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세대를 떠난 ‘인물’들(2)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이자 스승 - 얼 우즈
Earl Woods (1932-2006년)





▲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란 실증을 보여준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 그는 아들을 골프 신동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코 강제적으로 하진 않았다. 그의 영재교육법이 큰교훈을 주고 있다.
“내가 유아용의자 벨트를 풀어주면 타이거는 의자에서 내려와 골프채를 잡고 공을 쳐 홀 안으로 집어 넣었다.”

얼 우즈는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아들의 성공에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아버지도 아니다. 그는 켄자스주의 첫 흑인 야구선수 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 게릴라 특전부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은 아들 타이거 우즈를 훈련시켜 최연소자 프로 골프선수이자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이었다.

타이거의 본명은 엘드릭. 우즈씨는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그의 막내 아들에게 타이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현재 30세가 된 타이거 우즈는 세계 골프 랭킹 1위를 334주 동안 지켰고 10번의 주요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했다. 타이거 우즈는 1997년 어가스타 국내 골프 클럽의 마스터 토너먼트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아버지 우즈는 “나는 타이거가 태어난 날, 그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골퍼로 키울 생각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얼 우즈는 아들에게 강제로 골프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골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연습을 할 때는 정신적으로 강해지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타이거 우즈는 프로선수로써 단지 10년의 경력이지만 10개의 프로골프 선수권대회에서 이미 48번 우승을 했고 연속 142 게임에서 기록을 갱신했다. 얼 우즈 책 서문에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는 내가 성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는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조언과 격려로 함께 했습니다”라고 기록했다.

6형제 중 막내인 얼 우즈는 켄사스에서 자랐다. 얼 우즈가 13세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가 켄사스 시티의 흑인리그에서 뛰기를 원했고 어머니는 공부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1953년 대학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졸업한 얼 우즈는 미국 특별 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태국에서 접수원으로 일하던 쿨티다를 만나 1969년 결혼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워낙 용감하고 용맹스러워서 별명이 ‘타이거’였던 중령 친구 구엔 퐁과 함께 깊은 우정을 나눈 우즈는 나중에 아들에게 그 이름을 주기로 퐁과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엘드릭(타이거) 우즈는 1975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얼 우즈는 캘리포니아 사이프레스로 이사했고 차고에 매트와 네트를 설치하여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골프를 가르쳤다. “나는 정신적으로 그를 강하게 단련시키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는 늘 “오른쪽엔 물구덩이, 왼쪽엔 장애물”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가르쳤다.

얼 우즈는 2004년 12월 타겟 월드 챌린지 대회에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 참여했고 대회 우승금 125만불은 그가 설립한 ‘타이거우즈 재단’에 기증했다.

Earl Woods
1932년 3월 5일 맨하탄 출생
2006년 5월 3일 74세 일기로 사망
1998년 전립선 암 선고, 방사선 치료 받았으나 2004년 암 재발
유가족으로 미망인, 아들 타이거 우즈,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 세 명이 있다.

by 100명 2007. 5. 22. 0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