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101>인도 오르차
고즈넉한 폐허 속의 매력
◇제항기르 마할
북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카주라호 사이에 고즈넉한 폐허의 미로 가득한 오르차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한가운데 폭이 좁은 강이 흐르고, 그 강을 경계로 높은 언덕에는 궁전들이, 낮은 곳에는 마을과 힌두교 사원들이 있다.

이 마을의 궁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오르차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일어나 북인도를 다스렸던 무굴제국은 장자상속제가 확립되지 못해 왕위 계승을 놓고 끊임없이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초대 왕 바부르의 장남 후마윤은 아편과 점성술에 탐닉하다 축출되기도 했지만 다시 왕권을 되찾았고, 그의 아들 아크바르(위대한 인물이란 뜻) 대제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이 아크바르 대제 말년에 그의 아들 ‘살림’이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에 실패한 왕자는 1602년 오르차로 도망와 당시 이곳을 다스리던 제후국 분델라 왕국에 몸을 의탁한다.

◇시슈마할

◇라지 마할

분델라 왕국의 지배자 라자 비르 싱 데오는 왕자를 잘 대접하고 지원했는데, 3년 후인 1605년 왕자가 무굴제국의 왕이 되었고, 제항기르(세계를 장악한 자)란 이름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그를 지원했던 분델라 왕국도 크게 융성했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제항기르의 아들들이 권력투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킨 왕자가 새로운 왕, 샤자 한(세계의 왕)이 된다. 샤자 한은 훗날 화려한 왕비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만든 왕으로, 훗날 그도 셋째아들인 아우랑제브에게 유폐된다.

샤자 한이 왕이 되자 냉대를 받게 된 제후국 분델라 왕은 1627년 무굴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꾀했다가 패하고서 분델라 왕국과 그 수도 오르차는 폐허로 변하게 된다.

이 폐허에서 비교적 보존이 잘된 곳은 1606년 제항기르가 왕이 되어 방문한 후 만들어진 제항기르 마할이란 궁전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벽과 바닥에 그려진 문양과 그림들이 희미한 윤곽을 남기고 있는데, 몇 백년 전 번성했을 때는 매우 화려했을 것이다.

◇차투르부즈 만디르

◇원빈식당

이 궁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옆에 있는 호텔의 종업원, 청소부, 요리사들이 묵는 것으로 보이는 조그맣고 낡은 방에는 걸상과 잡동사니, 낡은 빨래들이 널려 있다. 옛날에도 궁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사는 풍경이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오르차의 많은 왕궁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매력도 화려함보다 퇴락해 회색빛이 스며든 적막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항기르 바로 옆에는 시슈 마할이란 궁전이 있다. 분델라 왕국이 새로운 도시로 수도를 옮겼을 때 왕족이 묵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현재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변해 있다. 주로 단체관광객이 묵지만 개인 여행자들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묵을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엔 라지 마할이란 왕궁도 있는데, 이곳은 왕과 왕비가 머물던 곳으로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이 궁전의 매력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궁의 전경과 탁 트인 주변 풍경을 굽어보며 한적함을 맛보는 것이다. 혹시 MP3라도 갖고 있다면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시 세상을 잊어볼 만한 곳이다.

◇라지 마할 내의 벽화

◇라자 만디르의 쌍어문 무늬

마을 안쪽에는 다른 왕궁들도 많은데, 불에 탄 것처럼 검게 변하여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차투르부즈 만디르란 힌두교 사원이 있고, 비르 싱 데오의 아들이 형제의 아내를 탐했다는 오해를 받자 스스로 자살한 딘만 하르다울 왕궁도 있다.

왕비를 위하여 아요디아에서 가져온 라마 신상을 모셔 놓은 람 라자 만디르란 사원도 있다. 이곳은 아직도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입구에 그려진 쌍어문 무늬다. 힌두교 비슈누신의 화신인 라마의 고향 아요디아의 사원들에서도 이런 쌍어문 무늬가 많이 보이는데, 한국 김해의 김수로왕릉에도 이 같은 무늬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적고 있고, 이에 의거하여 허황옥의 고향이 인도의 아요디아로 추정되는데, 이 사실을 상기하며 이 사원의 쌍어문을 보면 묘한 감회에 젖게 된다.

오르차의 매력은 이런 유적지 못지않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인도 여인들이 미간에 바르는 빈디 재료 등 각종 기념품을 파는 거리의 가게와 소박한 인심을 맛보는 데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10여년 전만 해도 조용하던 이곳이 여행자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상업화되어 간다는 점이지만,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여전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 여행 에피소드

오르차에서 한국 여행자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라면, 수제비, 백숙, 김치볶음밥 등 한글 간판이 내걸린 식당들이다.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결과인데, 한국 여행자들의 공도 크다. 특히 젊은 한국 여성 여행자들이 한국 요리를 가르쳐 주고 자기 돈을 들여 예쁜 한글 메뉴판과 한글 간판까지 만들어 준다. 이 식당들 중에는 ‘원빈 식당’이라는 곳도 있다. 식당의 젊은 주인이 한국 영화배우 원빈을 닮았다고 해서 한국 여행자들이 이 같은 이름을 붙이고 한글로 ‘원빈 식당’이란 간판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 여행자들이 별로 없던 시절에 늘 일본 사람 취급받던 서러움이 생각나 격세지감을 느꼈다.

>> 여행 정보

여행자들은 대개 아그라와 카주라호 사이를 통과하는 도중에 오르차에 들르게 된다. 일단 잔시까지 와서 버스나 삼륜오토바이인 오토릭샤, 혹은 그보다 약간 큰 템포라는 것을 타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오르차 시내에는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들이 많다. 시슈마할의 왕궁 호텔에서 가장 싼 방은 한국 돈으로 트윈이 약 2만5000원. 에어콘이 없어 여름에는 피해야 하지만 겨울에는 따뜻해서 권할 만하다. 왕궁 호텔에는 이보다 비싼 방들도 많고, 단체여행객들이 많이 투숙한다.

by 100명 2007. 4. 25.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