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111>태국 수코타이
세계일보 | 기사입력 2007-06-29 10:18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450㎞ 올라가면 수코타이란 도시가 나온다. 수코타이란 ‘행복의 새벽’이란 뜻으로, 수코타이 왕조는 태국 최초의 독립국가였다.

타이족은 그전까지 현재의 캄보디아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앙코르 왕국에 조공으로 성스러운 물을 바쳐야 했는데, 그 물은 앙코르 왕국이 의식에 사용했다. 그러나 많은 물을 항아리로 나르다 보니 자꾸 깨져, 타이족은 대나무를 이용한 용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자 타이족의 지혜로움을 두려워한 앙코르 왕국은 용맹스러운 장군을 보내 공격했고, 프라 루앙이란 사람이 이를 물리치고 수코타이 왕조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람캄행은 왕국의 영토를 열 배나 확장시켰고, 타이 문자를 만들었으며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또한 중국을 직접 방문해 도자기 굽는 법을 전수받는 등 문화 교류에 노력하며 왕국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종교에 빠져 나라는 점점 기울어졌고, 그들의 속국에 속했던 남부의 아유타야에서 일어난 왕조에 밀리게 되니 수코타이는 15세기 중반부터 황폐하게 된다. 새로 일어난 아유타야 왕조는 18세기 후반까지 번성했고, 그 뒤를 이은 차크리 왕조가 현재의 수도 방콕으로 옮긴 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태국의 역사 속에서 태국인들은 수코타이를 마치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고도로 사랑하고 있다. 도시는 평화롭고 고즈넉해서 또 다른 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코타이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예스런 수코타이의 진면목을 보려면 구시가지에 있는 역사공원으로 가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는 수코타이 시대의 모든 유적이 복원되어 있다.

매표소를 통과해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은 연잎이 가득한 연못이다. 연못의 이름은 뜨라팡통(황금연못)이고, 연못 안의 섬에는 뜨라팡통 사원이 있다. 이 사원에는 부처님의 발자국이 새겨진 돌이 보존되고 있으며, 이것을 기리기 위한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역사공원 안에는 이곳 말고도 많은 연못이 눈에 띄고, 연못 안의 조그만 섬에는 뜨라팡 응은(은 연못) 사원 등이 있다. 사시 사원 역시 연못 안에 있는 섬에 세워졌는데, 커다란 스리랑카 양식의 탑이 남아 있다. 이 연못들은 번뇌에 가득 찬 속세와 불상이 모셔진 피안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수코타이 역사공원은 다른 번잡한 유적지와는 달리 한적한 곳이라, 천천히 거니는 시간 자체가 큰 기쁨이 된다. 그러나 마하탓 사원과 옛 왕궁터를 보게 되면 그 장엄함에 작은 충격을 받는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처럼 하늘 높이 빽빽이 늘어선 높고 거대한 열주들을 바라보는 순간,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것 같은 태국 불교 유적지에 대한 이미지가 깨져 나간다.

마하탓 사원은 왕실이 참배하던 불교사원으로, 근처에는 왕궁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주변은 물이 가득한 사각형 형태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계단 높은 곳에 모셔진 불상을 감상하고 이곳저곳 남겨진 유물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지만, 오랜 세월 속에 바래진 터를 이리저리 거닐며 수백 년 전에 이곳에서 행해졌을 의식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마침 이곳을 방문했을 때가 석양이 세상을 붉은 빛으로 물들게 하는 시간이라면 그 황홀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연꽃이 가득한 연못.

수코타이는 태국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곳이다. 비로소 역사 속에 자신들을 분명하게 드러낸 최초의 나라였고, 이를 통해 민족적 자각을 하게 된다. 비록 13세기 중반에 일어나 14세기 후반까지 짧게 존재했지만, 그들이 정착시킨 불교와 그들이 남겨놓은 불교 유적지는 모든 태국인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그곳을 거닐다 보면 외국 관광객들 못지않게 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단체 관람을 하는 동자승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복장이나 승려라는 신분 때문만이 아니라, 대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그들의 순박한 미소 때문이다. 상업성에 물든 번잡한 관광지나 해변에서 느낄 수 없는 문화, 역사의 깊고 고요한 맛을 수코타이에서는 느낄 수 있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태국의 3대 세력은 왕실, 군부, 승려 집단이다. 특히 스님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탁발공양의 전통이 남아 있어, 새벽이면 스님들은 맨발로 발우를 들고 거리를 다닌다. 시민들은 스님이 오면 존경의 표시로 신발을 벗고, 공손히 음식이 담겨진 예쁜 봉지를 발우에 넣는다. 나는 우연히 방콕에서 젊은 스님과 약 열흘 동안 같이 기거한 적이 있었다. 불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20대 초반의 스님이 새벽에 나가 탁발공양을 하고 오면, 우리는 그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다. 태국 스님들은 우리와 달리 육식을 해서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도 같이 먹었다.

이렇게 친해지자 아무도 없을 때는 둘이 레슬링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는데, 그의 고향에 같이 가기 위해 길을 나서자 스님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자신의 짐을 들라고 요구하고, 자기 뒤에 따라 오라고 하면서 심술을 부렸다. 그의 돌변한 태도에 매우 당혹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 스님들은 가족들조차 겸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끼리 있을 때는 내가 레슬링을 하며 메다꽂기도 했으니, 그는 나를 특별 대접했던 것이다. 그는 밖에서 남의 눈에 띌 때는 자신을 대접하기 바란 것인데, 유교 문화권에서 온 나는 “나이도 어린 친구가…”하는 식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지금은 다 지나간 추억이다. 그는 지금 환속하여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정보

수코타이로 가려면 방콕의 북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 약 7∼8시간이 걸린다. 수코타이는 북부 도시 치앙마이로 가는 길에 들러도 된다. 수코타이에서 치앙마이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다. 태국에서 버스를 탈 때는 긴 소매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에어컨 조절이 잘 안 돼 너무 춥기 때문이다.

by 100명 2007. 7. 23.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