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그리스 펠라-베르기나
[세계일보 2004-08-19 20:57]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스의 북부에 있다. 비록 현재 그리스와 인접한 지역에 별개 국가로 마케도니아(Republic of Macedonia)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들보다는 그리스가 고대 왕국의 유산을 더 많이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유적지로 가려면 그리스 북부에 있는 테살로니키를 거쳐야 한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제2의 도시다.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은 마케도니아 왕국과 관련된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필리포스 2세의 묘에서 나온 그의 유골과 왕관, 갑옷, 장식품, 높이 1m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혼합용 청동 항아리인 데르베니 크라테르 등의 보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테살로니키 근교의 펠라와 베르기나에서 출토됐다.

펠라는 테살로니키에서 서쪽으로 38 떨어져 있다. 기원전 410년 마케도니아의 왕 아르켈라오스는 아이가이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고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펠라에서 태어났다.

펠라 가는 길은 한적했다. 테살로니키에서 떠난 버스가 시골 아스팔트 길을 1시간 정도 달리자 펠라 유적지에 멈췄다. 펠라는 조그만 박물관과 텅 빈 유적지만 남아 있는 허허벌판 같은 곳이었다. 박물관에는 펠라 왕궁터에서 발견된 수많은 모자이크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표범의 허리에 탄 늘씬한 몸매에 곱슬머리를 휘날리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사자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칼과 창으로 두 사내가 공격하는 모습 등의 훌륭한 자갈 모자이크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물은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에 가 있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펠라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궁전은 유적지 북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상점들과 주거지 터는 있지만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테네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한때 이곳을 방문해서 알렉산드로스 왕자를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테살로니키를 거쳐 이곳에 왔는데, 그것을 기념하려고 테살로니키에는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이 있고 그의 동상도 거리에 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북방의 고산지대에 살다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8년 그리스를 정복했고, 암살당한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뒤를 이었다. 기원전 336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12년 동안 수많은 정복 전쟁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펠라 이전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는 아이가이였다. 아이가이는 원래 에데사로 알려졌으나, 그곳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베르기나란 곳에서 1977년 필리포스 2세의 묘와 팔라티차 왕궁터가 발견돼 현재는 베르기나가 고대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인정되고 있다. 테살로니키(성경에서는 데살로니가로 나와 있다)에서 베르기나로 가려면 우선 베리아까지 가야 한다.


베리아는 테살로니키에서 약 75 떨어진 조그만 도시로 서기 50년쯤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 이곳으로 피신온 적도 있다. 베리아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15분쯤 남서쪽으로 내려가니 베르기나가 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발굴된 무덤들이 나왔다. 입장은 금지하고 있었는데 발굴될 당시 필리포스 2세의 묘는 직경 110m, 높이 12m로 거대했다.

◇테살로니키의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상.

그 무덤을 파고 30m 정도 내려가자 거대한 석관이 나왔는데 바로 거기서 필리포스 2세의 유골과 엄청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근처의 언덕에 왕궁터가 있다. 동서 300m, 남북 200m 정도 되는 공간에 석조 기둥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중간에 무수히 많은 가지를 뻗어 올린 떡갈나무가 하나 있다. 바로 그곳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근원지였고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한 곳이었다. 필리포스 2세는 두 번째 결혼식을 이곳에서 올리다가 귀족 처녀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암살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왕궁터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니 해발 2000m급의 산들이 멀리 보이고 동쪽에는 풍요로운 마케도니아 평야가 펼쳐져 있다. 2500년 전의 인걸은 간 데 없지만, 그들의 흔적은 그렇게 조용히 남아 있었다.

◇펠라의 마케도니아 왕궁터


여행작가

■ 여행정보

테살로니키에서 펠라 가는 버스는 많다. 단 펠라 박물관은 오전 8시에 개관해 오후 3시에 폐관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는 게 좋다.

테살로니키에서 베리아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베리아에서 베르기나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버스가 1시간 혹은 1시간30분 정도 간격으로 뜸하게 다니는 편이니,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테살로니키 역 근처에 펠라, 베리아 가는 버스 터미널이 있다.

■ 에피소드

내가 처음 접한 그리스의 첫 도시는 테살로니키였다. 테살로니키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길을 물어보면 여자들은 수줍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고 시장의 상인들도 매우 우호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런데 유스호스텔에서 나는 말 실수를 했다. 내가 터키와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온 것을 안 호스텔 매니저는 터키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터키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매우 좋았다.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풍부하고…”라고 대답했다. 아뿔싸. 그 말을 듣는 동안 일그러져 가는 매니저의 표정을 보며 나는 후회했다. 오스만투르크가 그리스를 약 400년간 지배했다는 사실을 왜 깜빡했던가. 그 후 호스텔 매니저는 공연히 나에게 심술을 부렸다.

그리스와 터키는 민족감정이 안 좋다. 그리스는 지배당했으니 터키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터키 역시 그리스를 싫어한다. 그리스 독립 과정에서 서로 물리적 충돌을 일삼은 데다 그 후로는 지금도 얽힌 실타래처럼 남아 있는 키프로스 문제로 마찰을 빚어와 적대적 민족감정이 미처 가라앉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국을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각별히 민족감정에 신경 써야 한다.


by 100명 2007. 4. 13. 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