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직배사인 20세기폭스코리아가 한국영화 배급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20세기폭스코리아는 <투사부일체>의 3편 <상사부일체>의 배급대행을 맡는다. 20세기폭스코리아(이하 ‘폭스’)의 여름 라인업은 화려하다. 오는 19일 <다이하드 4.0>, 8월 9일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 8월 23일 <심슨 더 무비>를 배급할 예정이기에 이후 추석 시즌까지 흥행성 높은 한국영화를 배급한다면 그 시장 장악력은 더 커 보인다. <상사부일체>(제작 두손시네마) 투자사인 아이엠픽쳐스는 당초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나 쇼박스 등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를 통해 영화를 배급하고자 했으나, 이들 회사가 이미 추석 시즌 배급작이 정해져 있어 부득이하게 할리우드 직배사인 폭스와 손을 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폭스의 심재만 대표는 “회사 라인업상 추석 시즌이 비어 있었다”며 “흥행성 등 여러 면을 고려한 가운데 <상사부일체>가 추석 시즌에 통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에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밝혔다. 아이엠픽쳐스의 김민국 한국영화 팀장도 “회사 입장에서는 추석 개봉이 이슈였고, 일정상 추석 전주에 무조건 개봉해야 한다는 내부적인 목표가 있었다”며 “주요 배급사들이 다 추석 개봉작들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직배사라고 해서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 일치를 봤다”고 말한다.
폭스의 한국영화 배급시장 진출은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최근 직배사들의 구조개편에 따른 영화계 전체의 판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폭스는 가장 발 빠르게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는 할리우드 직배사라 할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쇼박스와 한국영화 공동투자 및 배급과 관련한 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의향서에 따르면 쇼박스가 투자ㆍ제작하는 한국영화에 폭스가 직접 투자 형식으로 참여할 수 있고, 두 회사가 공동 투자한 한국영화의 경우 폭스의 전세계 배급망을 타고 해외에 배급할 수도 있다. 소니픽쳐스와 브에나비스타도 배급작 수를 늘려 파워를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했고 양사 영화들을 한국에서 공동 배급키로 합의한 바 있다.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가 바로 그 공동 배급망을 탔다. 또한 파라마운트 영화들은 CJ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올 초부터 CJ 배급망을 타고 있는데, 한국 영화사가 미국 메이저 영화사의 작품을 배급하는 것은 1988년 UIP가 직배시대를 연 이래 처음이다. 양사의 합의에 따라 지난 1월 그동안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픽처스의 영화들을 국내에 배급해온 UIP가 해체됐고 유니버설픽처스인터내셔널코리아로 재출범한 상태다.
최근 6개월 여간 급격하게 벌어진 직배사들의 구조개편의 근본 원인은 한국영화 파워에 밀려 할리우드영화의 입지가 크게 약화된 상황과 한국영화 역시 내수시장을 넘어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꾀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시점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 상반기는 한국영화 투자, 배급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다줄 여러 '빅딜’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폭스의 이번 한국영화 배급시장 진출은 CJ나 쇼박스의 자체제작 강화와 더불어 그러한 소문의 첫 번째 실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상산업정책연구소의 김미현 팀장은 “몇 년째 시장 내에서 큰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직배사들 입장에선 사업 모델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직배사들이 이제는 아예 철수하거나 깊이 개입하려는 경향으로 양분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이번 폭스의 한국영화 배급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배급대행이기에 아직 큰 의미를 두긴 힘들다는 의견과 한미 FTA 체결 이후 할리우드 거대자본의 국내시장 진출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폭스의 심재만 대표는 “본사 라인업으로만 배급일정을 꾸릴 수 없는 최근의 상황이 가장 큰 이유였다”며 “최근 직배영화들이 70% 이상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라 우려의 시각이 있긴 하지만, 사실 지난 수년간 직배영화들은 한국영화에 밀려 기지개를 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직배사들도 서서히 ‘외화만 고집해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시장 지배력 강화라는 장기적인 포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직배사들의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자구책이라는 견해다. 폭스가 이미 적자가 누적된 한국 내 DVD사업에서 철수한 지 오래라는 점도 이 견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의 이원우 배급팀장은 “이후 점점 더 배급을 넓혀갈 수 있겠지만, 일단 배급대행이라 이번 일만으로 커다란 의미를 둘 순 없을 것 같다”며 “CJ, 쇼박스, 롯데, 시네마서비스, 새로이 떠오른 청어람과 엠엔에프씨 외에는 한국영화 배급사가 부재한 현상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킬러 콘텐츠’로 단판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추석 시즌에 배급사를 찾지 못하는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새로운 배급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추론이다. 정리하자면, 폭스의 한국영화 배급대행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충무로와 직배사가 공존의 길을 모색한 방법이라는 얘기다. 아이엠픽쳐스의 김민국 팀장도 “한국 영화시장이 몇몇 배급사들의 힘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다양한 활로를 개척하는 것, 그러니까 배급사 자체가 많아지는 것이 오히려 영화계를 튼실하게 만들 것”이라는 긍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극장가의 전반적인 침체 분위기 때문일까? 폭스의 행보를 충무로와 할리우드의 윈윈 전략이라고만 바라볼 순 없다, 안 그래도 현재 여름시장을 석권 중인 직배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폭스의 심재만 대표는 “향후 할리우드영화나 한국영화뿐 아니라 여력이 된다면 제3국 영화도 배급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첫 번째 배급작 자체가 어느 정도의 관객동원이 예상되는 흥행 시리즈 <상사부일체>이기에 향후 그 배급의 스펙트럼이 넓어질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한 중소 영화사의 관계자는 “직배사들이 다른 국내의 저예산 혹은 예술영화들에게도 문을 열 것인가 하는 데엔 의문이 있다”며 “향후 직배사들이 배급은 물론 제작 부문에서도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배급대행 자체만으로는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없을지 몰라도, 현재 한국영화 배급의 새 판이 짜이고 있는 형국이기에 제작과 배급 전 부문에서 직배사들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될 거란 얘기다.
폭스의 배급대행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건 시기적인 요인도 있다. CJ가 파라마운트의 영화들을 배급하는 것처럼, 그 반대상황이라 할 수 있는 폭스의 한국영화 배급을 자본의 국경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자연스런 흐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최근 스크린쿼터의 ‘현행 유보’ 확정과 한미 FTA 체결이라는 거대한 이슈가 한국 영화시장 전체의 변화와 견고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 영상산업정책연구소 김미현 팀장도 “이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시장 자체가 분화되고 있는 긍정적이고 자연스런 흐름이지만 독과점에 대한 기여나 종속성의 심화 같은 부작용 여부는 계속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투자 시장의 위축과 FTA 타결에 따른 ‘(배급)판의 전쟁’ 속에서 한국영화계는 지금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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