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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Nike) (상)
회사 개요
창업자: 빌 보어먼, 필 나이트
특징: 스포츠 슈즈를 문화적 아이콘으로 탄생시킴
주요 제품: 스포츠 신발류, 의류, 장비, 액세서리
연간 매출 87억 7,700만 달러
종업원 수: 2만 700명
주요 경쟁사: 아디다스-살로몬, 필라, 리복
회장 겸 CEO: 필립 나이트
본사: 오리건 주 비버턴
창업 연도: 1962년
웹사이트: www.n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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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스포츠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패션 감각을 갖춘 신발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것을 실제로 만들어내고 보급하는 일에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까닭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이들은 때때로 뜨거운 비난의 표적이 되었는데-때로는 타당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한-, 해외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는 점, 브랜드 이미지를 예술 형식처럼 만든다는 점,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매긴다는 점, TV 전파를-경기장의 사이드라인을 빼고라도-그 ‘갈고리’ 로고로 뒤덮는다는 점 등등이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유명 운동 선수들을 사방팔방의 광고 홍보에 지나치게 팔아먹는다는 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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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이키는 여전히 업계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힘이다. 이들이 현재 시장에 내놓은-그리고 대체로 호평을 받는-신발 모델은 500종에 이르며, 의류는 그보다도 더 종류가 많다. 이들은 대형 쇼핑몰 ‘나이키타운’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던을 주제로 한 몇 개의 특별 아웃렛 매장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백여 개 나라에서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이키가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언제나 1위 자리에 익숙해 있던 나이키에게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1962년에 오리건 주 유진 시가 혁명의 발상지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오리건 대학 캠퍼스는 오래 전부터 꽤 이름난 육상 활동의 본거지였다. 모든 것은 빌 보어먼이-1948년부터 수석 코치로 일한-깊은 생각 없이 필 나이트와 팀을 이루어 일본 운동화 타이거를 BRS(블루 리번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64년까지 1,800켤레의 신발을 팔았다. 그러다가 4년 후에 보어먼이 직접 신발 디자인을 해서 내놓았더니, 전체 신발 가운데 그 모델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자신감과 아이디어로 충만해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직접 신발을 디자인해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라텍스와 가죽으로 만든 이 신발은 유난히 가벼운 밑창이 특징이었는데, 이것은 보어먼 아내의 와플 기계로 만든 것이었다.켤레당 3.3달러의 가격에 젠체 물량 330켤레를 싹 판매한 뒤, 두 사람은 마침내 회사를 차리고 혁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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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육상 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보어먼의 제자 중 한명으로, 좋은 스포츠 장비와 스포츠 자체의 진흥을 위해 노력한-의 활동은 그가 1975년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 전까지 나이키의 전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스포츠 선수들에서 나이키 제품을 신겨서 홍보 역할로 삼은 뒤, 회사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름을 딴 이들의 회사는 신발 디자인과 비즈니스 양쪽에서 모두 연전연승이었다. 선수들에게 나이키는 신는 즐거움을 주었고, 소매 상인들에게는 파는 즐거움이 되었다. 프로 선수 가운데는 테니스 스타 존 매켄로가 처음으로 나이키와 계약을 맺었다. 1970년대 말 종업원이 2,700명에 이르고 시장의 50퍼센트를 점유하게 되자, 이들은 기업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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