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세대를 떠난 ‘인물’들(18)
베스트셀러 제조기 - 시드니 셸든 Sidney Sheldon (1917-2007)


교민가정에 1, 2권 없는 가정 없어
시대변화 따라 민감하게 변신, 피나는 노력



▲ 교민들 중에 그의 독자 아닌 사람이 있을까? 19편이 넘는 베스트 셀러를 쓴 이 시대의 이야기꾼 시드니 셸든(87년 사진)은 특히 열광적인 여성독자층을 가지고 있었다. "글 쓰지 않는 다른 일을 생각 해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첫 장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이 도저히 중단할 수 없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한 장(챕터)이 끝날 때마다 독자가 '한 장만 더 읽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다."

국내 한인사회, 특히 2·3세들이 있는 가정마다 그의 소설 한 두 권이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고, 영어소설과 거리를 둔 1세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친숙하다. 최근 그의 사망이 전해지자 많은 팬들, 특히 여성들의 아픔은 진했다.

시카고 출신의 인기 소설가이자 TV드라마 프로듀서였던 시드니 셸든(Sidney Sheldon)은 1917년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그의 성은 슈텔(Sche-chtel). 그는 10살 때 자작시를 10달러에 파는 등 일찌감치 글재주를 보였고,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한 후 1937년 할리웃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3류 영화 극본을 교정하는 일을 했었다.

2차대전 때 공군 조종사로 활약한 셸든은 종전 후 뉴욕으로 이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쓰면서 할리웃의 MGM과 패러마운트 스튜디오를 위한 영화각본도 계속 쓰느라고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다. MGM과 계약 당시인 82년 그는 "그때 나는 일 밖에 몰랐다. 쉴 틈이 없었다. 하루는 프로덕션 책임자가 내 각본이 총 8개로 다른 3명의 작가들이 써낸 합계보다 더 많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나를 프로듀서로 승진시켰다"고 회고했다.

50년대에 들어 TV시대가 열리면서 영화가 시들해졌을 당시 셸든은 다시 한번 도전했다. TV작가였다. 그는 인기 여배우 패티 듀크의 'The Patty Duke Show'의 작가로 7년 동안 일했고,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내 사랑 지니(I Dream of Jeannie·65~70)'를 제작했다.

셸든은 '지니'의 마지막 시즌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써 볼 생각을 가졌다. 정체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목표를 쫓는 그는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전화를 끊고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후 소설에 매달렸다. 내가 문장을 구술하면 비서가 타이핑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다시 TV 비즈니스로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그는 69년 첫 소설 'The Naked Face'을 내놓았고 이 작품으로 미국 추리소설가협회(Mystery Writers of America)'가 주는 '에드거 앨런 포 상(Edgar Allan Poe Award· 최우수 데뷔작)'을 수상했다. 다음 작품인 'Other Side of Midnight'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명단 1위에 올랐고, 나중에 영화와 TV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됐다.

영화·TV·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성공한 팔방미인이었지만 셸든은 소설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큰 키, 우람한 몸집과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타자기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직접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없었다. 넓은 사무실 안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비서에게 문장을 불러주는 식으로 하루 평균 50쪽이나 되는 엄청난 스토리를 창작했다. 이런 식으로해서 총 1,200~1,500쪽이 채워지면 다음은 편집 차례였다.

"12~15번이나 고쳐 쓰는 게 보통이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원고가 확정되기까지 1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지난 92년 회고했다. 마지막까지 출판사에게 원고를 미리 보여주지 않기로도 그는 유명했다. 87년 'Sands of Time'을 집필 중이던 그는 출판사 간부를 휴양 중이던 프랑스 남부로 불러 원고를 다 읽을 때까지 호텔방에 가둬놓기도 했다.

셸든의 주인공은 주로 '드센' 여자들이다. 그는 인정사정이라곤 없는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생활력 강한 여자들에게 조명을 비췄다. "여자는 더 복잡하다. 강하면서도 취약한 부분이 많다. 제임스 본드가 헤쳐나 올 상황에 여자를 빠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키 힘들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문학가라고 보긴 힘들어 많은 문학비평가들은 셸든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두터운 여성 독자층의 지원으로 베스트셀러를 19편이나 쓴 단골이었다.

30년 간 행복하게 지냈던 첫 부인과 85년 사별, 광고회사 중역 알렉산드라 코스토프씨와 재혼했다. 그는 지난 1월30일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9세.

by 100명 2007. 5. 22. 0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