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104> 인도 사르나스
[세계일보 2007-05-11 09:36]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서른다섯 살의 청년 싯다르타는 법열에 잠겨 49일을 보낸 후, 잠시 망설인다. 자신이 발견한 이 오묘한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말 것인가. 초기 경전에 따르면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나 결국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에게 설법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부다가야에서 같이 수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찾아 그들이 머물던 므리가다바(녹야원·鹿野苑)로 간다. 그곳은 바라나시에서 약 10㎞ 떨어진 리시파타나(현재의 사르나스) 근처에 있었는데, 부다가야에서 약 240㎞ 떨어진 이곳까지 부처는 홀로 걸어서 왔다.

현재는 불교 유적지가 흩어진 이 일대를 모두 사르나스 유적지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언덕에 있는 큰 탑이다. 이 탑의 이름은 차우간디 스투파로, 부처가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만났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후대에 세운 것이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영불탑(迎佛塔)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수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부처가 오는 것을 보고 ‘타락한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왜 우리를 찾아오는가’라며 모른 체하기로 한다. 그들은 고행을 중단한 부처가 니란자나강에서 수자타라는 여인에게 유미죽을 얻어먹는 것을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가 다가오자 자신들도 모르게 인사를 하며 ‘고오타마, 멀리서 오시느라고 고단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부처는 자신의 성을 ‘고오타마’가 아니라 ‘타타가타’로 부르라고 한다. 이는 여래(如來)라는 뜻으로,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 뒤 다시 세상으로 와 설법하는 사람’이란 의미였다.

부처는 이곳에서 1㎞ 정도 더 들어간 숲에서 그들에게 고행과 쾌락의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中道)의 길을 갈 것이며, 그 길을 가는 방법으로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직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 등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친다. 이에 다섯 수행자들이 감명을 받고 최초로 부처의 제자가 된다.

◇부처와 설법을 듣는 다섯 제자의 조각.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쇼카 대왕이 그 장소에 거대한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세웠지만,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유적지 부근에는 다섯 제자들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조각이 남아 있는데, 경전에 따르면 이때 숲속의 사슴들이 떼를 지어 나와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이곳에는 사슴이 많이 살아 불교 경전에서는 녹야원(鹿野苑)이라 부르는데, 현재는 울타리가 쳐진 숲에서 방목되는 약간의 사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르나스는 최초로 부처가 설법한 곳이며, 동시에 최초로 불교 교단의 형태가 갖춰진 곳이었다. 진리를 발견한 부처(佛), 진리인 법(法),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인 승(僧), 즉 불교에서 삼보(三寶)라고 부르는 3요소를 갖추게 된다. 또한 사르나스는 수많은 제자와 최초의 신도가 생긴 곳이다. 부처가 사르나스에서 머무는 동안 어느날 새벽 한 젊은이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야사로, 바라나시에 사는 큰 부자의 외아들이었다. 야사는 흥청망청 쾌락에 빠진 삶을 살다가 어느날 흥겨운 잔치가 끝난 후 깨어나 아름답던 시녀들이 추하게 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삶에 회의하고 고뇌하던 그에게 부처는 가르침을 폈고, 야사는 그 길로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야사의 아버지는 최초의 신도가 된다.

야사처럼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똑똑한 청년이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바라나시로 퍼졌고, 그의 친구들이 줄을 이어 출가하면서 부처의 제자는 60명 정도가 된다. 부처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편 후, 세상을 교화하러 떠나라며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한다.

◇승원 유적지.

“너희가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법을 먹고 사는 아귀’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의 가르침은 인도를 넘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시공을 초월한 인류의 빛이 되었다. 사르나스에는 그외에도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사르나스 사자상과 함께 많은 불교 미술품, 불상들이 전시된 고고학 박물관이 있으며, 5∼6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다메크 스투파와 한때 1500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승원 유적지 터가 남아 있다. 사르나스는 현재 불교 신도들이 성지순례 때 꼭 들르는 4대 성지 중의 한 곳으로, 폐허 속에서도 영광스러운 시절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성스러운 도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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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스는 갈 때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신발을 지키는 이들이 악착같이 돈을 받았다. 그러나 원하는 액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다시 가보니 약간의 돈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인들이 내는 액수의 열 배, 스무 배 정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아마도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많이 오다 보니 액수를 크게 늘린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가보니 인도인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지만, 관광객에게는 은근히 요구를 했다. 내가 ‘왜 저 인도인들에게는 안 받고 나에게만 받느냐’고 따져 묻자 슬그머니 돌아섰다. 사소한 일이지만, 인도가 좀더 발전해야 체계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액을 정확하게 계산하든지 아니면 아예 안 받든지. 이렇게 해야 여행자들이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인도 사회가 체계가 잡혀갈수록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조금씩 사라져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인도 여행의 묘미는 그런 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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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스에 가려면 일단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야 한다. 삼륜 오토바이인 오토릭샤를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 있어, 대개 바라나시에서 숙박하며 당일치기로 돌아본다. 사르나스에 숙소는 많지 않은 편이다. 조용한 곳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 절인 ‘녹야원’이나 중국 절의 숙박시설, 인도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투어리스트 방갈로 등을 주로 이용한다.

by 100명 2007. 5. 15.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