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50대 기업(23) - U.S. Steel(하)
J.P.모건과 H.게리가 세계 최대로 통합


신기술, 신소재 개발로 사업다각화 성공



▲ 인디애나의 한도시가 US스틸 공장이 들어섬에 따라 게리시로 이름을 바꿨다. 사진은 게리시 시청.
이 경쟁 현장의 인물들 가운데 손꼽히는 거물들이던 은행가 J.P. 모건과 기업가 엘버트 H. 게리는 1898년에 함께 페더럴 철강 회사를 설립했다. 이 두 사람의 목표는 업계 전체를 자신들의 손 안에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곧바로 수많은 회사를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는 카네기의 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수 금액은 무려 4억 9,200만 달러였다.) 그런 뒤 아메리칸 스틸&와이어, 아메리칸 틴 플레이트, 내셔널 튜브 같은 회사들이 속속 이들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수많은 기업이 혼효된 거대한 집합체는 1901년 U.S. 철강으로 통합되었다. 자본 가치가 14억 달러에 이르는 이 회사는 그때까지 역사상 최대의 기업이었다. 게리가 이 회사의 초대 회장이 되었는데, 회사의 제1공장이 들어선 인디애나 주의 한 도시는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게리 시로 불리게 되었다.

자선 사업으로 돌아선 카네기가 1919년에 눈을 감을 때까지 수많은 조직과 단체에 3억 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기부하고 있을 때, 모건과 게리는 U.S. 철강을 강력하게 키워나갔다. 이들의 새 회사는 출범 첫 해에 미국 내 전 철강 제품의 2/3을 생산했다. 그 대부분은 철도, 자동차, 중장비와 건설 공사들에 사용되었는데, 산업 시대가 계속됨에 따라 철강 제품의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서 업계의 몇 군데 틈새를 파고들어서 대규모로 자라난 기업도 여럿 있을 정도였다.

양차 세계대전 동안 수요는 더욱 더 증가했고, U.S. 철강은 언제나 무리의 선두를 지켰다. 그런데 1950년대에 이르자 어느덧 업계의 경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의 신흥 경쟁사들이 ‘염기 산소법(basic-oxygen)’ ‘연속 주물법(continuous casting)’과 같은 최신식 제조법을 들고 나와서, 19세기식 ‘평로법(open-hearth method)’을 고수하던 미국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해외 기업들이 자국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쓸 수 있게 되자, 미국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947년의 57퍼센트에서 10년 후에는 29퍼센트로 떨어졌다. 수입도 급증해서 같은 시기 미국에서 사용된 철강의 1/4이 해외 제품이었다. 게다가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의 등장은 철강의 수요를 더욱 감소 시켰다.

가공 공장과 주조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떠났으며, 융성했던 피츠버그 공업 단지는 피폐해졌다. 1980년대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로, 업계 전체의 손실이 120억 달러에 이르렀다. 42만 8,000명에 이르던 노동자의 60퍼센트 가량이 직장을 잃었고, 남은 자들은 임금의 대폭 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자 미국 기업들은 정부에 수입 제한을 요청했다. U.S. 철강은 이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 구조를 재조정 하고 몇몇 단위들-유전 공급품 사업이나 국내 수송회사 같은-을 매각했으며,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과 함께 조인트 벤처를 꾸렸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1982년에 마라톤 석유 회사-1887년에 설립된 텍사스 기반 대기업-를 인수해서 회사의 규모를 두 배로 키운 것이다. 4년 후 이들은 ‘텍사스 오일&가스’라는 또 다른 에너지 대기업을 사들였다. 그런 뒤 새롭게 태어난 기업의 다각적 측면을 반영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USX사로 바꾸었다.

▲ 2001년 US 스틸사를 방문하여 근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조지 부시 대통령.
USX사가 출현하고 뒤이어 수익성이 회복되자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corporate raider) 칼 아이칸(적대적 M&A를 통해 높은 매매 차익을 챙기는 자들을 기업 사냥꾼, 기업 탈취자라 한다. 칼 아이칸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역자주)이 이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아이칸은 1986년에 이들의 철강 사업부를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그러나 지분 11퍼센트가 넘는 2,900만 주식을 보유한 그는 1989년에 다시 한 번 투기를 시도했다. 감량과 사업 다각화를 동시에 이룬 USX사는 당시 이런 관심을 끌 만했다. 철강 사업부 단독의 수익이 전년의 1억 2,500만 달러에서 5억 100만 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USX사는 이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시설을 개량하고, 구시대적 평로 방식 용광로를 해외 경쟁사들이 오래 전부터 채용한 현대식 산소 점화 방식으로 바꾸었다. 레이건 행정부가 자발적으로 실행한 수입 쿼터 또한 가격을 인상시켜 줌으로써 USX사에 도움이 되었다. 몇십 년 간의 어둠 끝에 드디어 빅 스틸(Big Steel)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USX사는 1991년에 두 개의 부문을 공개 법인으로 만들기 위해 기업 구조를 재조정했다. 그 두 단위는 각각 USX- U.S. 철강과 USX-마라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구조는 2001년 두 개의 사업체가 완전히 분리되기 전까지 10년간 계속되었다.

1991년 이후 이들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업 단위들을 속속 매각하고, 발전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했다. 그리고 유럽과 멕시코에 조인트 벤처를 출범시켰다.

이제 창업 3세기째에 들어선 U.S. 철강은 ‘e-스틸’과 같은 인터넷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는가 하면,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쇄신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또 슬로바키아 최대의 철강 업체인 VSZ를 매입한 뒤, 떠오르는 중부 및 동부 유럽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7억 달러를 들여 그 시설을 현대화했다.

2000년 중반의 수주량 하락은 전 철강 업계를 긴장시켰지만, U.S. 철강을 비롯한 미국 업체의 수익은 상승했다. 어쨌거나 누구도 이제 새삼 철강업이 앤드루 카네기나 J.P. 모건의 시대처럼 수익을 콸콸 쏟아내는 사업이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대로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U.S. 철강이라면 지난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그랬듯이 업계에 계속 중요한 발자국들을 찍어나가리라는 것이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대다.

by 100명 2007. 6. 23.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