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50대 기업(25) - Walt Disney(월트 디즈니)(상)
만화가의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통한 성공

창업자: 월트 엘리어스 디즈니
특징: 가족 여흥 프로그램의 오락성과 수익성을 높임
주요 제품: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소프트웨어, 리조트 시설
연간 매출: 234억 200만 달러
종업원 수: 11만 7,000명
주요 경쟁사: 폭스 엔터테인먼트, 타임 워너, 비어컴
회장 겸 CEO: 마이클 D. 아이스너, 부회장: 로이 E. 디즈니
본사: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
창업 연도: 1923년
웹사이트: disney.go.com


▲ 디즈니의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호>이야기에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월트 디즈니 사의 이야기는 누가 보아도 기업과 기술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뛰어난 성취의 발자취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핵심은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한 사람은 기업 생명을 탄생시켰고, 또 한 사람은 그것을 밝고 희망 찬 새 길로 인도해갔다. 한 사람은 기이한 상상력의 소유자였고, 또 한 사람은 비범한 비전을 지녔다. 한 사람은 증기선 윌리 호로 도약했고, 또 한 사람은 레지스의 백만장자 퀴즈와 함께 날아올랐다.

월트 디즈니와 마이클 아이스너, 이 걸출한 두 인물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보유한 회사는 분명 세상의 주목을 끌 위치로 올라섰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모두 갖춘 회사가 있다. 그 회사는 창공 가운데로 두둥실 솟아올라, 오늘날 만개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거의 전 분야에서 막대한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다. 현장 공연, 애니메이션 영화, 네트워크 TV 및 케이블 TV, 비디오, 책, 잡지, 테마 파크, 스포츠 팀, 라이선스 상품, 인터넷 포털, 전자 게임,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등,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디즈니는 이것의 토대를 놓았고, 아이스너는 그 품을 드넓게 펼쳤다. 그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멀리 그리고 깊이 미치고 있다.

▲ 월트 디즈니와 미키 마우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가난한 자취방에 함께 지내던 쥐를 친구로 묘사하면서 탄생된 캐릭터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1923년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이라는 신생 예술 형식에 상업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제작 집단이다.) 디즈니 사는 근년에 새로이 확장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세계 2위 미디어 기업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몇 번의 실책이 잠시나마 전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주가 하락을 재촉했지만, 이들의 공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사례 중의 하나는 몇 년 전 디즈니가 유명한 전직 중역 두 사람에게 수백만 달러의 합의금을 내놓게 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는 1996년에 인수한 캐피털 시티즈/ABC 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업계 최고의 생산 및 배급 업체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레지스 필빈이 진행한 퀴즈쇼 <백만장자가 되세요(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진행자나 퀴즈 참가자들보다 기업 소유주에게 훨씬 더 큰 이익을 주었다.

때때로 디즈니 사에 얽힌 이야기는 이들이 만들어 파는 이야기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디즈니 사의 이야기는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로 좁혀진다 어떻게 보면 매우 비슷하지만, 또 많은 차이점을 가진 이 두 사람은 일치된 정신으로, 하지만 각기 다른 현실에서 8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업계 최고의 기업을 일구어내는 데 힘을 합했다.

▲ 헐리우드 최초의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한 장면. 디즈니는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동화를 통한 환상의 세계를 심어 주었고 이것이 상업적인 대성공을 이룬 토대가 되었다.

월터 엘리어스 디즈니가 처음 직업적 화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그의 나이 일곱 살 때였다. 그가 살던 미주리 주 마설린 시의 주민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판 것이다. 그러다가 그 15년 후인 1923년, 단돈 40달러와 미술 도구들을 챙겨 들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남으로써 몽상적 기업가의 길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친척에게 빌린 500달러를 가지고 형 로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렸다. 월트는 그림을 맡았고, 로이는 재정 문제를 담당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들은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키고-지금까지도 미키 마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 캐릭터다-, 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증기선 윌리 호>를 선보였다. 1928년에 발표된 이 영화는 최초의 완전 유성 만화였는데, 여기 나오는 미키 마우스의 가성은 월트 자신의 목소리였다.

디즈니의 풍부한 상상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 정신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그는 애니메이션에 최초로 ‘테크니컬러’라는 컬러 영화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그림에 놀라운 3차원적 깊이를 부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디즈니 최초의 장편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할리우드 최초의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는 150만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 (이는 경쟁사이던 컬럼비아 픽쳐스의 1년 예산의 1/3 가량에 해당했다.)

by 100명 2007. 7. 23.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