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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대란’ 보호막 사라진다 FTA ‘득실’ 깊이보기 ⑧ 문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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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내용에 대해 문화산업 관계자들의 반응은 우려와 불안 쪽으로 쏠려 있다. 문화 콘텐츠의 경우 한-미간 경쟁력 차이가 워낙 커 수출로 벌어들일 건 거의 없는 반면, 기존의 방어벽은 대거 철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 키우기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단기 처방으로는 경쟁력을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와 출판 분야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
스크린쿼터 ‘73일’ 발묶여 투자는 꽁꽁
한국 영화, 안전장치 뽑힌다=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스크린쿼터)가 ‘현행 유보’로 결정돼, 영화 산업이 위기에 처해도 지난해 반토막 난 의무 상영일수 73일을 더 늘릴 수 없게 됐다. 정확한 피해액을 산출하긴 어렵지만, 영화계에선 투자 위축을 불러와 제작 편수가 줄고 점유율이 떨어져 다시 투자가 안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계 처지에선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지난해 처음으로 상영작 100편, 점유율 63%를 넘겼지만 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편수가 20%도 안된다. 한국 영화 점유율도 올들어 뚝 떨어지더니 3월엔 28%가 됐다. 수익률이 악화된 탓에 투자자들이 얼어붙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큰 악재가 터진 것이다. 지난해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이 난 뒤 영화진흥위원회가 투자·배급·제작자 16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65.2%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고 답했다.
가장 불안해하는 쪽은 제작자들이다. 이인수 시네마서비스 대표는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일만 계속 생긴다”며 “산업이 주춤했을 때 보호장치가 필요한데 제대로 작동을 못하면 침체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서 미국은 2001년 3370만달러에서 2004년 5130달러로 매년 흑자 폭을 넓혀왔는데, 스크린쿼터가 줄면 그 폭이 넓어질 가능성도 높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출판물 저작권료 늘어 창작의욕 줄 듯
정부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현행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할 경우 출판 분야 저작권료 추가 부담액이 20년 동안 679억원, 연간 34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계는 이런 예측이 구체적인 데이터 없는 추정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번역물의 총량이나 미국 저작물 번역서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온 바 없다”며 “정부가 발표한 예측치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자료는 출판물의 30%를 번역 도서로 보고 있는데, 출판 총량으로 보면 번역서가 50%는 족히 될 것”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판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로 사후 보장기간이 20년 연장되면 일본이나 중국도 똑같은 보장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정부 발표치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수치로 직접 환산되지는 않지만, 보호기간 연장에 따른 부담으로 창작 의욕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남희섭 변리사는 “저작권료 압박 때문에 저작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저작자 사후 70년이 안 된 미국 작가의 소설을 가공해 영화, 연극 등 2차 생산물을 만들려 할 경우 저작권료 부담 때문에 생산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미 캐릭터 1407억 더 챙겨…토종도 기회
캐릭터 분야도 일단은 한국이 불리=한국저작권법협회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으로 미국은 캐릭터 저작권료로 1407억원을 추가로 챙길 것으로 추산한다. 그만큼 국내 캐릭터 산업이 추가로 지불해야 할 로열티가 늘어나는 것이다. 2005년 문화산업백서를 보면, 미국은 2003년 ‘미키마우스와 친구들’과 ‘위니 더 푸(곰돌이 푸)와 친구들’만으로 각각 58억달러, 56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외에 프로도(〈반지의 제왕〉), 니모(〈니모를 찾아서〉), 스폰지밥,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을 통해 200억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거뒀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이 ‘아주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평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최영호 전략기획본부장은 “현재도 로열티를 주고 있는데,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본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저작권에 대한 인지가 높아진 것은 문화콘텐츠산업 측면에서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종캐릭터들의 수출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저작권자들에 대한 혜택도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뽀롱뽀롱 뽀로로’ 기획자인 아니코닉스 최종일 사장은 “캐릭터 시장이 이미 전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이 협정이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다만, 자금력을 가진 미국의 미디어업체들의 진출과 애니메이션을 통한 미국산 캐릭터의 노출 빈도가 높아질 경우 미국산 캐릭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블로그에 허락없이 음악 올려도 처벌 가능
일시적 복제·저장도 돈 내야 한다=디지털 콘텐츠 분야도 저작권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부담이 커지는 분야다. 특히 인터넷 이용이 갈수록 늘고 있어, 향후 이 분야에서 한국 쪽의 추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번 협상 타결 내용을 보면, 컴퓨터의 램(전원을 끄면 기억되어 있던 모든 데이터가 지워지는 메모리)에서 행하는 일시적 복제도 저작자의 권리(복제권)로 인정했다. 공익 목적을 위한 공정한 이용의 경우에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했지만, 복제권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문화 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상에서 스트리밍(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영화·음악 등이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싸이월드나 블로그 같은 웹상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용 요금도 올라갈 수 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배경음악 서비스를 연결해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 음악듣기 파일을 올려놓을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김기태 교수는 “기업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용하는 것 외에 개인 사용자들이 쓰는 것까지 로열티를 물릴 경우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희섭 변리사도 “인터넷 이용 환경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며 향후 파장을 우려했다.
고명섭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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