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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장 박차고 사회복지단체 간 곽대석 소장
대기업 부장 박차고 사회복지단체 간 곽대석 소장
["기업ㆍ정부ㆍ시민사회가 힘 합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 만들고파"] 소문의 주인공은 곽대석(53) 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이었다. 그는 지난 6월 CJ 사회공헌팀장을 그만 두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설립한 이 센터로 옮겨왔다. 기업의 사회공헌 분야에서 곽 소장만한 전문 인재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는다. CJ에서 그는 결식이웃을 돕는 `푸드뱅크`, 공부방·지역아동센터 교육을 돕는 `도너스캠프(Donors Camp)` 등 사회공헌 사업의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을 다수 개발했다. 그 공로로 그는 2001년엔 보건복지부 장관상, 2005년엔 대통령 상까지 받았다. 기업 안에서 더 좋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사회공헌컨설팅 사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터. 그는 왜 비영리기관의 책임자라는 `좁은 길`을 선택했을까.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고향`이었다. "제가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란 섬에서 났어요. 우리 세대부터 광주 같은 큰 도시로 나와 살기 시작했지만, 그 전엔 섬 사람들이 대대손손 섬에서 나고 섬에서 살았지요. 전 차남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 생업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가족, 마을 사람들과 오손도손 살고팠던 그의 마음이 그를 `사회복지`로 이끈다. 94년 CJ 계약사업본부에서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던 시절, 그는 우연히 한 보고서를 얻었다. 노령화의 심각성에 대한 보고서였다. 고향의 부모님과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이후 그는 사회복지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99년엔 카톨릭대에서 야간대학원으로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았고, 지난해엔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그의 석사논문 제목은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복지재단의 사회공헌활동에 관한 연구`. 당시 CJ엔 사회공헌팀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는 기회를 만들었다. 99년 이재현 CJ그룹회장이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자유롭게 경영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자리였다. 당시 음료사업부장이었던 곽 소장은 `기업의 사회공헌`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CJ 사회공헌팀과 나눔재단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뜻밖에 회장께서 `나도 4~5년 동안 고민했던 문제였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한시간 가량 그동안 회장께서 고민했던 내용을 말씀하셨지요." 지금도 그는 "CJ에서 많은 학습을 했다, 제대로 된 활동을 지지해주고 기다려준 CEO 덕분이다"고 강조한다. 올바른 사회공헌 모델 개발 원동력은 CEO의 결단이라는 점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CJ를 떠난 건 기업 범위를 넘어선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한 기업 단위의 사업보다는 여러 기업과 정부 정책이 연계된 사회공헌 활동을 해보고 싶고, 기부자에게 감사하는 사회문화도 전파하고 싶단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겁니다. 기업에 우수한 인재, 시스템, 현물 등 자원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기업 혼자 잘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과 정부, 시민이 연계된 협력모델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그걸 하고 싶습니다." 그는 "소장으로서 소임을 다 하고 나면 고향 노인분들과 함께 더 즐겁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복지 현장으로 가서 노인들이 건강하게 여가, 여행을 즐기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가 선택한 `좁은 길`은 정겨운 고향땅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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