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세대를 떠난 ‘인물’들(26)
잠 못 자고 주7일 일한 근면과 성실성이 밑천


브루스 스미스 중학교 중퇴 후 운송업 투신 1925-2007
60년전 3천달러 빌려 트럭 구입 현재 430대 굴려
연수입 1억달러, 21번 째 대회사로 키워



브루스 스미스의 얘기는 특이하지 않다. 그것은 피땀 흘려 노력해서 이룬 전형적인 성공담에 불과하다. 성실과 근면의 승리는 가끔 듣는 얘기지만 또 들어도 또 배울 점이 있다.

온타리오 농촌출신의 스미스는 60년 전 트럭 1대를 갖고 우유배달업에 뛰어들었다가 이젠 연수입 1억달러의 트럭운송회사를 만들었다. 온타리오주 심코에 본부를 둔 브루스 스미스 운송회사의 초록-노랑-흰색 트럭, 트레일러들은 오늘날 캐나다 전국과 미국을 누빈다. 26만명을 고용한 캐나다 트럭운송사업은 국내 화물의 90%를, 미국과의 교역품 3분의 2를 수송한다(가치기준). 트럭업은 캐나다 최대의 남자근로자 고용주이다. 남자고 여자를 불문, 운전사 부족현상은 여전, 한국같은 데서 운전사들이 몰려오지만 언어문제로 취업에 장애가 있다.

“아버지는 늘 ‘네가 회사를 잘 보살피면 회사는 너를 늘 보살필 것이다’라고 말씀했어요.” 회장겸 CEO(사장)인 존 스미스의 말이다. 아버진 머리가 부족한 사람일지 몰라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었다. 47년 설립된 브루스 운송회사는 트럭 430대, 트레일러(트럭이 끌고 다니는 화물상자) 1,500대, 사원 638명을 가진 회사로 연수입으로 보면 캐나다에서 21번 째 트럭회사다.

7남매 중 하나인 스미스는 농부였다가 징집된 아버지가 1차대전 전투 중 독일군 독개스 공격을 받은 후유증으로 39년 사망하자 학교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14세 나이로 그는 옥수수, 딸기, 토마토를 재배했고 돼지와 소들을 키웠다. 그는 ‘가족부양자’로 분류되어 2차대전 중 징집이 면제될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어느 날 그는 근처 농부를 위해 우유를 배달했다. 스미스에게서 매일 우유를 배달받는 낙농업자(우유로 버터, 치즈, 아이스크림 등을 만드는 사람)는 그의 성실성과 근면성에 감탄, 그에게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3천달러-1년치 봉급에 해당-를 꿔 줄테니 그 돈으로 5톤짜리 K-8 트럭을 사서 낙농제품을 배달해 달라. 배달처마저 권리금 없이 너에게 주겠다.’ 이런 좋은 제의를 받자 그는 즉시 업주와 계약을 맺었다. 이미 산떠미같이 많은 농사일을 가진 그는 이젠 일을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더 많이 해야 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와 치즈 등을 배달했다. 젖소들은 젖을 쉬지 않고 생산하기 때문에 그도 주7일 쉬는 날이 없었다. 더군다나 트럭은 냉동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지체란 있을 수 없었다. 대개는 날씨가 더워지기 전인 정오까지 배달을 끝내야 했다. 그는 성실히 이 일을 수행했다. 오후가 되면 일이 없어 트럭이 놀았다. 그런데 트럭이 쉬고 있음은 수입의 중단이며, 정비, 보험료 등의 간접비용은 계속 지불됨을 그는 깨달았다. 차도 기계와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굴려야했다. 노력 끝에 그는 오후에 비료나 흙, 퇴비 등을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덕분에 해가 떨어져야 그는 쉴 수 있었다.

52년에 태어난 아들 존은 아버지와 같이 한 우유배달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한 통에 100파운드나 되는 우유철통을 두 팔에 매고 간신히 트럭에 올려놓고는 팔꿈치로 밀었어요. 너무 무거워 나는 밀 수도 없었지요.” “그는 그 지방에서 손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어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원래 건장한 그의 체질이 그에겐 큰 도움이었다.

브루스는 60년 우유배달권을 팔고 곡식이나 과일 등 농산품 수송만 계속했다. 이때쯤 그는 지역 제빵업소의 일을 맡았다. 제빵소는 식품업계의 거물 켈로그(Kellogg)사에 납품했는데 켈로그는 나중에 제빵소를 사 버리는 바람에 브루스는 운 좋게도 대형 식품사의 수송계약자가 됐다. 그는 트럭 2대를 가지고 카네이션밀크 제품을 수송하던 조그만 회사를 샀다. 이로서 트럭은 총3대로 늘었다. 이 트럭회사는 네슬레(Nestle)식품사 상품을 수송했기 때문에 브루스는 네슬레라는 업계 자이언트와 거래관계를 갖게 된 것도 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71년 스텔코(Stelco) 강철회사가 근처에 공장을 열자 거기서도 그는 수송 일을 맡았다. 그는 크라프트 훗 식품, 라밧 맥주, 퓨로레이터 속달및 배달업, 도파스코 철강 등 굵직한 회사들을 고객으로 가졌다. 고객들은 그의 약속이행 성격과 정직, 성실을 높이 샀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미소를 띠었고 누구에게나 거칠게 소리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늘 카버롤(바지와 몸통이 붙은 작업복)을 입었다. 그는 자기가 주인이란 것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동생의 회고다.

오늘날 그의 회사는 온타리오주와 퀘벡주, 미국의 프로리다 주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모든 트럭은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이 박스는 트럭의 스피드, 엔진상태, 도중에 몇 번 쉬었는지, 운전형태 등을 기록, 정보를 매일 송신한다. 운전석은 운전사들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온도조절 장치를 가졌다. 안전과 연료비, 배기 오염 등도 그가 관심 갖는 분야다. 차량정비는 경쟁회사들과는 달리, 온타리오주에만 있는 5개 정비소에서 75명의 기술자들이 담당한다. 아버지 사업은 아들 존이 대를 이었다. 브랙박스 등은 모두 존의 아이디어였다. 아들은 회사를 딸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작년에 이 회사는 트럭운전사가 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심코에 있는 팬쇼(Fanshawe) 전문학교에서 전문운전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에게는 수업료를 전액 보조한다는 계획이다. 최초의 수혜자는 크리스틴 루(27세)라는 여인이었다. 운전기사 부족을 면해보려는 장기 계획이다. 스미스는 올해 들어 혈액응고증으로 입원했다. 의사들은 “40세 된 사람들이라도 벌써 죽었을 것”이라면서 그의 건강에 감탄했다. 그는 82세 생일 다음날 사망했다.

브루스 스미스: 온타리오주 노폭크 카운티에서 1925년 2월 28일 출생, 심코에서 지난달 1일 사망. 향년 82세.

by 100명 2007. 5. 22. 0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