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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보도용 아닌 기념비디오입니다" | |||||||||||||||||||||||||||
'6·10항쟁 특집' KBS <미디어포커스>, 방송사 '자발적 충성' 영상 공개 | |||||||||||||||||||||||||||
밤 9시를 알리는 시보와 함께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시작하는 80년대 땡전뉴스. 그리고 민중들의 민주화 열망을 칼과 총으로 짓밟았듯, 언론을 통폐합하고 보도지침을 내리며 언론을 탄압한 '독재권력'의 행태. 이는당시엔 어쩔 수 없었던 '굴종'의 언론 역사로 투영된다. 그러나 80년대'전두환 정권과 방송'의 관계 설정에 새로운 의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보도용이 아니라 보관하시라고 만든기념 비디오"라며 방송사가 직접 대통령의 생일과 자녀 결혼 등 개인 경조사를찍어 상납했던 관행이 20여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5공 시절이었던 대략85년부터 88년 사이에 청와대로부터 KBS에 이관된 자료들로 170여개에 달하는 영상 테이프 가운데 일부다.'전두환 기념관'을 만들 요량으로 KBS에 이관해둔 것들인데당시방송사들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던진 각종 '추파'의 흔적들을 증언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과 방송'의 관계는 '보안뉴스'에서부터 실체가 드러났다.당시 보안사령부 통신과에서 제작한 '보안뉴스'는전두환 사령관의 주요 행사와 동정을담은 내부용 뉴스였다.<미디어포커스>가 방송용으로 복구시켜 27여년 만에 전파를 탄'보안뉴스'는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는 영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 했다. 특히<대장진급 파티> <79년 만찬> <79년 송년파티> <대장진급 및 축하다과회> 등 주로 만찬과 파티가 많았는데 전두환 사령관의 입을 통해 "참모총장측에서 반란을 획책하여 나를 지지하는 정의로운 지휘관들과 함께 반란을 진압" "내가 사성장군이 되는 것은 군의 인사법과 절차상으로 불가능" 등정권 찬탈과 실상에 대한'속내'를 드러낸 발언들이 등장한다. <보안뉴스>에 기록된 방송사의 '자발적 충성' '보안뉴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으니 <79년 MBC 위문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인기 연예인들을 동원해 부대 장병들의 위문 공연을 연 MBC가 전두환 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장면까지기록돼 있다. 80년 6월19일 '보안뉴스' <국보위 파티>에는 TBC TV 카메라도 여러대 등장한다.당시 광주를 총과 칼로 짓밟은 신군부가방송사와 함께 위문 공연과 파티를 열어'축배'를드는현장을 '보안뉴스'가 생생히 기록했고, 이것이 2007년 현재,방송사 자료실에 보관돼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MBC 보도국 <대통령 각하51회 생신 비디오> "보도용 아니라 보관하시라고…" 또한청와대 비서실과 기자단이 '짜고' 대통령 모르게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한 사실도 밝혀진다. 카메라는 전두환 대통령과 깜짝 파티 행사를 담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일제히 머리와 허리를숙인다. 행사장 병풍에는 '한국기자협회원 일동' 명의로 '경축, 대통령 오십일회 생신 축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청와대 기자들과 기자협회원 일동이 대통령의 생신을 경축하고 나선 진풍경을 방송사가 직접 나서서 촬영한 것이다.'보관용으로 기념하시라고' 말이다. 역사가 거꾸로 흘렀다면,정권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쓴방송사들의 가상한 노력이'신군부 기념관'에 소중히 모셔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KBS와 MBC 뿐만 아니라 국립영화제작소도동일한 대통령 개인 행사를 영상으로 제작했던 것으로 나타나이들의 자발적인 '충성 경쟁'을 짐작케 한다. 한편 MBC <수사반장> <야상곡> 등프로그램까지 따로 복사해 청와대로상납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당시 KBS 영상자료실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미디어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스포츠를 좋아해 스포츠와 영화, 외화 등을 카피해서 청와대로 보냈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따로 복사해 방송사 비서실을 통해 청와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편리하게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특별 관리를한것으로 볼 수 있다. KBS가 제작한 2시간30분짜리'전두환 대통령 장녀 결혼식' 비디오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나온 뉴스도 빠짐없이 녹화해 청와대로 보냈다. 상납된 영상에는다음과 같은 설명 화면이붙어있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의 아세안 5개국 순방을 오랫동안 기념하기 위한 기록보존 테이프입니다. - MBC 보도국" '자발적 충성'에 충실했던 방송사들은 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씨가 후보로 결정되자오랜 시간을 할애해 노씨를 치켜올리는 데 급급했다. 반면 이날 거리를 뒤덮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함성은 '과격한 구호'와 '격렬 시위'로 호도됐다. 이후 시간이흘러 신군부의 핵심 세력은 구속되고 12·12는 군사반란으로 규정됐다. 그리고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던 방송은이제 똑같은 입으로그를'반란의 수괴'로 비판한다.'무임승차'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이 무임승차를 했으면 내릴 때 돈을 내듯이 최소한의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김평호 단국대 교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사건과 정신이고, 불과 20여년 전이다…우리 언론은 국민 보편적 이익과 시선에 부합하지 않는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김재영 충남대교수) "TV 방송이 80년대 자료와 과오를 제공한 적이 있나. 가끔씩 보여줄 뿐인데…발굴해야 할 역사적 기록을 소개해서 우리가 과거에 저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수 있는것이 필요하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화가 난다. 언론권력이 대단한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때로는 역사가 흘러가야 하는 방향과 정의에 역행하기도 한다." (신혜진, 6·10 항쟁 당시 대학생) 방송이 정권 찬양을 넘어 전두환씨 개인과 관계를 맺으며 유기적으로 권력과 결탁한 사실을 새롭게 조명한 <미디어포커스>는'무임승차' 언론에게다음과 같은화두를 던지고 있다."6월 항쟁 주역들은 되묻고 있다. 80년대 정권에 부합했던 언론은 2007년 현재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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