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슈 / FTA와 냉동 돼지고기

미국산 2014년 ‘무관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지 100일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양국의 정치상황과 여론 등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어, 국회 비준동의안이 언제 처리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비준동의안이 올해 양국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FTA가 발효되겠지만, 2009년 치러지는 미국의 대선 이후 통과하면 2010년쯤에 효력이 발생하겠죠. 관세철폐 품목의 경우 국회 통과 시기에 따라 관세가 제로(0)로 되는 순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과 시기에 관계없이 관세철폐 연도가 협정문에 명시된 품목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냉동 돼지고기’입니다.

농림부나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한·미 FTA 농산물 양허안(개방 계획서)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클릭해볼까요.

보통 ‘A품목은 협정 발효 이후 ○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된다’는 식이지만, 냉동 돼지고기는 ‘2014년 1월1일부터 무관세가 적용된다’고 돼 있습니다. 이처럼 냉동 돼지고기만 관세철폐 시기가 고정된 이유는 우리 돼지고기시장을 둘러싼 수출국들의 신경전 때문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돼지고기는 모두 21만555t(검역 기준)입니다. 이 가운데 95%(20만8t)가 냉동이고 나머지 5%(1만547t)가 냉장입니다. 냉동 돼지고기의 경우 나라별 순위는 미국·캐나다·칠레·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 등입니다.

그렇지만 2014년이면 그 순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칠레 FTA에 따라 칠레산 냉동 돼지고기 관세는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돼 오는 2014년엔 0%가 됩니다. 한국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한·미 FTA에서 미국산 냉동 돼지고기 관세철폐 시기가 2014년으로 고정된 이유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왜 냉장 돼지고기 시장에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을까요. 참고로 미국산 냉장 돼지고기의 관세철폐 기간은 10년이고, 농산물세이프가드(ASG)도 적용됩니다.

현재 수입 냉장 돼지고기의 대부분은 미국산이고, 캐나다산이 일부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럽산은 거의 없고, 칠레산은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이유는 바로 운송 여건 때문입니다.

냉장육은 신선도가 생명입니다. 하지만 칠레산은 뜨거운 적도를 거쳐야 하고,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와 거리가 너무 멀죠. 부가가치가 큰 쇠고기야 비행기로 수송할 수 있겠지만, 돼지고기는 단가 면에서 항공수송이 어렵습니다. 미국으로선 경쟁자가 거의 없는 한국의 냉장돼지고기 시장을 무리수를 써가면서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렇다면 2014년에 가서도 냉동 돼지고기 점유율 1위 자리를 그대로 미국이 차지할까요?

앞서 냉동 돼지고기 순위 가운데 4~6위 모두 EU 회원국입니다. 서유럽국가 말고도 헝가리 등의 동구권도 한국에 많은 양의 돼지고기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 EU 회원국으로부터 수입된 양을 합하면 1위인 미국보다 훨씬 많습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냉동 삼겹살 가운데 EU산의 비중이 77.4%(금액 기준)에 달합니다. 미국산과 칠레산 냉동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2014년 사라진다면 EU가 타격을 입겠죠.

EU로선 현재 진행 중인 한·EU FTA 협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밖에 2년째 진행 중인 한·캐나다 FTA 협상에서도 냉동 돼지고기는 쇠고기 이상으로 양측 간 입장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한국 돼지고기시장을 놓고 칠레·미국·EU·캐나다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사이 우리 양돈농가들의 속은 까맣게 타고 있습니다.
by 100명 2007. 7. 17.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