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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기술력, 미국 시장장악
끝없는 신제품 개발로 일본제품 인지도 상승
창업자: 창업자: 마사루 이부카, 아키오 모리타
특징: 전 세계 사전 시장을 새로 정립함
주요 제품: 가전 제품, 영화, TV 프로그램, 음반
연간 매출: 630역 820만 달러
종업원 수: 18만 9,700명
주요 경쟁사: 마츠시타, 필립스, 타임 워너
회장 겸 CEO: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 안도 구니타케
본사: 일본 도쿄
창업 연도: 1946년
웹사이트: www.world.so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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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수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그래도 소니는 업계를 주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분투를 계속한 끝에 또 하나의 몽상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소니에 아찔한 성장을 안겨주고, 그 후 오랫동안 그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제품은 바로 개인용 음향 기기 ‘워크맨’ 이었다.
그런 뒤 소니는 음악과 텔레비전과 영화의 전달 장치만을 개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그런 매체를 생산하는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기 위해 세계 수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사들였다. 더불어 반도체와 배터리 및 카메라, 컴퓨터 모니터 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 대부분이 저마다 착실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플레이 스테이션 비디오 게임기만큼 시장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플레이 스테이션은 1994년 출시 되자마자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의 전 제품 라인 가운데 가장 우뚝 선 제품으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곧바로 격심한 경쟁이 시장을 치고 들어옴에 따라, 소니는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업계의 제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분전하는 한편, 인터넷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발걸음도 늦추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통신공업’ 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소니의 씨앗은 1921년 아키오 모리타가 태어남과 함께 뿌려졌다. 아키오는 나고야에서 대대로 양조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랐는데, 가업을 이으리라는 가족의 기대를 뿌리치고 자신의 열망에 따라 기술 분야에서 뜻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1944년 오사카 제국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쟁 동안 요코스카의 공군 병기고에서 근무했는데, 거기서 소니의 공동 창업자가 된 마사루 이부카를 만났다. 마사루는 일본의 전시 연구 위원회의 산업계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은 열 유도 장치와 야간 투시 장치들을 공동으로 개발했다.
전쟁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도쿄에 회사를 차렸다. 목표는 그때까지 발전해온 다양한 혁신 기술을 응용해서 일반인을 위한 새로운 전자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마사루는 제품 분야를 담당해서 전압계 및 전기 방석과 같은 제품을 개발했다. 아키오는 사업 분야를 담당했는데, 처음부터 두 사람은 회사의 제품을 전 세계에 마케팅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1949년 마사루가 자기 녹음 테이프를 개발하자 이들의 사업은 드디어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이들은 곧이어 이 테이프를 사용할 수 있는 오디오 테이프 녹음기를 만들고, 1950년에 일본 시장에 출시했다. 마사루의 테이프가 시장에 나온 그 해에 이 젊은 기업은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전자 트랜지스터 생산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 이 테이프 녹음기의 성공을 토대로 1955년 소형 라디오가 태어났으며, 1957년에는 포켓형 라디오가 뒤를 이었다. 도쿄통신공업은 승승장구해 나갔지만, 전 세계를 노리던 아키오가 볼 때 회사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각종 외국어 사전을 뒤져가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적절한 회사 이름을 찾다가 ‘소리’라는 뜻의 라틴어 ‘소누스’를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1958년에 도쿄통신공업은 소니가 되었다.
그때부터 소니의 성장은 그야말로 천정부지였다. 1960년 소니는 8인치 트랜지스터 TV를 출시했고,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다음 해인 1961년 소니는 일본 기업 최초로 뉴욕 증시에 주식을 상장했다. 2년후 아키오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해서 1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의 사고 방식과 경제계의 운영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 공장들을 지었으며,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집단 의식 속에 소니라는 브랜드를 새겨넣기 위해 미국 스타일의 광고 캠페인을 펼쳐나갔다. 몇 년 후 트리니트론이 인기를 끌게 되자, 도시바와 히타치 등 미국에 전자 제품을 판매하던 다른 일본 기업들도 덩달아 높아진 인지도의 덕을 보았다. 이들 일본 기업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963년의 7퍼센트에서 1974년에는 40퍼센트로 뛰어올랐다. (1974년에 이르면 미국 내 컬러 TV중 1/5이 소니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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