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콘텐츠 중심’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제작사 청어람, 투자사 엠엔에프씨 손잡고 배급 사업 시작

똘똘한 중형 배급사가 탄생할 것인가.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과 <행복>의 투자사인 엠엔에프씨가 손잡고 배급사업을 시작했다. 청어람-엠엔에프씨는 최근 각 극장에 공문을 보내 7월12일 개봉하는 <해부학교실>부터 공동배급할 계획임을 밝혔다.

2002년 ‘한국영화 전문 배급사’를 모토로 내건 청어람은 <장화, 홍련> <싱글즈> <바람난 가족> 등으로 2003년에는 배급시장에서 할리우드 직배사를 제치고 점유율 3위를 차지하는 등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인 영화사. <괴물> 제작을 전후로 배급을 포기하고 투자·제작에만 전념해왔다. 음악감독 조성우씨가 대표로 있는 엠엔에프씨는 <꽃피는 봄이 오면> <형사 Duelist>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외출> 등에 부분투자를 해왔으며, 올해 들어서는 <두사람이다> <M> 등 자체제작과 메인투자 작품들을 쏟아낼 예정이다.

영화계 안팎에선 청어람-엠엔에프씨가 CJ, 쇼박스, 롯데 3사가 주도하는 배급시장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지 주목하고 있다. 쇼이스트, 코리아픽쳐스 등 중소 규모의 투자배급사들이 뒷걸음질 치면서 지난 2년 동안 배급시장은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독무대였다. 참고로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서울 기준)에 따르면, 2006년 메이저 3사의 시장점유율은 49.1%이며, 한국영화만 놓고 보면 무려 74.6%나 됐다. 중소배급사의 약화로 대다수 제작사들은 수익분배 비율 조정, 배급수수료 인상 등의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선을 닿게 하려고 애썼고, 이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독주를 도왔다. 엠엔에프씨 조성우 대표는 “극장·케이블 자본과 관련한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에게서 합리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로 독자노선의 배경을 밝혔다.

본격 배급사로 발돋움 꾀한다

청어람-엠엔에프씨는 당분간 투자·제작 작품을 공동배급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배급사로서 발돋움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청어람 최용배 대표는 “새로 회사를 만드는 것을 계획 중이다. 이 과정에서 두세개의 펀드 구성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외화까지 포함해 대략 20여편(한국영화 12편, 외화 10편 내외)의 라인업을 확보할 계획이다. 두 회사 다 한국영화와 외화 투자·제작을 겸해왔던 터라 라인업은 충실한 편. 먼저 올해 하반기에는 조셉 파인스,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다윈 어워즈>(9월20일), 이명세 감독의 <M>(10월26일), 3D애니메이션 <히어로>(12월13일) 등이 대기 중이다. 2008년 라인업에는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가제), 강풀 원작 <26년>, 장첸, 서기 주연의 <블러드 브라더스>, 김태용 감독의 <그녀가 사라졌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뜻이 맞는 파트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청어람 최 대표의 말처럼, 이번 결합이 두 회사의 제휴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두 회사 모두 자본 조달 능력을 갖고 있어 제작사들의 관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제작사 대표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겠다”면서도 “청어람은 과거 배급 경험이 있고 엠엔에프씨 또한 재능있는 감독들과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상당한 라인업을 확보한 만큼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수익률 악화 등을 이유로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머뭇거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청어람-엠엔에프씨가 의외로 쉽게 배급시장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지금이 배급사로서 자리매김하는 데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 투자·배급사들이 위축되어 있는 편이라 진입에 압력이 적기 때문이다.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과거 같았으면 사람들이 지금 들어와서 어떻게 하려느냐고 걱정했을 텐데 그런 말들은 없더라”며 “요즘에는 지역 멀티플렉스들도 각 사이트의 수익을 위해 개별적으로 영화를 수급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고, 또 스크린 수는 계속 늘지만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어 배급을 재개하기엔 상황이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최근 영화계 진출설이 흘러나오는 SK텔레콤과 이들이 관계를 맺을지는 의문이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IHQ가 청어람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지만, 청어람-엠엔에프씨는 ‘콘텐츠 중심의 영화사업’이라는 원칙 아래 뭉친 것이라며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청어람-엠엔에프씨가 공룡 메이저 배급사들과의 어깨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름 한복판에 개봉하는 <해부학교실>과 <두사람이다>가 박스오피스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는다면 이들의 향후 행보 또한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최대수익이 가능한 배급의 표준 모델을 모색한다”

청어람 대표 최용배 & 엠엔에프씨 대표 조성우 인터뷰

“최용배 대표와 나는 현장 출신이다.” 조성우 엠엔에프씨 대표의 말은 기존 투자·배급사들보다 기동적인 판단과 실행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배급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청어람 최용배 대표와 조성우 엠엔에프씨 대표를 만났다.

-공동으로 배급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최용배)내가 만든 영화를 내 손으로 배급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알다시피 배급을 그만두고 자체 투자·제작한 영화들의 배급을 맡긴 적이 있다. 합리적인 유통을 바란 것인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화계 내부에서 제작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주체끼리 뭉쳐서 공동배급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엠엔에프씨와 만나게 됐다. (조성우)영화사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기존 메이저 배급사들과 분명한 성향 차이가 있고, 장기적으로 그들과 같이 가는 것보다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게다가 P&A 비용 정도를 부담하고 부가판권 등을 내놓으라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부적으로 배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청어람을 만나게 되면서 좀더 시기가 앞당겨졌다.

-CJ, 쇼박스, 롯데 이른바 빅3가 주도하는 배급시장의 불합리성은 뭔가.
=(조성우)영화사업에 어떻게 접근하는가의 차이다. 우리는 영화사업을 콘텐츠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그들은 인프라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들은 주력 사업의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게 영화계의 수익으로 환원되진 않는다.(최용배)그런 차이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대형 배급사들의 주력 사업은 극장과 케이블이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서는 부가판권을 가져가지만 편당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자신들의 계열사 등에 싼값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기만 할 뿐이다. 누군가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양보하는 것이 상식적인 비즈니스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니 결국 직접 배급할 수밖에 없지 않나.

-따로 회사를 만들진 않나.
=(조성우)처음 시작은 공동배급이지만 점차 하나의 회사 형태로 갈 것이다.

-업계 반응은 어떤가.
=(최용배)어떨 것 같은가? (웃음) 나나 조 대표나 앞으로 죽이는 회사가 될 거야, 하고 뻥을 치는 스타일은 아니니. (조성우)같이 일하는 감독, 프로듀서들이 처음에는 큰 회사들과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요즘은 다들 영화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파트너와 같이 간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와 비교해 청어람-엠엔에프씨만의 배급방식이 있나.
=(조성우)배급계약에서 지금까지는 해외는 물론이고 O.S.T까지 모조리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에 넘어갔다. 우리는 부가판권을 직접 핸들링할 것이다. (최용배)<괴물>은 부가판권 판매조건 등과 관련해서 투자·배급사와 갈등이 있었다. 우리는 <해부학교실>을 시작으로 배급에서 표준화 모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배급시기와 규모는 물론이고 부가판권 등도 최대수익이 가능한 구조를 찾을 것이다. 케이블에서 무한정 틀어대고, 또 케이블 회사가 또 다른 회사에 방영권을 팔아도 뭐라고 못했던 과거처럼은 안 간다. 사실 케이블 시장이 이처럼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는 시장이 되기까지는 영화계가 제값 받지 못하고 권리를 넘겼기 때문이다. IPTV 등과 같은 신규 미디어도 적극적으로 사고할 것이다. 홀드백이 깨진다고 하는데 윈도간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전체 파이를 키울 것이라고 본다.

-SKT의 영화배급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최용배)예상을 두고 굳이 뭐라고 말할 필요가 있나. SKT-IHQ가 청어람의 주식을 30% 보유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고. 엠엔에프씨와 손잡은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그동안 영화단체들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문제 등을 비판했는데, 이제는 비즈니스 부문에서 실질적인 주체가 만들어져서 불합리한 부분들을 바꿔가겠다는 노력에 좀더 주목해달라. (조성우)우리가 합의한 원칙이 있다. 콘텐츠 베이스의 영화사업이다. 청어람과 이 부분에서 뜻이 맞아서 손잡은 것이다.

-자금원이 넉넉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조성우)남 신세질 정도는 아니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고, 엠엔에프씨가 다른 제조·유통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으로 초기 자본을 마련할 수도 있고. (최용배)두 회사 모두 자체적으로 연간 3편 정도 자력으로 자본을 조달할 힘이 있다. 이외의 라인업 확보를 위해 펀드를 두세개 정도 만들 계획이다.

by 100명 2007. 6. 13. 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