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네랄 모터스 (General Motors) (하)
그러나 GM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강렬했던 듀랜트는 먼저 GM의 주식을 매점했다. 그런 뒤 1918년에 경영권을 회복하자 셰브롤레 사를-하이어트 롤러 베어링 회사 등 다른 여러 회사와 함께-GM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다시금 확장에 착수해서 기존 공장을 증축하고, 신규 연구소를 세우는 한편, 디트로이트 시에 15층짜리 사옥을 지었으며, 피셔 바디를 비롯해서 전보다 더 많은 회사를 인수했다. 1919년에는 ‘제너럴 모터스 어음인수 회사’를 세워서 금융 업계로도 진출했는데, 이 해에 GM은 40만 대에 육박하는 자동차를 팔아서 6,000만 달러가 넘는 매출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듀랜트의 원대한 계획은 다시금 대형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 GM의 주가는 일곱 달 만에 42달러에서 14달러로 곤두박질쳤고, 듀랜트는 재정적으로 파산했다.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은행가들이 소집되었고, 1920년에 그는 다시 한 번 GM에서 물러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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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슬론은 GM의 사장이 되었다. 그 8년 후 GM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선두 자리로 올라섰으며, 그 자리는 아직까지도 중단 없이 유지되고 있다. 슬론은 1956년까지 회사를 통솔했고, 그 뒤에는 명예회장의 자리로 물러나 있다가 1966년 아흔한 살로 사망했다.
자동차가 소비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GM의 성장은 더욱 가속되었다. 1940년 이들의 총 차량 매출은 2,500만 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닥치자 GM의 공장들은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재조정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GM의 공장들에서는 123억 달러 어치가 넘는 비행기 부품, 트럭, 탱크, 대포, 포탄을 비롯한 각종 군수 용품이 줄지어 뿜어져나왔다. 1946년 정상 조업이 재개되자 팩커드, 스터드베이커, 내시 같은 신생 업체들이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얼마 못 버티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브레이크 같은 신기술을 도입하고 디자인에 혁신을 이룸으로써-이는 특히 코빗의 출시에서 빛을 발했다-, GM은 1950년대에 마침내 10억 달러 이익을 기록했다. 1960년대가 되자, 이들의 자동차 총 생산량은 1억 대를 넘어서게 되었다. 1970년대로 접어들어 도요타나 닛산 같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시장의 2, 3위까지 치고 올라올 때도 GM의 1위 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총 생산량이 미국 기업들을 앞지른 1980년, 제너럴 모터스는 동맹으로 반격을 취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도요타를 합작 생산하기로 협정을 맺고, 이스즈에 대규모 투자를 했으며, 스즈키 사로 하여금 미국 판매용 소형차를 만들게 했다.
그렇지만 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 GM의 시장 점유율은 44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떨어졌다. 종업원 70만 명에, 미국 내에 149동의 공장, 캐나다에 13개 시설, 그 외 29개 나라에 사업 지부를 거느린 GM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였다. 하지만 불길한 징조는 사방에서 포착되었고, 수구적인 경영진은 대처 방도를 알지 못했다. 몇몇 아이디어들은 유망했지만-‘새턴’ 라인과 전기 차 ‘임팩트’-, 공장 운영의 비효율성이 수익을 잠식했고, 자동차 디자인은 창의성을 잃었으며, 제품의 품질은 저하되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줄줄이 빠져나갔다.
GM은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동의 공장을 닫아야 했다. 이는 대중의 인식에 큰 악재가 되었고, 마이클 무어라는 사람은 1989년에 <로저와 나>라는 영화를 통해 이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이 예리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무어는 GM의 회장 로저 스미스의 행동을 추적하고, 그가 바로 이 모든 문제를 초래한 장본인이라 지목했다.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복수 희극’이라고 이름 붙인 이 영화는-그는 이 영화에 별 네 개를 주었다-GM의 평판 하락과 매출 추락을 부추겼다.
여전히 GM의 매출은 2위를 크게 앞선 선두 자리를 고수했지만, 1990년과 1991년에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사회는 회장을 갈고 사장을 바꾸고 부회장, 수석 부사장을 교체해가며 법석을 떨었다. 그러다가 잭 스미스가 최고 경영권자의 자리에 올랐다. 1995년에 이르자 그의 노력에 힘입어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해에 GM은 사상 최대의 순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1998년의 대규모 파업과 외국 경쟁 업체들의 줄기찬 공세로 인해 GM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7.7퍼센트로 떨어졌다. 이것은 슬론 이후 최저 수치였다. 스미스는 스스로 이사회로 물러나고 마흔일곱 살의 워거너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훌륭한 평판을 바탕으로 GM의 차기 인재로 주목받던 워거너는 23년 동안 GM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직무를 수행한 사람이었다. 워거너의 임무는 분명했다. 비용을 더욱 절감하고, 차량의 설계 수준을 오늘날 고객의 구미에 맞게끔 업그레이드 하는 것,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해내는 것이다.
워거너가 안팎의 기대에 부응해서, 이 산업 시대의 거인 GM을 날렵한 첨단기술 시대의 승자로 만들어줄 것인가? GM의 기나긴 역사가 그와 함께 있지만, 미래는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2002년 6월 3일, 잭 스미스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정기 주총에서 2003년 봄에 회장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역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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