있었다. ‘TV가이드’의 매이트랜드 맥도너프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는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영화이고 또 성인 관객들에게는 <고질라 10>을 떠오르게 하는 재미를 맛보게 하는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통하지 않은 메이드 인 코리아

평단은 확연히 냉소하고 있는 반면, 관객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야후 무비스’에 올라온 관객들의 평가는 ‘A’와 ‘F’로 명확하게 엇갈린다. “그래픽과 연기, 캐스팅 모두 훌륭하다”(아이디 bohomix), “놀라운 작품! 이 작품이 한국에서 왔다고?”(harvardmedlee), “이무기와 용의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이야기도 간단하면서 훌륭하다. 연출 또한 훌륭하다”(cheerhsw)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돈을 돌려 달라, 제발”(ajlilani), “D-wars는 F-wars로 불려야 한다”(dela929), “이야기도 없고, 연기도 나쁘고, 연출도 엉망이다. 영상도 삼류다”(dgib_99)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 정보사이트 ‘IMDB’에는 “특수효과는 좋았지만, 점프하듯 진행되는 이야기와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영화 전체를 망쳤다”(GAMMAKNIGHT), “컴퓨터 그래픽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았지만, 플롯과 연기는 끔찍했다”(Eye_of_Chaos)며 긍, 부정이 엇갈렸다.

<디 워>에 대한 미국 관객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배경을 살펴보면 이렇다. 국내에서 소위 ‘디빠’와 ‘디까’로 나윈 관객들이 영화를 두고 도를 넘은 설전을 벌였지만 미국은 이와는 맥락이 다르다. 국내에서 CG를 필두로 한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시비와 심형래 감독의 애국심, 그것을 이용한 마케팅이 논쟁의 초점이 됐다면 미국에서는 그런 이슈 자체가 없다. 있다면 ‘미국 관객’과 ‘한국 관객’으로 양분된다. ‘야후 무비스’에는 스스로 한국 관객임을 밝히고 영화에 대한 호의를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현지에서 영화를 본 한 한국 관객은 <디 워>를 “100% 완벽한 영화”(mrstudentoftheyear)로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 관객들은 이러한 평가에 반감을 표한다. “한국인들이여, 제발 그만 해”(cwebbkings)라는 글을 남긴 관객은 “이 영화는 영화역사상 최악의 영화”라고 평가하며, 최하 평가점수인 ‘F’를 줬다. ‘뉴욕타임스’에 글을 올린 한 관객은 “<디 워>에 관해 허위 리뷰가 정말 많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야후 무비스’에는 이 영화가 A+로 평가돼 있다”고 했다.

‘야후 무비스’에는 “한국 사람들, 보세요”라는 한글로 작성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리뷰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펠링도 문법도 틀린 영어로 글 올려봤자 오히려 더 방해하는 겁니다. 특히 글 시작을 ‘나는 한국 사람인데…’라고 쓰지 마세요. 미국애들 더 반감을 갖습니다. ‘최근 평가’(Most recent)로 해서 새로 올라온 글을 보니 미국애들은 평이 매우 안 좋네요. 나도 영화 보러 갈 때 여기 글들을 보고 참고해서 고르는데, 내가 그동안 본 영화평들 중에서 가장 안 좋네요.”(sammy0630). 이런 영향 탓인지 ‘야후 무비스’의 관객 평가도 초반에 비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인들의 맹목적인 밀어주기의 증거는 ‘박스오피스 모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디 워>에 대한 미국의 언론의 반응이 고요한 데 비해, ‘박스오피스 모조’의 ‘가장 인기 있는 영화’(MOST POPULAR)에서 <디 워>는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강국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야후 무비스’만 보더라도 올라온 관객평가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브레이브 원>보다 2배 가까이 많으며,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한 <미스터 우드콕>보다는 5배 가까이 많다. 이는 ‘IMDB’도 마찬가지다.

미국 개봉이 남긴 것

<디 워>의 미국 개봉이 남긴 것은 많다.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의 배급망을 타고 메이저 극장을 잡아 와이드릴리즈로 개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박스오피스 5위에 오른 것은 와이드릴리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무엇을 무기 삼아 굴지의 극장 체인을 뚫을 수 있었는지, 향후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부분이 있다.

시장성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도 필요하다. 사전 마케팅도 완벽하게 하지 않고 2,000개가 넘는 와이드릴리즈 방식으로 개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디 워> 같은 괴수 장르물은 현재로선 비디오, DVD 등 부가판권시장에서 더 효용성 있는 상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심형래 감독 본인의 말마따나 부가판권시장 수입이 2배가 넘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디 워>가 비디오나 DVD로 더 환영받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디 워>가 한국영화의 해외 시장 개척에 전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완성도에 대한 미국 평단의 가혹한 평가는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 심형래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미국인들 기호에 맞춘 영화가 그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심형래 감독이 미국에 알린 것은 ‘이무기가 한국의 전설’이라는 사실뿐이지, 본인이 이야기했던 한국문화가 아니다. 그들이 내린 평가에 '아리랑'이나 '이무기 전설'을 언급한 대목은 없었으며 할리우드를 흉내 낸 유사 상품 정도로 인식됐을 뿐이다. 미국 평단과 관객들이 <디 워>를 보면서 <고질라>나 <킹콩> <반지의 제왕> 등을 떠올렸다고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문화가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많은 이들이 바랐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여전히 변한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by 100명 2007. 10. 9. 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