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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에 굶주린 자'들을 굶겨 죽여라" | |||||||||||||||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7-09-18 05:45 | |||||||||||||||
세상을 바꾸는 '식탁 혁명', 로컬푸드 <4> [프레시안 샌프란시스코=강이현,여정민. 런던=강양구,전홍기혜/기자]
"1995년 열린 첫 번째 농민장터에는 농민 7명이 나왔다. 그 다음 주에는 14명이 왔다. '농민장터에 갔더니 좋더라', 이런 입소문이 돈 것이다. 지금은? 5시간 동안 진행되는 농민장터에 매대만 44곳이 설치된다. 매주 약 3500명이 이곳에서 먹을거리를 구매한다." 캐나다 밴쿠버 농민장터협회 타라 맥도널드 사무총장은 지난해 매출 추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를 보여줬다. 지난해는 1995년부터 시작된 밴쿠버 '이스트 밴쿠버 농민장터'의 매출액이 가장 많았던 해다.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농민장터의 연간 매출액은 120만 캐나다달러(약 11억 원)였다.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농민장터(farmers market)'가 최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2000년 8억8800만 달러(약 8880억 원)였던 미국 농민장터 매출액은 2005년 10억 달러(약 1조 원)를 돌파했다. 1970년대 중반 약 300곳이었던 미국 농민장터의 수는 30년 만에 4300곳이 되었다. 매주 열리는 시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오가며 장을 본다. 이들은 왜 농민장터에 몰리는 걸까? 농민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장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Ferry Building)'. 한때 연간 5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여객선터미널이었던 이곳에서는 1992년부터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농민장터가 열린다. 토요일 하루에만 1만5000명이 다녀가는 이 농민장터는 이미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에서 20여 종이 넘는 복숭아를 파는 리사 카쉬와즈(38) 씨. 며칠 전 버클리 농민장터에서도 그를 본 터라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복숭아 시식을 권하는 그의 손길이 분주했다. 농장 인근의 80곳의 농민장터를 다니면서 복숭아를 팔고 있는 그는 "유기 농업으로 재배한 복숭아의 인기가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농민장터 보급에 앞장서온 '에콜로지 센터(Ecology Center)'의 벤 페오드만 대표는 "이곳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농민이 캘리포니아 지역, 그 중에서도 약 200마일(300㎞) 이내에서 직접 기른 것"이라며 "참가를 원하는 농민이 많지만 장터의 규모가 작아서 받아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페오드만 씨는 "농민장터를 찾는 농민은 다른 농민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두면서 유기 농업과 같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더 관심을 가진다"며 "그러나 이들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생계를 꾸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농민장터가 농민에게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준다는 얘기다. 페오드만 씨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소농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며 "먹을거리를 대량 생산하는 대농은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줄어드는 농민 몫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농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사정 탓에 농민들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할 수 있고 더 많은 몫을 챙길 수 있는 농민장터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농민장터 단골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농민장터를 찾는 소비자의 발길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맥도널드 총장은 "첫 번째 농민장터가 열린지 3년이 지나자 조금 먼 지역의 주민이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장터를 열고 싶다고 했다"며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2곳에서 농민장터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은 농민장터를 유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기도 한다. 버클리 농민장터는 그렇게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시작된 곳이다. 주민 스스로 유치한 농민장터이다 보니 판매하는 먹을거리 규제도 엄격하다. 버클리 농민장터에서는 미국에서는 아주 흔한 유전자가 조작된 먹을거리(GMO)가 반입될 수 없다. 영국 에섹스대학교 줄스 프리티 교수는 "농민장터는 농민이 받는 몫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며 "농민장터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로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소비자도 더 싼 가격에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영국의 사례 연구는 농민장터의 먹을거리가 대형 할인점의 것보다 더 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농민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페오드만 대표는 "우리가 언제나 가격을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며 "유기 농업으로 생산된 먹을거리가 아니더라도 더 싸면서 질이 좋은 것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서 농민들이 신경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싼 값에 질 좋은 먹을거리를 구매한 소비자는 결국 농민장터의 단골이 된다. 프리티 교수는 "농민장터는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 판매 전 과정을 통제하는 초국적기업이 가져간 몫을 다시 농민이 되찾아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며 "또 지역의 농업을 지원할 의도를 가진 시민이 동참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농민장터의 의의를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국적기업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던 농민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슈퍼마켓을 탈출한 소비자, 농민과 연대하다 농민장터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 9월 2일 영국 <타임스>는 "슈퍼마켓을 탈출하라, 전자레인지를 버려라! 농민장터에서 당신의 먹을거리를 구하라"라는 부제를 단 농민장터 기사를 내보냈다. 즉석식품과 냉동식품, 수입농산물에 질린 도시인에게 농민장터는 지역 먹을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농민장터가 단순히 먹을거리를 찾는 공간만은 아니다. 영국 런던농민장터협회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런던 시민이 농민 장터를 찾는 첫 번째 이유로 "런던 인근 지역 농민과의 연대"를 꼽았다. "신선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구매할 수 있어서"라는 답은 그 뒤를 이었다. 농민도 마찬가지다. 페오드만 씨는 "처음 농민장터의 목적은 먹을거리 운송에 쓰이는 비용을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이제 농민들도 더 질 좋은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지역 사회에 공급한다는 책임 의식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 메를리본 농민장터에서 만난 로라 빌(35) 씨는 방금 산 사과를 안고 있는 아이에게 바로 먹였다. "농약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빌 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게 걱정되면 농민장터에 굳이 올 리가 없다. 유기 농업으로 생산한 사과가 확실하다." 그런 사과를 먹고 자란 아이 역시 지역 먹을거리의 든든한 지지자가 될 수밖에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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