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을 떠나보내며..어느 배급사의 한숨
`천년학`을 떠나보내며..어느 배급사의 한숨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훨훨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쓸쓸하게 날개를 접을 모양이다.


배급사 프라임엔터테인먼트는 23일 `천년학`이 전국 4개관에서 상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동안 논의되던 단관 장기 상영 계획도 물건너간 눈치다.

한 관계자는 "장기 상영을 하고 싶어도 극장들이 모두 `스파이더맨3`와 `캐리비안의 해적3-세상의 끝에서` 잡기에 혈안이 돼서 극장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다"고 씁쓸해했다. 인디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예술전용극장들도 이미 상영작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천년학`은 조용히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지난 4월 `천년학`의 개봉을 앞두고 숱한 말의 성찬이 쏟아졌다.

사실 `천년학은 ``거장`의 100번째 영화라는 의의에 칸 국제영화제 출품이 유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면서 영화계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그 때도 지금의 현실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편제`의 신화를 떠올리며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애초 `천년학`은 멀티플렉스를 통한 와이드 릴리스 방식으로 유통될 영화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천년학`이 제작 과정에서 불거진 시비도 지금의 현실에 대한 예고였을지 모른다.

`천년학`은 일주일 아니 주말 포함 단 3일 만에 흥행 여부가 결정되는 요즘의 영화 유통 시장에서는 영화가 주는 미덕을 알릴 수 없는 작품이다. 분명 `천년학`이 임권택 감독의 최고 걸작은 아닐 것이다.

흘러간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방식도 빠른 편집에 익숙한 20대 관객들에게는 지겨울 지 모른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원래 대중의 구미에 영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서편제` 이후 `춘향뎐` `취화선` 등을 통해 자신의 길을 걸으려 했지 적당히 타협한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천년학`의 미덕은 우리도 모르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소리에 실은 데 있다. 송화가 첩으로 들어가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 창을 불려주는 매화골 장면과 만나도 안을 수 없는 누이에 대한 사랑을 창으로 표현하며 산전벽해를 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천년학`이 추구하는 바를 오롯이 드러낸다.

이 같은 매력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면 잘 느낄 수 없을 터이다.

어쩌면 `천년학`은 수많은 말들로 둘러싸인 영화였다. `국민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타이틀에 수많은 후배들의 헌사, 평단의 예우, 스크린쿼터 축소 여파의 상징적인 작품...

그 덕에 말을 걷어내고 작품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했다.

극장을 찾지 않던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몰리는 현실을 탓할 수는 없다.

단지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천년학`이 둥지를 틀 보금자리조차 없다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by 100명 2007. 5. 23.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