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그 이후 下) 일본편, 상품 아닌 문화의 다양성에 주목



[뉴스엔 이현우 기자]

일본에서 만나는 일본사람들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여전히 한류와 관련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대화거리가 된다. 한참 거품이 빠진 듯 하지만 여전히 한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대단히 큰 화두다. 하지만 우리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사실은 한류가 최고 열풍이었을 때조차도 한류가 일본 문화시장에서 주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류, 혹은 한국에서 수입된 대중문화는 일본에서 ‘또 다른’ 문화소비재였을 뿐이다. 다소 과소평가 하자면 한류는 ‘일본 아줌마’ 집단의 마나아적 소비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일본 문화시장이 규모는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한류가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박진영과 비의 미국 시장 진출은 꿈같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진영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착각은 버려라”고 충고하면서 “철저하게 미국화 하지 않은 문화상품은 미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고 단언했다.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박진영의 전략은 지극히 당연하다. 보아의 일본시장 성공 역시도 철저하게 일본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의가 조금은 불안하다. 문화적 성공이라는 것이 상업적 성공 만에 그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한류라는 말이 불편했던 이유도, 한류가 사실 문화교류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상품판촉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시장이든 미국 시장이든 그 시장을 정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재미없는 우리의 문화시장을 재미없게 만들까봐 걱정이다. 만약 이효리가 브리트니와 똑같다면, 비가 팀버레이크랑 똑같다면, 굳이 이효리나 비를 선택해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미국화가 지구화 되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극히 미국스러운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가볍고, 자극적이고, 쉬운 것이 전부가 돼버리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일이다. 오우삼의 할리우드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다운 나름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홍콩시절의 위대한 걸작들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우삼 팬들에게는 비통한 일이지 않은가.

문화선진국의 기준은 그 문화가 가진 스팩트럼이 얼마나 넓은가가 그 기준이 돼야 한다. 일본이 문화강국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까닭은 TV와 공연을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코다 쿠미 같은 가수들 때문만은 아니다. 굳이 주말 아카하바라 거리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 길을 걷다보면 어디서나 자신들만의 음악을 ‘들이대는’ 밴드들이 경찰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리 공연을 한다. 물론 그들은 돈을 벌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단지 하고 싶은걸 하는 것이다.

일본이 문화선진국으로 불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공존하며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소수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오타쿠 문화, 마니아적 문화들이 일본 문화시장 저변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것에 공이 크다. 서점에 가면 온갖 종류의 잡지들이 온갖 종류의 취향들을 대변하고 있다. 흔한 패션지, 요리잡지도 다양한 취향에 부응하며 공주 옷 전문지, 펑크스타일 전문지, 양고기 요리 전문지 등등으로 분화돼 있다. 또한 문신 전문지, 피어싱 전문지, 야쿠자 전문지, 총기류 전문지, 기니피그 전문지 등 상상할 수도 없는 잡지들로 가득하다. 또한 온갖 종류의 핸타이 잡지들이 한쪽 코너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성적 취향(?)에 따라 SM, 훔쳐보기, 동성애, 페티쉬 등등의 잡지를 선택할 수 있다.(물론 그중에는 매우 역겨운 종류의 것들도 있지만, 그들의 취향이 타인으로부터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우리가 목이 터져라 스크린 쿼터를 부르짖는 까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영화시장이 각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영화는 글로벌 문화시장에서 우리만의 미덕과 가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의 논리, 시장의 논리만이 문화시장의 기준일 때 문화선진국의 길은 먼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문화시장에서 독창적인 콘텐츠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공감한다면, 문화 시장과 그 환경을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by 100명 2007. 9. 19.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