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망 20년… 문화 민주화는 이뤄졌나
6월 민주항쟁 20돌'민주화 20년…' 토론회 6월8일까지
도정일 -교수 민주주의 지탱할 시민문화 취약
문학평론가 홍기돈씨-문화 개선 앞서 정치후진성 탈피를
출판인 김규항씨-군사 파시즘이 자본 파시즘으로


도정일 교수

문학평론가 홍기돈씨

출판인 김규항씨

1987년 6월을 시점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20돌을 맞았다. 절차적 수준을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도 성숙했다는 평가부터 ‘87년 체제’의 근본적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까지 민주화 20주년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6월민주항쟁20년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 주최로 26일부터 6월8일까지 진행되는 토론회 <민주화 20년, 문화 20년-상상변주곡>은 문화적 관점에서 민주화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자리다.

기획 책임자인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장르뿐 아니라 일상 문화까지 파고들어 우리 마음 속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를 살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화 각계 인사들이 발제 및 토론에 참가하는 이번 행사는 서울 중구 정동 배재빌딩에서 매주 한 차례씩 총 8회 열린다. 마지막 주엔 8명의 발제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종합 토론회가 함께 열린다.

26일 첫 토론회에는 문학평론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총론 성격의 이번 발표에서 도 교수는 ‘87년 항쟁’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폭발하면서 한국에 근대적 시민이 첫 출현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가 이제 웬만큼 됐다는 담론은 착각이자 오만”이라며 “우리 사회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발전시킬 시민 문화가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적 문화를 다지는 노력에 소홀했던 정부와 대학, 언론에 그 책임을 물었다.

도 교수는 민주화 20년 동안 ‘공포의 문화’와 ‘지향 상실’이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외환 위기, 직업 불안정, 양극화 속에서 사회적 열패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다른 관심사를 압도했고, 사회를 결속시킬 수 있는 가치인 공동성 역시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 이런 가운데 기업이 추구해야 할 경제적 가치가 사회 전체의 유일한 가치로 통용되고 있다고 도 교수는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문학평론가 홍기돈씨는 “민주화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반 대학생마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끼고 다니는 등 허무주의가 만연했다”며 “이런 절망감은 87년 대선부터 거듭된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악한 정치 상황에 대한 통찰 없이 문화의 개선을 논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출판인 김규항씨는 “정치적 자유란 신자유주의 확산을 위한 지배층의 용인 전략으로, 민주화 이후는 군사파시즘이 자본파시즘으로 전환된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부모가 아이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우고, 노동의 상품화에 맞서야 할 노동운동이 도리어 몸값 올리기에 치중하는 현실”이라며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했다.

2, 3회 토론회는 5월 3일과 10일에 열린다. 3일 발제를 맡은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신체의 지질학’이란 개념으로 한국의 문화적 변동을 고찰할 예정이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압축 성장을 겪은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는 전근대-근대적 요소가 마치 지층처럼 채워져 있다는 것이 진씨의 생각이다. 이런 발상 속에서 80년대 NL이 운동권 주류로 떠올랐던 까닭이나 오늘날 시위 문화에 오락적 성격이 강해지는 이유 등을 살핀다.

10일엔 복거일 미래문화포럼 대표가 진보문화운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복 대표는 “직선제 헌법을 성공적으로 쟁취했다는 점에서 6월 혁명은 항쟁이 아닌 혁명”이라고 규정하면서 이후 한국 문화는 활발한 시장 유통을 통해 한류 붐을 일으킬 만큼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사회주의와 이념적 친화성을 보이는 진보문화계의 전체주의 사조가 문화의 순조로운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복 대표의 주장이다.

by 100명 2007. 4. 28.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