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록펠러의 좌우명 '많이 벌고 많이 베풀자'
기자 아이다 타벨의 추적기사로 스텐더드오일 분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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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미국 경제계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눈깜짝할 새에 도시들이 생겨나고, 철도가 도시들을 꿰뚫어 엮었다. 제조업이 경제의 주력으로 솟구쳐 오르고, 앤드루 카네기,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J.P. 모건, 록펠러를 비롯한 한줌의 인물들이 이 길을 선도하는 초강력 기업들을 통치했다. 하나같이 수완과 상상력의 대가였던 이들은 각자 차지한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비열한 책략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내 대부분의 주는 지역 기업이 다른 주에 본사를 둔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게 했는데, 언제나 기업 확장에 골몰하던 록펠러는 이를 우회할 방법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1882년 스탠더드 사를 다른 지역의 제휴 회사들과 한데 묶은 스탠더드 석유 트러스트가 태어났다. 온갖 종류의 모호한 법률적 장치로 뒤얽혀 있어 그 구조를 헤아려내기가 쉽지 않았던 이 조직은 40개 가량의 회사를 록펠러 휘하에 갖다 바쳤고, 업계의 독재자로 철권 통치를 이어나갔다.
불법 리베이트, 강압 전술, 과도한 가격 책정에 대한 비난이 끊임없이 쌓여갔다. 1892년에 오하이오 주 대법원이 이 공방전에 발을 들여놓고 트러스트를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록펠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뉴욕의 본사를 통해서 계속 회사를 운영했다. 1899년에 기업 합병에 관한 법률이 느슨해지자, 그는 ‘뉴저지 스탠더드 석유 회사’라는 지주 회사를 새로 꾸려서, 모든 자산을 이 신규 법인 아래로 이전시켰다.
다른 기업가들이 이런 록펠러의 행동을 놓쳤을 리가 없다. 유사한 트러스트들이 면화, 위스키, 설탕, 담배 산업 등에서 나타났고, 어떤 기업들은 메가톤급 합병을 단행해서 제너럴 일렉트릭, AT&T, U.S. 철강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태어났다. 이로 인한 부와 권력의 집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그리고 미래의 경쟁자들에게-불공정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범죄적인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문제가 차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아이다 M. 타벨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스탠더드 사에 대한 정밀 조사 내용을 <매클루어즈> 잡지에 1902년부터 19회에 걸쳐 폭로했다. 스탠더드 사에 불공정한 행위는 추호도 없었다는 록펠러의 주장은 타벨에 의해 거듭 난타당했다. 그녀의 글에 따르면 스탠더드 사가 거대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기의 협잡, 특권과 불법, 뇌물과 강압, 부패와 협박, 밀정과 공공연한 폭력’의 결과였다.
이 연재 기사로 타벨은 스타덤에 올랐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녀의 팬이 되었다. (이에 대해 록펠러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사석에서 그녀를 격렬하게 비난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연방 검찰의 수사로 이어졌고, 1906년에 이르자 정부는 16년 공포된 셔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스탠더드 사를 기소했다. 이로서 항간에 무수히 떠돌던 ‘스탠더드 사가 석유 산업을 독점하고 자유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는 공식적인 재판의 대상이 되었다. 1907년에 스탠더드 사는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받아서 1억 달러에 이르는 시장 가치 가운데 1/3 가량을 벌금으로 물게 되었다. 록펠러는 이러한 처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1911년 5월 15일 연방 대법원이 내린 명령-스탠더드 사의 내부 구조가 ‘자유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이니, 이를 30여 개의 독립 기업으로 분리하라는-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엇다. 골프를 치다가 이 소식을 들은 록펠러는 골프 파트너들에게 “스탠더드 석유 회사를 사라”고 조언 했다고 한다. 이것은 현명한 조언이었다. 스탠더드 사를 이루던 부분들의 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어떤 단일 기업보다도 커졌기 때문이다. 록펠러 자신의 엄청난 재산도 더욱 더 크게 불어났는데, 그 해 말에 그는 은퇴했다.
이 해체의 결과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많은 석유 기업들이 태어났다. 엑슨(Exxon), 아모코(Amoco), 모빌(Mobil), 셰브론(Chevron)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록펠러가 좀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으면-또는 입법가들이나 고관들에게 좀더 아첨을 했으면-, 스탠더드 사가 해체의 운명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실제로 업계 지배력이 비슷했던 동시대 기업 U.S. 철강은 스탠더드 사와 같은 방식으로 반독점법에 걸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록펠러는 세속적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좌우명을 져버린 일도 없다. “공정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가능한 한 많이 벌어서, 가능한 한 많이 간직하고, 가능한 한 많이 나누어 주는 것이 나의 종교적인 의무다” 라고 언젠가 그는 밝혔다. 1937년에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일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는 길에서 한 발짝도 허투루 내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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