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발전기금 사업에 대한 영화노조와 영진위, 천영세 의원실 3자 공방전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영진위가 세부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기금 사업의 공익성, 투명성, 준비성에 관련한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은 '영화산업 ‘쩐의 전쟁’의 막을 내려라!'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은 영화노조-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천영세 의원실 간의 공방전으로 번졌다. 발단은 11일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열린 영화발전기금 사업 설명회에 제출한 영진위와 문화관광부의 ‘영화발전기금 TF 관련 국회의견 수렴 자료’(이하 ‘국회 수렴 자료’)였다. 영화노조가 지적한 사안은 TF(특별 전문 위원회) 구성의 문제, 관객 대상 설문조사의 계획안 반영 여부, 영화계 의견 수렴과정 미흡, 그리고 스크린쿼터 감시활동에 대한 대책 마련 등 여섯 가지 사안과 설명회 자리에서 불거진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의 발언에 관한 내용이었다. 영진위는 다음날 홈페이지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6월 13일자 논평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견해’라는 반박문을 게시해 “영화노조가 오해를 바탕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곧 다른 쪽에서 일격이 더해졌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실이 문제의 ‘국회 수렴 자료’를 공개하면서 영진위가 “오해였다”고 해명한 부분이 “영진위 측의 실수”였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게다가 김혜준 사무국장이 작성한 영진위 1차 반박문에 대해 영화노조도 2차 논평으로 대응하며 "사실 관계를 따져보자"고 나서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풀리지 않은 의문
영화노조와 천영세 의원실의 공격은 거세졌지만 영진위는 “공식적인 2차 반박문은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영진위는 20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셜센터에서 10여 개 일부 매체를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08년도 영화진흥계획, 밑그림 드러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안정숙 위원장, 문봉환 국내진흥 1팀 팀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지만 이번 공방의 핵심인 김혜준 사무국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진위는 “최근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할 부분도 있지만, 중국과의 공동제작에 관련된 세미나 참석차 불가피하게 출장을 떠나게 됐으니 양해해달라"고 전했다.
안정숙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영화발전기금 사업계획안은 문화관광부와 기획예산처, 국회 심의를 거친 뒤 2008년 본격 시행된다”고 전하고 “세부계획과 자금규모에 관련된 자료는 국회심사를 통과하기 전까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점 추진과제로 1천억 원 규모의 대형 펀드를 조성하고 20억 원대 VOD 서비스 판권 담보 융자지원 사업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자금규모와 조성방법에 대해 담당자가 설명을 덧붙이며 "이 사안은 실행 가능성이 높은 핵심 과제라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기자가 “전체적인 계획안을 두고 판단할 문제가 많은데, 가안이라도 자료를 공개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좀 더 고민을 해보겠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결국 간담회는 영진위가 세부계획서를 공개하지 않은 채 마무리됐고, 최근 공방전에서 불거진 사안의 사실 확인조차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일련의 논란과 쟁점을 들여다보면 영화발전기금 사업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국고 2천억 원과 극장 분담금 2천억 원, 총 4천억 원이라는 대규모의 사업이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으며, 그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한가 하는 점이다.
영화발전기금 사업,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있나?
영화노조는 논평을 통해 “영진위가 ‘국회 수렴 자료’에 명시한 영화발전기금 사업 TF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TF는 2007년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 심의과정에서 “영화발전기금의 중장기적인 계획과 연구를 위해 TF를 구성하라”는 문화관광위원회의 요구사항이었다. 영진위는 산업 합리화를 위한 연구모임, 영화문화 다양성을 위한 정책소위원회, 부과금 모금 점검모임 등 영진위 핵심 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을 기준으로 총 27명의 ‘영화발전기금 TF 분야별 명단’을 작성, 11일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보좌관 대상 설명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영화노조는 "명단에 오른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확인한 결과 자신이 TF팀 소속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며 “TF팀 구성이 졸속으로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김혜준 사무국장은 영진위 반박문을 통해 “자료에 적힌 TF 인사명단은 의견 수렴을 위한 전문가 풀을 잘못 지칭한 것”이었다고 밝혔고, 안정숙 위원장도 “문서상의 실수"였다고 인정해 FT 공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일 배포된 영진위 보도자료에 의하면 불과 열흘도 안 된 사이 참여 인사가 대거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영진위가 사업을 졸속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부채질만 더하게 된 셈이다.
비난은 ‘설문조사’에 대해서도 쏟아졌다. 최진욱 위원장은 “엄청난 국고와 극장 부담금으로 사업을 계획하면서 사전 설문조사와 시뮬레이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영진위를 비판했다. ‘국회 수렴 자료’에 의하면 영진위는 ‘일반관객 및 영화계 대상 기금 사업에 대한 설문조사’가 15일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진위 의결을 거친 사업계획안은 설문조사가 끝나기도 전인 13일 문화관광부에 제출됐다. 국회설명회에서 “설문조사를 해놓고 왜 계획안에 반영하지 않느냐”는 보좌관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김혜준 사무국장은 “설문조사는 사업계획을 사후 검증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천영세 의원실과 영화노조는 "수천억 원이 투여되는 사업계획이 일괄성 없이 사후 조정된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보이며 "며칠 뒤 나올 자료를 굳이 반영하지 않고 계획안을 마무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최진욱 위원장은 “최근 문화예술인 복지제도의 준비과정과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 사업 준비과정을 비교해보면 현황 파악, 쟁점과제 도출, 의견 수렴의 전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영진위의 준비가 부족한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설문조사 같은 기초 의견 수렴과정이 미흡해 한 단계 나간 시뮬레이션 작업도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영화발전기금 사업이 수많은 예산을 낭비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게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사업내용과 규모는 비공개, 검증은 필요 없다?
영화노조와 천영세 의원실은 또한 “영진위가 수차례 자료를 요청해도 세부계획안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사업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상철 보좌관은 “국회가 자료를 요청하면 다른 기관에서는 가예산 내역이라도 공개한다. 사업계획과 자금규모는 꼼꼼한 검증을 거쳐 확정될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영진위가 세부계획을 공개하지 않으면 영화발전기금 사업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여러 영화단체에서도 기금 사업의 혜택과 영향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계획안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 채 TF 구성이 도마 위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영화계에서는 입을 모아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고 있으나 ‘스크린쿼터 준수 감시활동’에 대한 사업계획은 ‘국회 수렴 자료’에 포함되지 않아 빈축을 산 일도 있었다. 영화노조와 천영세 의원실이 논평을 통해 이를 지적하자 영진위는 “예산을 확보해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에 위임하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당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에게 확인한 결과 “관련 내용에 대해 전달받은 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개된 자료마다 사업내용이 뒤바뀌고, 그마저도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은 영진위의 기금 사업이 탁상공론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리게 했다. 더불어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영화계 각 단체들이 사업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영화발전기금 사업, 공공성은 어디로?
쟁점은 자연스럽게 영화발전기금 사업이 공익성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부분으로 넘어갔다. 영화노조는 영진위 반박문에 대한 15일 논평을 통해 “노사정 협의회인 산업협력위원회에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문제들을 논의하자고 합의했으나, 영진위는 기금 사업이든 아니든 영화산업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해 영진위가 영화노조를 배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렀다.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핵심 추진과제와 함께 발표된 ‘영화산업 분야별 TF 운영현황’에도 CJ와 쇼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인사들은 골고루 포함된 반면, 영화노조와 중소규모 제작사 관계자 등은 누락돼 있어 앞으로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영진위의 사업계획안에 영화 노동환경 개선에 관한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은 기자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안정숙 위원장은 “노동환경과 관련된 사업으로 영화인 4대 보험지원 사업과 육아지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진욱 위원장은 “4대 보험 관리지원마저도 ‘국회 수렴 자료’에서 폐지, 축소 사항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영진위 공문이 아닌 우연한 자리를 통해 알게 됐고, 노조가 부랴부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서 겨우 원상 복귀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숙 위원장은 “영화노조에서 기대한 만큼 의견 반영이 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단순한 착오일 뿐, 영진위가 영화노조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나갈 것임은 여전하다”고 해명했다.
영화노조와 영진위, 왜 삐걱거리나?
공방전에서 불거진 내용을 두고 영진위는 “문서상, 진행상의 오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영화노조와 천영세 의원실 측은 “단순한 실수도 자주 반복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또한 영화노조-영진위-천영세 의원실의 이번 공방의 핵심 내용에는 스크린쿼터와 스크린독과점 문제에 대한 의견 충돌을 빚었던 김혜준 사무국장과의 갈등이 있었다. 최진욱 위원장은 “안정숙 위원장과 논의가 끝났다고 생각한 부분도 실질적인 일을 진행하는 김혜준 사무국장에게 넘어가면 순식간에 뒤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순데, 누굴 믿고 논의를 해나가겠냐”며 “영화노조 논평에 대한 김혜준 사무국장의 반박문이 영진위의 공식입장이라는 것도 문제고, 대규모 영화발전기금 사업이 한 사람의 발언 때문에 공방으로 이어졌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천영세 의원실 측은 “영화발전기금 사업과 더불어 대규모 자금을 쥐게 된 영진위 자체에 대한 비판과 검증이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김상철 보좌관은 “스크린쿼터의 대가성 사업이냐 아니냐를 떠나 사업의 주체인 영진위가 영화계의 관심사에 골고루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원인을 영진위 조직과 내부 문제를 통해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언론, 제작, 배급, 투자, 극장 측까지 모두 아울러 영진위가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토론회를 오는 7월 중순쯤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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