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영화들은 언제 개봉하나?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7-06-27 12:14 기사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2007 청어람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생긴 일. 이제 폐막식만을 하루 남겨놓고 공식적으로 영화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 마지막 상영시간에 선택했던 영화는 우연히도 <사과>였다.

문소리, 김태우 주연이라는 점과 당초 예정보다 개봉이 늦어졌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진 사전 정보는 없었고, 영화제 기간 동안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적이 없던 작품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막을 내린 영화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관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려는 순간, 갑자기 <사과>의 강이관 감독과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 강래원 등 주연배우들이 모두 해운대 상영관 안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당초 일정에 GV(관객과의 대화)도 잡혀있지 않았지만 영화제 마지막날, 특별히 이 작품을 선택해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상영관을 찾았다는 말에, 의아해하던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주연배우 문소리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감정이 복받친 듯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문소리는 "출산을 못한 부모의 심정"을 비유로 들며, 애정을 갖고 열심히 촬영에 임했던 영화가 2년이 지나도록 개봉도 하지못하고 묻혀버린 현실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문소리는 "그나마 영화제를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될수 있어서 굉징히 위안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영화에 관하여 "언제 개봉하는지, 혹은 왜 그동안 개봉을 못했는지"는 묻지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 가을로부터 다시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해가 바뀌고 몇 차례의 계절이 변했지만 <사과>의 개봉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사과>는 이미 2005년 초에 모든 제작이 완료된 작품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선을 보였을 때 이미 촬영시기로부터는 2년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지 못할 만큼 완성도에 문제가 있는 영화도 아니다. 2005년 9월 유럽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강이관 감독이 '신인작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호평을 얻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박수를 받은 영화를 정작 국내 관객들은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과>는 우리 시대의 일상적인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평범한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겪는 사랑의 다양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사과>가 보여주는 것은 '성인들의 사랑'이다. 사랑을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믿는 여자. 사랑은 혼자 참고 인내하더라도 상처를 주지않는 것이라고 믿는 남자. 서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인하여 원치않는 상처를 주고 미안해하는 남녀의 이야기.

연애, 결혼, 불륜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통속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지만,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감수성,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소리와 김태우 등 배우들의 호연도 나무랄 데 없다.

어쩌면 <사과>는 볼거리에 강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최근의 극장가 트렌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나 <사랑에 미치다>가 톱스타들의 출연에도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처럼, 요즘 시대에 어른들의 '멋대가리없는'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나 구구절절한 '생활 로맨스'가 먹혀들 구석은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 극장가가 대형 상업영화들, 볼거리를 갖춘 영화들 위주로만 몰리면서 다양한 관객들의 소수적인 취향은 무시한 채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문소리, 김태우처럼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임에도 개봉도 못하고 있는 현실은 <사과>뿐만이 아니다. 차태현 하지원 주연의 <바보>, 조한선 유민 주연의 <특별시 사람들>, 백윤식 이문식 주연의 <성난 펭귄> 등, 심지어 작가영화도 아닌 전형적인 상업성을 표방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정된 개봉일을 넘긴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윤은혜의 첫 연기 데뷔작이었던 <카리스마 탈출기>는 빛도 못 보고 묻혀질 뻔 했으나, 드라마 <궁>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데 힘입어 뒤늦게나마 개봉할 수 있었다.

그나마 황정민, 임수정 주연의 <행복>이나 임창정 박진희 주연의 <만남의 광장>처럼 일정을 다소 늦추더라도 적정한 개봉일을 조율하고 있는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만, <사과>처럼 기껏 영화를 다 만들어놓고도 아예 개봉 자체가 기약 없는 상태로 묻혀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형 블록버스터에 밀려 흥행 수익을 위한 최소한 개봉관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떨어지는 상업성 대비 제작비를 호가하는 엄청난 마케팅 비용은 극장이나 투자자 모두 무리한 개봉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다.

가을 비수기에 접어드는 9~10월 시즌이 되면 그동안 묵혀둔 영화들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모양새만 내고는 개봉 1~2주를 못넘긴 채 조용히 사라지는 영화들이 부지기수다.

<사과>의 개봉여부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최근의 '한국영화에 흥행 성적'은 둘째치고라도, '사람 냄새' 혹은 '일상의 냄새'가 나는 영화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by 100명 2007. 6. 27.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