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경찰서에"..제 무덤판 전화사기단

음성=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사기 행각을 벌이던 전화금융사기단이 경찰서 금융사기 담당부서로 전화를 하는 바람에 덜미를 잡혔다.

30일 충북 음성경찰서에 따르면 이 경찰서 지능팀 사무실로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 것은 지난달 13일 오전 11시10분께.

자신을 대검찰청 직원이라고 밝힌 남성은 전화를 받은 김모 경장(33)에게 "최근 검거된 국제마약밀매단이 당신 명의의 통장을 갖고 있는데 통장을 분실한 적이 있냐"며 "아직 잡히지 않은 공범이 돈을 인출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이 전화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검 직원 사칭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을 직감한 김 경장은 정색을 하고 "어떻게 된거냐. 얼마 전 각각 600만원과 200만원이 든 통장 2개를 분실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들이 경찰관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기단은 그 뒤에도 사람을 바꿔가며 김 경장의 휴대전화로 경찰청 사건 담당 형사와 금융감독위원회 직원을 사칭한 2통의 전화를 차례로 걸어 김 경장에게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주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심지어 "통화 내용을 경찰에게 알리면 공범 검거에 어려움이 있으니 경찰에 절대 알리지 말라. 이 사실을 누설하면 형사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상대방의 다급함을 역이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고 김 경장은 전했다.

사무실에 앉아 시키는 대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을 이체하는 것처럼 범인들을 깜쪽같이 속인 김 경장은 이들이 불러준 계좌를 부정계좌로 등록시킨 뒤 결국 지난 27일 오전 7시께 충남 천안시 대흥동 모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려던 중국인 조모(36)씨 등 2명을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사기 혐의로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조씨 등이 수십여 개의 직불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by 100명 2008. 6. 30. 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