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의 위세에 눌려 한국영화의 개봉 일정이 줄지어 뒤로 밀렸다.
여름 성수기를 겨냥했던 한국영화들이 외화의 막강한 배급력에 치여 기약 없이 개봉 날짜를 연기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무림여대생’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등 6~7월 개봉 예정이던 작품들이 최근 연이어 9월 말 이후로 개봉이 늦춰졌다. 이에 따라 ‘슈렉3’ ‘오션스13’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성수기 전국 개봉관을 거의 점령하다시피하면서 할리우드와 한국영화 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올 들어 갑작스레 개봉 일정이 변경된 대표적 작품은 임창정 박진희 주연의 코미디물 ‘만남의 광장’(감독 김종진)이다. 당초 지난 5월 10일로 개봉일을 발표했던 이 영화는 언론 배급 시사회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8월 중순께로 개봉을 연기했다. 정준호 김원희 고은아 주연의 코미디물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감독 임영성)도 원래 6월께 극장가에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7월 개봉 예정이었던 신민아 유건 주연 ‘무림여대생’(감독 곽재용) <사진 왼쪽>역시 추석 이후로 늦춰졌다. 스타감독의 작품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김상진 감독의 신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사진 오른쪽>도 일찍이 지난 5월 크랭크업하고 7월 개봉을 앞뒀으나 추석 연휴가 있는 9월 말로 연기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5월 들어 ‘아들’ ‘밀양’ ‘황진이’ 등 몇몇 화제작을 빼놓고 극장가에서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관객 독식은 심화돼 지난 5월 1일 ‘스파이더맨3’ 개봉 이후 6월 셋째주까지 7주 연속 외국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97만4418명(서울 관객 수 기준)으로 전체의 24.6%를 차지하는 데 그친 반면 외국 영화는 같은 기간 299만3030명을 동원, 국내 극장가의 75.4%를 잠식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스파이더맨3’를 필두로 올여름 유독 몰려 있는 할리우드 대작에 맞서느니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 식의 국내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영화사 하늘 측은 “내부 시사 결과 반응이 예상보다도 좋아 시기를 늦추되 좀더 크게 터뜨릴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여름 극장가에 다른 큰 작품이 많은 게 사실 아니냐”고 덧붙였다. ‘만남의 광장’ 등을 배급하는 쇼박스 홍보팀 김태성 부장은 “영화별로 내용과 성격을 감안해 개봉시기를 결정하지만 대작 영화 틈새에 묻히느니 정면 대결을 피하는 분위기”라며 “한국영화가 전략적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방법으로 생각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영화 관계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개봉관 독점이 문제”라며 “한국영화의 위기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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