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정문은 지난 5월 22일과 7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바 있다. 전자가 '체결본'이라면 후자는 추가협상을 거쳐 양국 정상이 공식 서명한 것이므로 '서명본'이라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서명본이 최종 협정문이다. 추가협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간략하게 밝힌 것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 두 협정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는 정부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국 국내법 우선 명확히 해
정부는 '서명본'을 공개하면서 '체결본'에 비해 무엇이, 왜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조문 대조표와 해설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아니 '서명본'에서 추가되거나 삭제된 부분을 활자체나 색깔을 달리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별도의 해설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뭔가 숨겨야 할 게 있어서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서명본이 공개되자마자 이를 꼼꼼히 분석한 송기호 변호사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5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송 변호사가 제기하는 의문점 또는 문제점은 생각보다 많지만 우리가 보기에 심각한 것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FTA 협정보다 미국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대목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FTA의 일반원칙 중의 하나인 내국민 대우는 상대국 국민을 자국민보다 더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즉 자국민에 대한 대우 수준 이상을 상대국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미국에서 한국의 투자자는 미국법에 따라 미국 투자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없는 반면, 한국에서 미국의 투자자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한국인보다 한미FTA의 적용을 받는 미국인 투자자보다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상기의 규정은 서문에 추가된 것이어서 한국 정부는 선언적 의미밖에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이는 WTO 설립 협정문에 서문은 본문의 조항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음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둘째, 영토 규정과 관련하여 독도 인근 해양과 같은 "영해의 외측 한계에 인접하거나 그 밖에 위치한 해상(海床), 하충토를 포함한 해양 지대"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는(exercises)" 표현이 "행사할 수 있는(may exercise)" 표현으로 바뀌었다. 한일 간 독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독도 영해에 대한 주권 행사가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지 여부에 따라 한국 영토 여부가 결정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도 정책이 ①독도와 그 영해에 대해서는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인정하되, ②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대해서는 한국의 배타적 지배를 부인하는 데 있음을 감안할 때 "미국이 미일 관계를 고려하여 문구 수정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셋째, 상품 무역 분야에서 19개 품목에 대한 무관세 수입 할당량 규정과 관련하여 체결본에는 있던 상한 규정이 삭제되었다. 즉 미국은 협정의 운용 과정에서 한미FTA 개정 없이 수입 물량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넷째, 농업 분야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에 따르면 예컨대 쇠고기는 발효 후 1년도에 27만 톤이 넘게 수입되면 40%의 관세를, 주정(酒精)은 118톤이 넘으면 현행의 270%를 부과할 수 있다. 이 발동 물량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도 문제지만, 서명본에는 그 이상으로 수입되더라도 발동 물량기준 이하의 수입분은 무관세가 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래 없던 주정 관련 조항이 서명본에 삽입된 연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주정이 농업과 술 산업의 연계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이 간과되고, 마산의 주정회사가 무관세로 수입될 미국 주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다섯째, 섬유와 의류의 원산지 기준과 관련하여 '완전 형성 및 마감 요건'이 추가되어 원산지 기준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조항은 미국이 체결한 다른 나라와의 FTA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이익 균형' 이뤘나
여섯째, 노동기준과 무역 및 투자의 연계가 세계 최초로 허용되었다. 미국은 한국의 노동기준을 핑계 삼아 무역 보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조항은 또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노동기준이 더 낮은 한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도 작용할 수 있어 정부 스스로 외국인투자 유치에 걸림돌을 만든 셈이다. 나아가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숙련 노동력보다는 생산 자동화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태가 이처럼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이러고도 '이익의 균형' 타령만 늘어놓는 참여정부가 과연 한국과 한국민의 정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부는 송 변호사가 제기하는 의문에 성실히 공개적으로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서익진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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