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터키 카파도키아
[세계일보 2004-09-09 18:33]

낯선 세계에 툭 떨어졌을 때 느끼는 가슴 설렘,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그 낯섬의 흥분 속에서 현실을 넘어 무한히 확장되는 의식은 이탈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런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터키 중부의 카파도키아 지역이다. 이스탄불에서 밤 버스를 타면 아침에 카파도키아의 중심 도시 괴레메에 도착하는데, 캄캄한 어둠 속을 달리다가 눈을 뜨는 순간 불현듯 외계의 다른 행성으로 날아온 것만 같은 충격을 받는다. 회색빛 바위산과 계곡을 배경으로 도토리나 버섯, 남근 같은 거대하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수백만년 전 인근 에르지예스 산(해발 약 4000m)의 폭발로 시작됐다. 엄청난 화산재가 엉기면서 응고했고 수백만년 동안 바람과 물에 의해 깎이면서 재앙은 경이로운 자연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런 풍경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열에 강하고 가공이 편리한 응회암 바위를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동굴 집에서 처음 산 사람들은 기원전 2000년경의 히타이트족으로 여겨진다.

그후 페르시아와 로마의 지배를 거치면서 4세기부터 금욕적인 고행을 하는 기독교 수도사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파도키아 지역에만 약 3000개의 동굴 교회를 만들고 수도생활을 했는데, 특히 괴레메 근처의 ‘야외박물관’이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동굴 교회들은 대개 6세기에서부터 12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동굴 안에는 기독교와 관련된 수많은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는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란 뜻의 ‘카트파두키아’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말보다도 관광으로 유명하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볼거리가 많다. 거대한 버섯 모양의 바위 수백개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파샤바, 마치 ‘스타워즈’에 나오는 배경 같은 황량한 분위기의 셀리메 마을 등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데린쿠유 지하동굴 도시다.

데린쿠유란 ‘깊은 웅덩이’란 뜻이다. 1960년대 어느 날 마을의 닭이 우연히 사람 머리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주인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아 당국에 신고를 했고, 닭을 잡으려고 안을 파보니 2만여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지하동굴 도시가 나타났다.

지하 20층 정도의 엄청난 규모지만 관광객은 지하 55m인 8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간 통로를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마치 개미가 된 것만 같다. 지하의 온도는 항상 평균 15도에서 18도로 유지되고, 동굴 안에는 부엌과 방앗간, 식량창고, 깊은 우물, 맷돌 모양의 입구를 막는 바위가 있다. 지하 7층에는 약 1만명이나 모일 수 있는 엄청나게 넓은 교회와 우물, 식량저장고, 학교, 고해성사실도 있고 가축을 기르는 곳도 있다. 인분은 토기에다 해결한 후 밀봉을 한 다음 나중에 바깥 농토의 비료로 썼다.

◇데린쿠유 동굴의 통로.

장례를 치를 땐 시신을 일단 묻고 그것이 썩은 후에 뼈만 추려서 다시 보관했다. 또 수만명이 빵을 구워도 연기가 흔적도 없이 밖으로 나가게 하고 밖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52개의 통풍구가 있다 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지하도시였다.

그럼 언제, 누가 이 도시를 만들었을까. 정확한 문헌적 자료는 없고 6000∼7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부분적으로 원시인들이 살았고 히타이트족이 지하 2층 정도에서만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처럼 거대한 동굴 도시를 건설한 것은 7세기무렵의 기독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아랍인의 침공이 거세지자 거대한 동굴 도시를 만들어 피신했다. 데린쿠유 동굴은 그 중의 하나로 인근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지하도시가 있고, 수십개의 지하도시를 연결하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얘기도 들리니 완벽한 지하세계였다.

비록 현재 그곳에 사람은 살고 있지 않지만, 핵 전쟁이 일어나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세계를 보기 위해 오늘도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여행작가

■여행 정보

이스탄불에서 오후 8시쯤 버스를 타면 다음날 오전 8시쯤 괴레메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좋은 호텔보다도 동굴 숙소에서 묵어볼 만하다. 동굴 안에 욕실이 갖춰져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 또 커다란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난 마을 풍경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 사리헨 펜션은 숙박비가 더블 18달러, 싱글 9달러 정도로 싼 편이다.

야외 박물관은 괴레메에서 2㎞쯤 떨어져 걸어갈 수 있다. 반면 데린쿠유 동굴과 파샤바, 도자기 공장 등은 멀리 떨어져 있고 공공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현지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 하루 일정이 1인당 25달러 정도.

■에피소드

영화 20도 추위에도 동굴펜션 안은 포근

괴레메는 이스탄불의 해양성 기후와는 달리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10여년 전 겨울에 처음 갔을 때 괴레메는 영하 20도를 밑돌았고 30년 만의 폭설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 우연히 알게 된 숙소가 사리헨 펜션인데, 동굴 속에 지어 겨울인데도 포근했다. 다른 여행자들이 없어 쓸쓸했던 나는 그 집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0년 후 여름에 다시 그곳에 가보았다. 집주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가 그 집 아이들에 대해 묻자 아들은 이미 군대를 갔고 딸은 시집을 갔다며 내 손을 잡았다.

마침내 내가 떠나던 날, 단지 예전에 잠시 들렀다는 인연만으로 포도주 한 병을 선물하려던 집주인의 따스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동굴 숙소는 어떤 곳보다도 아늑했다.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보는 여행자.

by 100명 2007. 4. 13. 2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