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것만 원해∼” 컨버전스 지고 디버전스 뜬다
[쿠키뉴스 2007-05-15 09:49]

[쿠키 경제] 최근 디지털 카메라를 20만원대에 구입한 김현철(28·서울 서초동)씨. 카메라를 고를 때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부터 훑었다. 기능과 품종이 너무 다양해서다.김씨는 최저가격 순으로 정렬해 카메라 기능을 따져봤다. 화소 수, 줌 기능, 배터리 종류 등을 비교했다. 인기상품 순으로 다시 검색해보니 그가 고른 제품은 3위였다. 김씨는 곧바로 그 제품을 선택했다.

고가 제품들과 비교해봐도 화소 수가 낮고 이미징 처리속도가 약간 늦다는 점, 티타늄 재질이 아닌 알루미늄이라는 것 정도가 달랐다. 김씨는 “전문 사진 찍을 것도 아니고 미니홈피에 사용할 사진정도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면 충분했다”면서 “필요한 기능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어림잡았던 가격보다 50여만원을 아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씨처럼 제품 사양을 속속들이 비교한 뒤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고름으로써 비용까지 아끼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디버전스 마케팅(divergence marketing)이 뜨고 있다. 가격과 기능의 거품을 빼고 소비층 취향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디버전스 마케팅 특징이다. 소비층 취향에 따라 맞춤형 모델을 내놓기 때문에 시장이 세분화될수록 마케팅 전략도 다갈래로 펼쳐진다. 실용적인 것을 찾고 합리적 소비가 늘면서, 뚜렷한 타깃 소비층 없이 한 가지 제품에 다양한 기능을 모아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컨버전스 마케팅(convergence marketing)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

캐논 코리아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MP3나 네비게이션 기능을 추가한 카메라도 출시하고 있지만, 카메라 고유 기능에 충실하면서 전문가용은 기능을 향상시키고 취미용은 기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 외적 기능은 접어두고 소비층에 맞춰 성격을 달리한 제품에 주력한다는 설명이다.

기능 다양화와 업데이트에 주력해왔던 휴대전화 업계도 최근들어 기능이 간소화된 모델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 3월에 나온 모토로라 MS900 모델은 카메라 기능이 아예 없다. 통화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다. 이 모델은 두 달여만에 2만5000여대가 팔렸다. 130만 화소로 카메라 기능을 최소화한 삼성 SCH- S470 모델도 제품이 출시된 2월 1만9700대, 3월 5만1000대, 4월 7만2100대가 팔려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디버전스 현상은 다기능 제품의 유용성에 회의를 느끼거나, 기능은 많지만 고유 기능엔 취약한 제품에 불편을 겪었던 소비자들의 학습 효과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2년전 첫 500만 화소 휴대전화를 100만원에 구입했던 윤모(27·여)씨는 “화소 수만 높을 뿐 상대방 음성이 잘 안 들려 처음 1년간 애프터 서비스를 4차례나 받았다”면서 “통화 기능이 부실한 휴대전화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윤씨는 보조금 혜택을 감안해 심플한 모델을 구입할 생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류한호 마케팅전략실장은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2∼3년 사용해보면 한 차례도 쓰지 않은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차 가치소비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케팅 초점을 요구사항이 명확한 특정 소비층에 맞춘 디버전스 마케팅은 틈새시장과 같은 맥락이다. 규모는 작지만 요구사항이 구체적인 소비층을 대상으로 세분화된 시장부터 공략하는 방식이다.

연령대, 성별, 취향에 따라 다른 틈새시장 전략은 은행 상품에서 두드러진다. 소비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은행상품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된 마케팅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신한은행 탑스 캠퍼스 플랜 저축예금.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혜택을 모아서 만든 상품으로는 처음이다. 가입하면 취업정보 서비스 이용권, 배낭여행 할인권을 받을 수 있다. 일정 학점이나 어학 점수, 헌혈 증서 또는 사회봉사 인증서를 내면 수수료를 우대해준다. 지난 8일까지 2만8000계좌가 트였다. 상품개발실 구현수 대리는 “주요고객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풍부한 만큼 대학생들의 관심거리를 골라 상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겨냥 상품은 경쟁적으로 확산된 상태다. 지난해 9월말 여성우대서비스를모아 만든 국민은행 명품여성통장은 수수료 면제 혜택 등으로 지난 8일까지 60만9307계좌가 개설됐다. 신한은행 탑스레이디플랜 저축예금과 하나은행 여우통장 등도 마찬가지 성격.

깐깐한 소비가 늘수록 디버전스 마케팅은 확산된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네트워킹이 강해져 제품 정보가 다양해졌다”면서 “광고나 이미지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가치와 기능에 주력하는 추세인 만큼 디버전스 마케팅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제품을 명품으로 구입하면 다른 물건에 대해선 지출여력이 줄어드는 만큼 까다롭고 깐깐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유라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병석 기자 bsyoo@kmib.co.kr

<용어설명>

◇디버전스 마케팅(divergence marketing)=소비층 취향에 맞춰 제품을 다양하게 내놓는 마케팅. 특화된 제품, 간소화된 기능,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 특징이다. 취향대로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자(smart consumer)가 주소비층이다.

◇컨버전스 마케팅(convergence marketing)=한 가지 제품에 다양한 기능을 백화점식으로 집약시키는 것. 업데이트, 다기능, 비싼 가격이 특징이다. 타깃 소비층이 불명확하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먼저 써 보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구매로 상품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롱테일(long tail) 법칙=매출의 80%는 핵심 고객 20%에서 나온다는 파레토 법칙의 반대개념으로, 비주류 고객의 구매력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비주류에 해당되는 80%가 상위 20%보다 더 큰 구매력을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이 흥행성없는 책들 판매량을 합해 베스트셀러 매출액을 추월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상위 20%를 공룡 몸통에, 비주류 80%를 '길게 늘어진 꼬리(long tail)'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by 100명 2007. 5. 15.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