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연극 생명력은 ‘관객의 관심’
언론 관심에 비해 객석 썰렁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신뢰를
▲ 구자흥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관장>
문화선진국 프랑스에서 한 해 동안 연극이나 오페라, 발레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시민은 전 국민의 12%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 연극에 관객이 없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극단 미추 손진책 대표의 얘기가 연극계의 위기 상황을 요약해준다. ‘이제 연극을 하는 게 겁난다. 공연할 때마다 배우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 연극 한 편 제대로 하면 적자폭이 1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손진책은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아리엘 도르프만을, 그리고 엊그제 중국 남경에서 삼국지를 연출해 그 나라 연극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어 국제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출가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연극은 지난 30여년 한결같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이렇듯 안타까운 상황이라면 다른 연출가라고 해서 전혀 나을 게 없을 것이다.

지난 해 한국 연극사상 처음으로 런던의 바비칸센터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밤의 꿈’이 얼마 전 막을 내렸지만 객석은 썰렁하기만 했다.

중앙의 모든 일간지와 방송이 셰익스피어의 나라 그것도 세계 최고의 극장에 초청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호들갑을 떤 지 불과 1년도 안되어 우리는 그들의 쾌거를 까맣게 잊은 것이다. 대만출신의 세계적 경극 스타 우싱꾸어(吳興國)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주말에 국립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지만 관객 호응도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볼거리가 풍부한 서커스 퀴담이나 뮤지컬 라이언 킹처럼 연극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는 없겠지만 세계인들이 환호하는 무대에 우리가 너무 무심하다는 사실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한국의 신극사는 1908년 이인직의 은세계를 시작으로 내년으로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연극의 황금기를 꼽자면 비록 기간은 짧았지만 6·25전쟁이 나던 무렵의 국립극장 시절이다. 당시 원술랑이나 뇌우(雷雨) 공연에 5만여 관객이 모여든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르코극장 개관 이래 유료 관객이 1만명을 넘는 공연이 단 1편도 없었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1950년대 한국연극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한국영화가 활기를 띄면서 연극관객이 급격히 줄었다는 분석이 거의 정설이다.

그러나 나는 여성국극의 영향이 더 컸다는 의견에 동조한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그리고 당대의 스타 임춘앵의 빼어난 소리와 연기에 시민들은 넋을 잃었다. 요즈음 서양 뮤지컬에 연극관객을 빼앗기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도 연극보다 뮤지컬을 선호하는 관객이 많다는 시대적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한국 연극이 관객의 신뢰를 얻어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연극인들이 치열한 창작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연극이 인간내면을 성찰하는 것이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관객들의 좋은 연극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연극 한 편을 초청하려면 보통 3천만원 내외의 경비가 필요하고 지역단체는 훨씬 적은 금액으로도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연극가족 1천명 운동으로 관객을 창조하고자 한다. 유료관객 2천명이면 어떤 연극이라도 초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좀 무모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극이야말로 공연예술의 영원한 발원지이고 그래서 연극의 생명력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by 100명 2007. 7. 3. 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