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110>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산독재' 상흔 지우고 시민들 활기
◇벼룩시장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이곳에 처음 거주한 양치기 부쿠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원과 가로수가 많고 숲에 둘러싸여 있어 상쾌한 도시이지만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암울한 이미지를 띠고 있었다. 부쿠레슈티는 1980년대 후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질 때 유혈혁명이 일어났던 곳.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인터콘티넨털 호텔 앞의 광장에 모여 민주화 시위를 하던 군중에 총격을 가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직후의 부쿠레슈티는 암담했다. 저녁이 되면 온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고, 낮에는 생필품을 사기 위한 긴 줄이 곳곳에 보였다. 거리의 에스컬레이터는 멈추고 인심도 싸늘했다. 인터콘티넨털 호텔 근처의 광장에는 민주화 시위 도중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촛불이 켜져 있었다. 40년간 공산주의를 건설하고자 했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져 초췌한 잔해만 남았고, 무너진 경제와 암담한 정치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그늘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부쿠레슈티는 많이 달라져 있다. 거리와 상점들은 활기찬 모습으로 변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낙서가 가득했던 부쿠레슈티 대학 근처의 을씨년스런 담벼락은 철거됐고, 그 앞에는 예쁜 분수들이 있으며 따스한 햇살 아래 평화롭게 헌 책방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불가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의 슬라브족과는 달리 루마니아인들은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라틴족이어서 행동이 얼핏 거칠게도 느껴지지만 정열적이고 다감한 면도 보인다. 그래서 가이드 북을 보면 프랑스 파리와 연관시키는 구절도 보이지만 부쿠레슈티에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은 별로 없다.

◇동방정교회 사원.

인구 220만명의 이 도시에는 부쿠레슈티 역사박물관·국립미술관·민가 등이 보존되어 있는 농촌박물관·미술관 등이 있으며, 시의 남부에는 거대한 스탈린 시대의 건축물인 의회 건물이 있다. 차우셰스쿠 시대에 2만명이 동원돼 3교대로 5년 동안 만든 이 건물은 세계에서 미 국방성 다음으로 크다. 현재도 루마니아 의회가 들어서 있고 관광도 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거대한 의회 건물을 만든 이는 국민과 국회의원을 존중한 지도자가 아니라 지독한 독재자 차우셰스쿠였고, 그는 측근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니 그 앞에 서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된다.

시의 북쪽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하며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해서 만든 개선문이 있다. 화려하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파리의 개선문과는 달리 텅 빈 로터리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거리의 책방.

부쿠레슈티에서는 이런 유적지를 다니는 것보다도 길을 걷다 우연히 동방정교회 사원에서 진실된 표정으로 기도를 드리는 사람과 그 사원 앞에서 구걸하는 노파에게 돈을 주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여인들을 보고, 예쁜 분수대 옆에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거나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면 ‘세상에 이같이 반공정신이 투철한 이들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공산주의라면 치를 떤다. 독재에 대한 쓰라린 추억 때문이다. 어디에나 비밀경찰이 득실거렸고, 시키는 대로 손을 흔들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 등 숨막힐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겁니다. 박수는 쳤지만 우리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지요.”

◇민주화 투쟁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

그래서 이들은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꼭 북한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며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딱하다는 얘기를 꼭 곁들이면서. 그리고 경제발전을 이룩한 남한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 본다.

부쿠레슈티에서는 많은 것을 보느라 정신을 뺏기기보다는 생소한 문화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느끼는 재미가 있다.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면 거리의 개들조차 흥미를 끈다. 차우셰스쿠 시절에 도시를 개조하면서 사람들이 이주해야 했는데, 이때 개들을 많이 버렸다고 한다. 그 버려진 개들이 계속 번식해서, 지금도 시내 어딜 가나 집없이 어슬렁거리는 개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런 풍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온 내역과 문화가 읽혀진다면 과장일까? 그러나 이런 풍경도 점점 사라질 것 같다. 루마니아는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고 조만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1992년 초에 방문했을 때 부쿠레슈티의 상황은 암담했다. 부쿠레슈티 역에서 나오니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웬 여인이 다가와 민박을 권유했다. 낡은 아파트에서 외국 손님을 묵게 하는 불법 민박이었는데, 1박에 5달러였다. 실업자인 남편과 아이 둘, 그리고 늙은 시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 여인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독일로 가는 터키 밀입국자를 비롯해 나같은 배낭 여행자들이 종종 묵고 가서 벌이가 됐다.

그러다 며칠 후 루마니아를 여행하던 한국 학생들을 기차 안에서 만났는데,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는 루마니아 대학생과 얘기를 나누다 이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십년 후에 다시 오세요. 우리는 일어서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면 어찌 그 나라가 일어서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도에 다시 갔을 때 루마니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드디어 2007년에 EU에 가입했다. 앞으로 또 10년 후에 가면 엄청나게 변해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루마니아는 이렇게 시차를 두고 여행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나라다.

≫여행정보

부쿠레슈티 역 근처와 시내에 호텔이 있는데, 10∼20달러 정도의 저렴한 호텔부터 비싼 호텔까지 다양하다. 역 근처의 저렴한 호텔은 별로 쾌적하지 않아 피하는 것이 좋고, 가끔 도난사건도 일어난다는 현지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by 100명 2007. 6. 23.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