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109> 불가리아 소피아
슬라브 여인만큼 예쁜 도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밤 11시에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향해 떠나는 밤 기차가 있다.

이 길은 예전에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달리던 길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베오그라드∼베니스∼파리를 거쳐 런던까지 왕복하던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현재 운행이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이 길을 달리는 기차는 내부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새벽 4시쯤 국경을 통과하여 불가리아 영토로 들어서면 기온은 뚝뚝 떨어진다.

한여름이라도 서늘해서 두터운 스웨터를 입어야 하고, 한겨울에는 차가운 냉기에 잔기침이 나온다. 창밖으로는 수목이 울창한 산들이 물결처럼 굽이치고 그 사이를 계곡물이 흐른다. 불가리아는 전체 국토의 90%가 산악지대고, 수도 소피아는 해발 545m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다.

낮 12시쯤 소피아에 도착해 영어 알파벳을 거꾸로 쓴 것 같은 키릴 문자를 보는 순간 여기가 러시아인들과 같은 슬라브족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역사에는 조그만 사설 환전소와 숙소를 소개하는 여행사와 레스토랑들이 있어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데, 요즘 이곳에 처음 들르는 여행자들은 이런 풍경이 초라해 보이겠지만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가 망하던 무렵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밝은 모습이다. 그동안 불가리아의 정치와 경제는 불안했었다. 90년부터 97년까지 7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정부가 바뀌었으며 경제도 엉망이었다.그러나 현재 개혁 정책과 외자유치 등에 성공했고, 2007년에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함으로써 밝은 미래로 향하고 있다.

소피아는 예쁜 도시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함께 밝고 깨끗하게 리노베이션한 건물 안에 들어선 깜찍스러운 상가와 거리를 달리는 트램이 눈길을 끈다. 또한 불가리아의 여인들은 한눈에 보아도 옷맵시가 뛰어나다. 불가리아인들의 조상은 6, 7세기 경부터 이 땅에 들어온 남슬라브족인데, 그들은 왕국을 세우고 한동안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반란을 일으켜 독자성을 유지했지만 14세기 중엽부터 약 500년 동안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

◇소피아 거리.

불가리아인들이 터키에서 독립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는데, 제정 러시아에서 크게 도와주어 그때부터 러시아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때 터키와 대립하던 러시아는 군대를 파병했는데 전사자가 무려 약 20만명이었다고 한다. 이들 러시아 전사자를 위해 세운 비잔틴 양식의 정교회 사원이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이다. 황금색 돔이 아름다운 발칸반도 최대의 이 사원은 내부가 러시아와 불가리아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성화들로 가득 차 있으며, 오늘날에도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정교회 사원에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처럼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성가대의 노래만으로 예배를 하는데, 경건한 노래를 듣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근처에는 세인트 소피아 교회도 있다. 6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수도 이름인 소피아가 이 사원에서 유래되었다는 소박한 사원이다. 그 외에도 몇 개의 교회들이 있고 터키인들이 세운 바냐바시 모스크, 대통령궁과 국립 박물관들이 있지만 여행자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거대한 명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도시는 매우 매력적인 구석이 많다. 5월이면 장미 축제가 열리는 나라답게 소피아의 백화점에서 싸고 질 좋은 장미 향수를 구할 수 있고, 요구르트의 나라답게 맛 좋은 요구르트를 즐길 수가 있다. 원래 요구르트는 터키, 중동, 지중해 연안, 불가리아 산악 지방에서 즐겨 먹었다. 그러다가 1910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메치니코프가 수명이 긴 불가리아 산악부족을 연구하면서 그 장수비결을 그들의 요구르트에서 찾았고, 그때부터 전 세계적인 인기식품이 됐다.

◇대통령궁의 경비병들.

또한 벼룩시장이나 재래시장을 다니며 상인들과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있는데, ‘예스’와 ‘노’에 대한 고갯짓이 우리와 반대인 사람도 볼 수 있다. 즉 ‘예스’라고 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노’라고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 관습은 일설에는 터키인들을 속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이같이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술을 좋아하는 슬라브인들이라서 그럴까, 아침부터 맥주를 들이켜는 그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거나 트램 안에서 승객처럼 앉아 있던 검표원들이 갑자기 일어나 표검사를 하고 다니는 낯선 풍경을 보며 문화가 전혀 다른 이국 땅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이렇게 이방인이 묘한 설레임을 맛볼 수 있다는게 소피아의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by 100명 2007. 6. 23.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