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해적이 집어삼킨 ‘영화의 시대’
문화읽어주는남자 = 2007 초여름 극장가
»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아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20세기가 ‘영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주변부인 우리에게 지난 20세기는 영화보다는 문학이 더 문화적 주류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우리도 꼼짝없이 우리가 영화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의 규모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블로그마다 소설 감상문 대신 영화 리뷰가 넘쳐나고 남녀노소 막론하고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문화적 왕따를 면할 수 없는 형편이며 실력과 재능을 갖춘 수많은 신세대 문화예비군들이 작가의 길을 가는 대신 영화판에서 자신의 미래를 펼치기 위해 줄서고 있다. 명색이 문학평론가로서 문학을 위한 변명을 하라면 못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처럼 명백한 영화의 주류성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제는 또 하나의 서사장르로서의 영화의 주류성을 인정하면서 영화서사의 문법과 영화산업의 논리를 기본적 문화교양으로 습득하고 그 동향과 대중적 영향의 추이를 비판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문화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지금 한국의 영화시장은 철저히 할리우드의 식민지가 되어 있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과 밀도 높은 작품성을 내세운 〈밀양〉과 매력적 역사인물 황진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황진이〉가 가까스로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 외엔 지금 극장가는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 3〉, 〈슈렉 3〉 등 할리우드 오락물의 폭격으로 초토화되고 있는 중이다.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 3〉는 최대 스크린 점유율이 50%를 초과한 바 있고 이 세 편에 또 하나의 3편 시리즈인 〈오션스 13〉까지 포함하면 현재 이 네 편의 할리우드 영화는 예매율 80%를 상회하고 있다고 한다.

막대한 제작비를 동원하여 만들어낸 기술적 경이로움을 무기로 피로에 지친 대중을 열광시키는 할리우드 오락물의 지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스크린 쿼터의 축소와 그것을 기화로 한 할리우드의 공격적 한국시장 전략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인위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스크린 쿼터 축소의 악영향이 할리우드물의 스크린 점유율 확대로 현실화된 것이 곧 이 2007년 초여름 시즌부터이며, 〈스파이더맨 3〉의 한·미 동시개봉, 〈슈렉 3〉 제작진과 ‘피오나 공주’ 캐머런 디아즈의 방한 홍보, 그리고 또 하나의 파괴적 블록버스터가 될 에스에프(SF)물 〈트랜스포머〉의 6월28일 세계 최초 한국 개봉 계획 등은 할리우드 자본이 신흥 영화강국 한국의 영화시장 공략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가 한국의 새로운 주류 문화 장르가 되었다면 그것은 이제 대중적 주변 장르로서의 적당한 무책임성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정신적 동향을 의식하는 작가(예술가)적 양심과 지성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자기 문제로 떠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장르는 고도의 자본·기술집약적 산업으로서 시장에서의 성패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모험적 장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 되면 순식간에 망하는 것이 영화라는 것이다. 스크린 쿼터의 축소나 할리우드 오락물 범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단지 민족주의를 내세워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새 한국의 대표적 문화 장르가 되어버린 영화가 그 양적 팽창에 걸맞게 오늘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그에 영향을 주는 문화적 소통매체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명인/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by 100명 2007. 6. 18.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