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을 좇다 추락한 영화 ‘황진이’
뉴시스 | 기사입력 2007-06-24 09:49
허상을 좇다 추락한 영화 '황진이'

【서울=뉴시스】

송혜교 주연 ‘황진이’가 여름 극장가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거두고 있다.

‘황진이’는 전국 412개 스크린에서 개봉 2주차에 91만775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간 흥행 성적으로는 ‘슈렉 3’, ‘오션스 13’에 이은 3위다. 계속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 관객수 감소가 눈에 띄게 일어나, 전체 관객수에서 ‘밀양’에도 못 미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황진이’는 사실상 여름 시즌 한국영화계 최대의 기대주였다. 제작규모로 보았을 때에는 7월25일 개봉 예정인 ‘화려한 휴가’와 비등한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5·18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접근하는 ‘화려한 휴가’와 트렌드 마케팅의 전형인 ‘황진이’는 홍보방식에서부터 타깃 관객층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황진이’는 그야말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설 수 있는 아이템’으로 꼽혔던 것.

그러나 다른 식으로 보자면, ‘황진이’는 그간 한국영화계에 행한 가장 위험한 승부수이기도 했다. 승부수라기보다는 차라리 실패 확률이 더 높은 도박에 가까웠다. 영화 ‘황진이’의 도박성은, 제작의 모태가 된 ‘황진이 트렌드’ 마케팅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황진이 트렌드’ 열기는 실제로 거셌다. 무려 20여종에 가까운 황진이 관련 서적이 출간됐고, 뮤지컬, 패션계 등 문화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 정점에 섰던 것이 하지원 주연 KBS 드라마 ‘황진이’였다.

드라마 ‘황진이’는 ‘명품사극’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평균시청률 20% 이상을 기록했다. 해외 수출도 원활히 이루어져, ‘대장금’의 뒤를 잇는 사극 한류 주역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총체적 열기에 의해, 미국 CNN조차도 자사 뉴스 사이트 아시아 코너에 ‘한국에서 기생이 우상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글을 게재하기까지 했다.

현재의 대중문화 코드와 황진이가 대변하는 기생문화 사이의 일치점을 찾는 인문비평도 등장했다. 이 시점에, ‘황진이’ 영화 제작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아니, 제작하지 않는 쪽이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우둔함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 트렌드는 엄밀히 말해 ‘하이프’의 전형이었다. 실제로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고, 그 홍보효과로 인해 가상을 실체로 만들어버리는 마케팅. 흔히 패션계에서 ‘올 해의 트렌드는 미니스커트’라는 식으로 연초에 홍보하고, 그 실체를 거둬내는 것과 흡사하다. 유행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행중’이라는 주장을 던져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대선 시즌의 ‘대세론’과 흡사한 부분이 있다.

‘황진이 트렌드’의 본질은, 정확히 말해 드라마 ‘황진이’의 성공 하나였다. 나머지는 그저 드라마 성공의 파생시장으로 봐야한다. 그나마도 뚜렷한 성공을 거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드라마 ‘황진이’의 성공 배경도 단순하다.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하지원의 상품성, 하지원과 황진이 캐릭터 간의 높은 싱크로율,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명품 한복 등, TV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눈요깃거리 제공에 있었다. 대중심리학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이 단순한 공식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파고들려는 태도가 하이프를 낳았다.

설령 그 하이프 파생시장이 어느 정도 사전 홍보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영화 ‘황진이’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다. 영화는 이 하이프의 막차에 탄 아이템이다. 한국 대중문화시장 트렌드는 빠르다. 몇 개월이면 이미 잊혀져버리고 만다. 드라마 종방으로부터 6개월 뒤에 등장한 영화는, 막차 차원을 넘어서 외돌토리 신세의 단독 상품이 돼버린다. 현재 남아있는 ‘황진이 트렌드’ 잔재는 한복업계에서의 ‘황진이 스타일’ 하나 뿐이다.

더 짚어볼 만한 부분이 있다. 한국 대중문화시장과 일본의 그것을 종종 혼동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시장은 일정 부분 일본을 좇아간다. 부정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상품 전략 중에는 대중정서 면에서 일본의 그것과 판이하게 달라 절대 벤치마킹해선 안 되는 전략도 있다.

‘황진이 트렌드’는 일본 대중문화시장 특유의 ‘미디어믹스’ 전략을 벤치마킹한 인상이 짙다. 일본의 미디어믹스 전략은 ‘반복 시장’ 개념이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이를 만화로 만들고, 드라마로 만들고, 영화로 만들고, 연극으로 만들고, 심지어 비디오게임까지 만들어 일대 붐을 형성해내는 전략이다. 말 그대로 모든 미디어가 믹스되어 만들어내는 자체 트렌드 창조 전략이다.

그러나 이는 ‘되새김질’을 즐기는 일본 대중정서와 맞닿아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일본 대중은 한 번 믿음이 간 소재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즐기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 대중에게 한 번 접한 소재를 다시 접하고 싶어 하는 되새김질 취향은 없다. 한국은 유행이 빠르고, 싫증이 빠르다. 내러티브형 문화상품의 경우는 일단 위험하며, 트렌드 시초가 영상 장르였다면 동일 노선의 내러티브형 상품 파생은 어렵다.

영상 장르는 힘이 세다. 간혹 문학 장르의 인기가 영화, 드라마로 옮겨가는 경우는 있지만, 일단 영화나 드라마로 나온 소재가 여타 장르로 퍼져나간 경우는 보기 드물다. 그 자체가 정점이 된다. 더군다나, 영상 장르 내에서의 반복은 사실상 성공 예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문화 상품의 소비 형태 파악도 필요하다. ‘황진이’ 드라마는 공중파를 탄 ‘무료’ 콘텐츠였다. 한 번 무료로 소비한 아이템을 유료 파생매체가 이어받는다는 발상은 너무 순진한 것이다. 굳이 유료로 간다면, 무료였을 때와 확실히 차별되는 요소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영화 ‘황진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화려한 의상과 세트디자인은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기도 했다. 영화의 구분 요소는 아닌 것이다. 배우의 스타 파워가 남다른 것도 아니었다. 송혜교는 전작 ‘파랑주의보’를 통해 티켓파워 부재를 입증했고, 유지태 역시 티켓파워 면에서 평가될 수 있는 배우는 아니다.

남은 구분 요소는, 해외 영화제 수상, ‘한국 최초’의 단어가 등장하는 홍보전략, 사회적 대의형 마케팅, 하다못해 출연배우의 노출 신 정도인데, 영화 ‘황진이’는 그 중 어느 것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한편, 유료와 무료의 문제는 배우 선택에서도 발생한다. 타이틀 롤을 맡은 송혜교는 지나치게 오랜 기간 동안 ‘무료’ TV 드라마를 통해 소비되던 배우였다. 무료로 얻어진 스타파워는 유료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관성효과를 얻어내기 힘들다. 가까운 예로, 지난 1993년,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 실패 이후 영화 출연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브라운관의 여왕’ 김희애를 들 수 있다. 영화 ‘황진이’는, 적어도 송혜교를 파는 발상은 말았어야 했다.

이렇듯, ‘실패한 콘텐츠’에는 항상 실패의 원인이 분명하게 늘어서 있다. 어째서 이런 기획이 통과됐는지 의문이 가는 콘텐츠들도 많다. 영화 ‘황진이’는 다방면적인 계산 착오의 대표적 예가 될 수 있으며, 안타깝게도 이를 누를 만한 예외적 사회현상을 만나지 못한 경우로 봐야한다.

어찌됐건 이미 던져진 주사위이고, 정작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계산 착오의 지점들을 명확히 파악하고 넘어가는 일뿐이다. 실패의 원인이 단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맹공’ 탓만은 아니며, 그런 할리우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실패를 통한 교훈’을 절대 얻을 수 없다. 학창시절에 늘 경험했듯, 답안지를 맞춰보며 틀린 문제를 돌아보는 것은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것만큼 자신의 내공을 쌓아주는 방도도 따로 없다.

by 100명 2007. 6. 24.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