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없는 무덤엔 ‘무소유’ 정신이…

기사입력 2008-07-03 03:09 |최종수정2008-07-03 03:49


[동아일보]

■대산재단 ‘러시아문학기행’ 톨스토이 생가 가보니

호숫가 숲 옆 소박한 저택… 거실엔 피아노뿐 “그의 문학은 동양사상 닮아”

“오솔길의 자작나무 잎들은 지는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테라스에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녁 이슬이 풀잎을 온통 적실 태세였다. 정원 너머 마당에서는 낮이 저물어가는 소리와 가축 떼를 몰고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톨스토이 소설 ‘가정의 행복’ 중)

그곳엔 온통 ‘푸름’뿐이었다. 파란 하늘 아니면 짙은 녹음. 하늘빛과 초록빛이 뒤섞인 호숫가, 수련에 눈이 팔려 자작나무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숲에 가렸던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사진)의 저택이 성큼 모습을 드러냈다.

○ “타계 100년 돼가도 그의 문학은 아직 미완성”

1일 오후 러시아 야스나야폴랴나.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60km쯤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톨스토이가 생전에 세 번이나 걸었다는 이 길은 열악한 도로사정과 교통체증으로 모스크바에서 차로 4시간이 넘게 걸렸다.

톨스토이 저택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낡았으되 정결한 입구에 서자 동행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김려호(80) 교수가 느긋한 북한 사투리로 청량한 숲의 고요를 깼다.

“톨스토이가 세상을 뜬 지 100년 가까이 됐어도 그의 문학은 여전히 ‘미완성’입니다. 깊이가 끝없기도 하지만 여러 해석이 분분한 탓입니다. 13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고 서구 철학에 통달한 그였지만 오히려 톨스토이 문학은 노자의 ‘무위’나 불교사상과 닮았습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김 교수는 ‘러시아 톨스토이 학회’ 소속으로 러시아에서도 톨스토이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세계문학연구소 연구진에서도 1∼18등급 가운데 소장(18등급) 다음 두 번째 서열인 17등급. 김 교수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이런 사상적 성향으로 지주 출신이지만 기득권을 혐오하고 민중을 사랑했다.

당대에 손꼽히는 부자였던 톨스토이의 저택 내부는 검소했다. 2만여 권의 장서가 비치된 서재와 음악을 사랑한 그답게 거실에 놓인 피아노 2대를 제외하면 소탈하기까지 했다. 말년에 마하트마 간디 등과 교류하며 전 재산을 농민을 위해 쓰려 했던 톨스토이. 이를 반대했던 아내 소피아와의 갈등으로 가출했다가 아스타포보 철도역에서 죽음에 이른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저택에서 멀지 않은 숲 속에 자리한 톨스토이 묘소는 딱 한 사람 크기 정도로 조그마했다. 김 교수는 “맨몸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 말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통해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다 1901년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당한 거장은 흔한 비석 하나 없이 흙으로 돌아갔다.

○ “톨스토이는 세계가 함께 지켜야 할 지적 유산”

이번 톨스토이 생가 방문은 교보문고(대표 권경현)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공동 주최한 해외문학기행 ‘톨스토이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러시아문학기행’ 일정의 일부다. 지난해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배경인 니가타 현 기행에 이어 두 번째 해외문학기행이다.

27명이 참여한 이 여행에는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강은교 시인과 소설 ‘머나먼 제국’을 영어로 번역 출간했던 번역가 유영난 씨도 참여했다. 기행은 야스나야폴라냐 방문을 포함해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방문 △러시아 한인 작가 아나톨리 김 강연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배경 장소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견학 등으로 이뤄졌다. 아나톨리 김(70) 씨는 “러시아에서 톨스토이를 빼고는 문학 자체를 논할 수 없다”고 했다.
by 100명 2008. 7. 3. 1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