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극장 '문닫거나 혹은 바꾸거나'

멀티플렉스 공세에 밀려 중앙극장도 폐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친구들끼리 일요일에 만나 영화 한 편을 보자고 의견을 모은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이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모처럼 온 가족이 나들이 삼아 극장에 가기로 한다. 이들의 발길이 가장 쉽게 향하는 곳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등 멀티플렉스다.

멀티플렉스가 관객의 발길을 붙잡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각종 카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쇼핑몰과 음식점이 바로 건물 위아래층에 붙어 있어 상영 전 시간을 때우기 좋다. 찾아가는 길이 쉽고 예매 시스템도 잘돼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점이 흠이지만 그래도 10개 스크린에 내걸린 영화 가운데 하나라도 골라잡을 수 있으니 허탕칠 일은 없다.

그쯤 되면 10~20대로서는 멀티플렉스가 없는 시대에는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고르고 어디에서 봤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의 엄마, 아빠는 어디에서 영화를 봤던가.

◇추억의 극장은 역사 속으로

서울 중구 저동에 위치한 40여 년 역사의 중앙시네마가 30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중앙시네마는 중앙극장이란 이름으로 사랑을 받다 1998년 3개 관으로 증설하면서 이름을 바꿨고 2000년 2개 스크린을 추가하면서 5개관으로 운영됐으나 다른 개별 극장들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에 손님을 빼앗겨 왔다.

그 사이 차별화한 프로그램으로 변신도 꾀했다. 지난해 말부터 월례 애니메이션 영화제 '애니충격전'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올 초에는 인디영화로 통칭되는 '작은 영화'로 극장의 색깔을 바꾸기 위해 본격적으로 인디영화 상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게 됐다.

지난해 서울에서 문을 닫은 극장은 관철동 시네코아, 논현동 시네마오즈, 동숭동 씨네유, 영등포동 연흥극장, 하계동 유토아시네마, 충무로 극동극장, 압구정동 씨네플러스 등이다. 여기에 올해 중앙시네마와 녹번동 도원시네마, 노고산동 그랜드시네마가 추가됐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도 '우리 동네 극장'은 하나둘 계속 폐관돼 말 그대로 추억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최백순 서울시극장협회 상무는 개별 극장들의 경영난에 대해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의 경우 '어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표현하면서 "중소극장으로서는 시설이나 이름(브랜드) 면에서 대형 극장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투자ㆍ배급도 함께 하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극장들에 비해 배급력에도 당연히 차이가 나서 작은 극장들은 입장료를 내릴 수도 없다"며 "앞서 협회에서 카드 할인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던 것은 요금으로 경쟁하면 안된다는 입장에서였다"고 덧붙였다.

◇멀티플렉스 아니면 '작은 영화' 상영관

지난 6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종로3가의 피카디리 극장은 프리머스시네마와 프로그램 위탁 제휴를 맺고 '프리머스 피카디리'란 이름을 새로 내걸었다.

단순히 상영관이 많다고 멀티플렉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랜드시네마는 7개관으로 관객의 선택을 보장해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올 초 문을 닫았다. 결국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은 유명 브랜드란 뜻이다.

개별 극장들은 아예 멀티플렉스가 외면하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제3세계 영화 등 '작은 영화'를 다루면서 특정 관객층을 겨냥하기도 한다.

이달 폐관하는 중앙시네마의 3개관은 스폰지하우스가 내달 1일부터 사용한다. 스폰지하우스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라스트 데이즈' 등을 배급한 영화사 스폰지가 운영하는 극장으로 그동안 종로의 시네코아를 새 단장한 2개관과 압구정의 씨어터2.0을 탈바꿈한 1개관을 꾸려오고 있었다.

윤범석 스폰지하우스 시네코아점 과장은 "시네코아점의 관객 점유율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력이나 프로그램 운영, 좌석 수 등 수익구조상 이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중앙시네마의 다른 1개관에는 한국독립협회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연다"고 말했다.

충무로의 대표 영화관 명보극장은 현재 곽경택 감독의 '사랑' 외에 중국의 어지러운 현대사를 반영한 영화 '여름궁전'과 일본색이 짙은 독특한 영화 '사쿠란', 올해 영화제 '시네마 디지털 서울'의 개막작이었던 '인랜드 엠파이어'를 상영 중이다.

멀티플렉스에 추석용 영화로 내걸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 코미디 영화는 없다. 작품성이 높은 영화로 손님을 맞겠다는 것. 앞으로는 질 높은 예술영화를 발굴해 본격적인 인디영화관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유현근 명보극장 팀장은 "비상업 영화, 즉 예술영화는 국내 개봉한 작품보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 훨씬 많고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손님을 끌 수 있는 이벤트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은 극장들이 사는 법

작은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시네코아의 전신인 코아아트홀은 1987년 문을 연 뒤 '중경삼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 수많은 히트작을 단독 상영하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1994년 적자로 폐관한 바 있다.

인디영화 팬이 어느 날 갑자기 늘어날 수 없지만 미로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 명동CQN, 하이퍼텍나다, 필름포럼, 씨네큐브 광화문 등 이미 자리를 잡은 극장이 많은데 더 생겨난다면 이미 정해진 관객 수를 나눠 갖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작은 극장들이 공략하는 것은 이미 형성된 관객층과의 긴밀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작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층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영화사 시네콰논이 운영하는 명동CQN은 일본 영화 전문 상영관을 표방하면서 최신 일본 영화를 소개해 왔다. 올 여름에는 '썸머 컬렉션-렛츠 퀴어'를 통해 각국의 퀴어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이달부터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함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회고전'을 시작으로 '일본 영화 걸작선'을 시작했다.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영화사 백두대간과 흥국생명보험이 운영하는 씨네큐브 광화문은 깔끔하고 세련된 시설로 개관 초기부터 입소문으로 관객을 확보해 왔다. 여기에 패밀리 레스토랑, 스파게티 전문점이 같은 건물에 있는 점에 착안, 새 개봉작이나 영화제의 관객 이벤트에 활용하고 있다.

한 인디영화 상영관 관계자는 "아트플러스를 중심으로 전국에서도 관객층을 넓혀가고 있으니 인디영화 상영관이 증가하는 현상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관객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고 기존 관객층이 두텁고 충성도가 높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7. 9. 27. 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