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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이하드 4.0' - 우려에서 환호로 | |||
이동진 닷컴 | 기사입력 2007-07-03 03:29 | |||
[이동진닷컴] 사실, ‘다이하드 4.0’(7월19일 개봉)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액션 영화의 고전이 된 ‘다이하드’가 처음 나온 게 무려 19년 전. 게다가 바로 이전 속편인 ‘다이하드 3’가 나온 것도 벌써 12년 전이 아닌가. 1편의 빼어난 완성도에 비할 때 3편의 성과가 그리 보잘 것 없었음을 감안하면, 스타일 구기기 전에 이 시리즈는 구두점을 찍은 형태로 액션영화의 전당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게 아닌가. 무엇보다 기대가 적었던 이유는 배우 때문이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8년 전의 ‘식스 센스’ 이후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브루스 윌리스의 나이는 벌써 52세. 브루스 윌리스 없는 ‘다이 하드’ 시리즈란 불가능하면서도, 그가 재등장하게 되면 액션 영웅 캐릭터로 안쓰러워지게 되는 진퇴양난 속에서, ‘다이하드 4.0’이라는 속편은 결국 관성적인 선택을 내리고 만 게 아닐까. 그러나 7월2일 국내 첫 시사회를 가진 이 영화는 순차적 속편을 의미하는 ‘다이하드 4’라는 제목 대신 업그레이드를 의미하는 ‘다이하드 4.0’이란 제목을 쓸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미국 전역을 악몽 속으로 빠뜨리는 첨단 디지털 테러를 온 몸으로 저지하는 존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의 사투를 다룬 이 작품은 물량공세에 가까운 우악스런 외양과 달리 영리하고 섬세한 액션영화다. ‘다이하드 4.0’의 액션은 기본기에 충실하다. 이 영화에서 첨단 디지털 테러는 그 자체로 볼거리의 기둥 구실을 한다기보다 아날로그 액션이 펼쳐지는 맥락과 무대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주먹 총 자동차 헬기 등 경찰 영화에 전통적으로 쓰이는 기본적 재료들 위주의 액션인데도 풍부하고 신선한 볼거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이 영화는 자동차를 점프시켜서 헬기를 부수는 장면까지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내지 않고 실제로 충돌시켜 생생한 실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이 무엇을 어떻게 보고 즐겨야 하는지 맥을 제대로 짚어주는 렌 와이즈먼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다. 디테일이 훌륭하고 액션의 표현력과 전달력이 좋기에 연출자가 의도한 효과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소방 파이프를 터뜨림으로써 그 솟구친 물줄기로 헬기 위의 저격수를 떨어뜨리는 식의 기기묘묘한 상황을 끌어내는 액션의 상상력도 훌륭하다. 같은 장르의 영웅임에도 제임스 본드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존 맥클레인 캐릭터의 매력은 이 시리즈의 최대 동력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운이 나빠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즐기면서 하는 게 아니라 죽도록 고생하면서 해내는 존 맥클레인은 ‘블루 칼라 영웅’의 인간미를 제대로 갖췄다. 그리고 우려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윌리스는 그의 가능한 최선을 보여줬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초강력 캐릭터와 콤비를 이루는 불리함 속에서도, 해커 매튜 패럴 역의 저스틴 롱은 주로 입심 좋은 흑인 캐릭터들이 맡아왔던 스타일의 배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신세대와 구세대, 디지털과 아날로그, 주먹과 머리를 각각 대표하면서 상호보완하는 두 캐릭터의 호흡이 끊이지 않는 잔재미를 준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연기한 존 맥클레인의 딸 루시 캐릭터도 구색 맞추기의 차원을 넘어선 재치 있는 설정으로 도드라진 개성을 보였다. 다만, ‘다이하드 4.0’의 악역은 존재감이 약하고, 영화 초반 극강의 위력을 과시했던 범죄의 전조는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용두사미가 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락음악의 역사를 정의하던 매튜는 70년대를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었던 시절”로 멋지게 풍자한다. 통신망이 두절된 상황에서 PDA를 옛 통신 위성에 접속해 쓰는 솜씨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라고 신기해하는 존을 무시하던 매튜는, 존이 단 한 번의 거친 손길로 터진 에어백을 뜯어내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라며 탄성을 터뜨린다. 끝말잇기 하듯 액션 장면을 쉬지 않고 쏟아내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아기자기한 유머와 재치를 맘껏 과시하는 ‘다이하드 4.0’은 종종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기묘한 액션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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