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백성호.김형수 기자] 수덕사에는 ‘선농일치’ 가풍이 살아 있다. 수덕사 산내 암자인 정혜사 뒤 텃밭에서 수좌 설정(右) 스님이 젊은 스님과 함께 감자순을 뽑고 있다. 예산=김형수 기자 수덕사 방문객들이 웅성거렸다. "비구니 절 아냐?" "수덕사에 왜 여승이 없지?" 이유가 있었다. 일제시대 때 김일엽(1896~1971)이란 신여성이 있었다. 이화학당 출신에 일본 유학파로 '여성해방''자유연애'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그가 만공 스님(1871~1946)을 만난 후 돌연 출가했다. 만공 스님은 그때 수덕사 뒤에 '견성암'이란 비구니 선원을 처음 세웠다. 당시로선 엄청난 파격이자 뉴스였다. 이후 '수덕사의 여승'이란 유행가가 나오면서 '수덕사=비구니 절'이란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견성암에는 70여 명의 비구니 스님이 수행 중이다.
1937년 3월. 큰 절의 주지 스님들을 부른 조선 총독부 미나미 총독이 입을 뗐다. "전임 데라우치 총독의 뜻대로 조선 불교는 일본 불교와 합해야 한다." '왜색 불교화'로 조선 불교를 와해시키겠다는 의도였다.
듣고 있던 만공 스님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청정 비구 하나만 파계시켜도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오늘부터 데라우치와 그 자손들의 천도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본인은 물론, 그 후손들도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관이 칼을 빼 스님의 목을 치려고 했다. 그때 총독이 말렸다. 고고한 위세에 탄복한 총독은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만공 스님은 총독을 향해 일갈했다. "당신처럼 무모한 사람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없다."
이 소문은 장안에 쫙 퍼졌다. 만공 스님이 친구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집을 찾았다. "'할(喝)'만 할 게 아니라 주장자로 아예 머리통을 박살내지 그랬느냐"는 만해 선사의 물음에 만공 스님이 답했다. "사자는 소리만 질러도 백수(百獸.온갖 짐승)의 머리가 다 터진다."
조선 오백년과 일제 시대를 거치며 불교의 선맥은 꺼져만 갔다. 이 불씨를 되살린 이가 경허 선사, 되지핀 불씨를 널리 퍼트린 이가 경허의 제자 만공 스님이다. 경허.만공 선사의 선맥이 고스란히 내려오는 사찰이 바로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다.
19일 충남 예산 덕산면의 수덕사를 찾았다. 산 이름(德崇)과 절 이름(修德), 동네 이름(德山)까지 '3덕'이 모인 곳이 수덕사다. 그래서 수덕사에는 덕이 넘친다. 스님도 그렇고, 산도 그렇다. 덕숭산의 별명은 '소(小) 금강산'이다. 꽃나무는 숨이 멎도록 소담하고, 100~200년씩 묵은 소나무는 깎아 놓은 분재처럼 정갈하다.
그래서일까. 수덕사 스님들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겉으로는 마냥 부드럽다. 선방 결제(동안거나 하안거) 때도 하루 8시간만 참선에 든다. '고작? 무슨 용맹정진이 그래?' '1주일씩 한숨도 안 자는 사찰도 있던데'라고 한다면 큰 오판이다.
수덕사의 선풍은 산을 빼닮았다. 덕숭산은 땅을 1m만 파도 거친 바위가 나온다. 화사한 꽃나무, 그 아래 무쇠 같은 바위가 버티고 있다. 선방도 그렇다. 참선은 하루 8시간, 그러나 나머지 시간을 열어 둔다. '강요 없는 정진, 우러나는 정진'을 위해서다. 성보박물관장인 정암 스님은 "선방 청규는 밤 9시 취침, 새벽 3시 기상이죠. 그런데 새벽 1시면 다들 일어나 좌선을 하고 있어요." 그게 수덕사의 '허허' 속에 숨겨진 '실실'이다.
수덕사하면 '선농일치(禪農一致)'가풍이다. 경허.만공 선사 때부터 닦아 놓은 전통이다. '참선과 농사일이 둘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는 게 '선(禪)'이라면, 몸을 비우는 게 '농(農)'일런 지. 몸과 마음을 비운 자리, '나'가 없는 그 자리에서 '참 나'가 기다리는 법이다.
수덕사 수좌(首座)인 설정(雪靖) 스님을 찾아 산길을 올랐다. 스님은 감자밭에 있었다. 500m 고지의 암자인 '정혜사' 뒤 200평 남짓한 텃밭에서 젊은 스님과 감자순을 솎고 있었다. "감자는 더 깊이 묻어야 해. 얕게 심으면 알이 적게 들거든." 설정 스님은 성큼성큼 밭고랑을 오가며 감자순을 '쑥쑥' 뽑았다. 예순 다섯인 스님의 몸놀림이 젊은 스님보다 빨랐다. '선농일치가 뭔가요?'라는 물음이 목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감자순을 뽑는 스님의 몸놀림이 '선.농.일.치', 그 자체였다.
설정 스님은 어려운 법어 대신 나무와 햇살을 얘기했다. "일을 해본 사람만이 감사함을 알죠. 자연을 보고, 햇볕을 쬐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기쁨인지. 자연의 정직함, 그 진솔함을 안다면 사람들이 함부로 살지 못할 겁니다." 스님은 "자연보다 크고, 흙보다 진솔한 스승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게 실은 '부처'였다.
덕숭산 서쪽으로 해가 졌다. 정혜사 앞뜰, 만공탑에는 '세계일화(世界一花)'란 글귀가 선명하다. 해방 이튿날, 만공 스님이 땅에 떨어진 무궁화를 먹에 찍어 쓴 글이다. 실상 세계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삼라만상 온 우주가 한몸이라. 또한 그 우주가 한 떨기 꽃이라. 꽃처럼 생명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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