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터키 이스탄불
[세계일보 2004-10-14 16:33]

대개 문명과 문명의 접경지대는 변방이다. 그래서 한 문명이 멸망하는 경우, 변방부터 허물어지면서 차차 위축되다가 마침내 중심부가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15세기경의 이스탄불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접경지대인 동시에 기독교 중심부이기도 했다. 당시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플로 불렸으며 1000년간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투르크족은 몇 세기에 걸쳐 서쪽으로 영역을 넓혀 드디어 비잔틴제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투르크 해군을 막으려고 바다에 장애물을 설치했고 육지에 성벽을 쌓았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묘한 전략을 짜 냈다. 기름을 두른 판과 통나무를 이용해 엉뚱한 곳에서 배 72척을 산으로 끌어올린 후, 갑자기 비잔틴제국 영토 안의 바다인 금각만(Golden Horn·할리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453년 5월 29일 비잔틴제국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수도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바뀐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이 말살된 것은 아니었다.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는 잘 융합되어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고, 역사학자 토인비가 언급한 것처럼 ‘인류문명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 됐다.

거대한 야외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성 소피아 사원을 중심으로 반경 약 1㎞ 안에 수많은 유적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성 소피아 사원은 그리스어로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라고 부르는데, 하기아는 ‘성스럽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서기 537년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 사원을 만든 후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능가했노라”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것을 허물지 않고 내부에 ‘미흐라브’(메카를 향한 벽감)를 만들어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했다.

그 맞은편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광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있다.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모스크의 내부는 99가지 파란색 타일 2만1000여장으로 장식돼 흔히 블루 모스크라고도 부르는데, 특히 야경이 황홀하다.

◇갈라타 대교, 터키 전통 복장의 무희들.(왼쪽부터)

그 외에도 근처에 이집트 룩소르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솟아 있고,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서 가져온 뱀기둥도 있으며, 비잔틴제국 시절의 거대한 지하 식수 저장고도 있다. 또한 성 소피아 사원 옆 언덕에는 오스만투르크 정치·종교의 우두머리 술탄이 살던 톱카피 궁이 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칼과 예수의 제자인 성 요한의 유골,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마호메트)의 머리카락과 콧수염 등의 진기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또한 남자들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술탄의 후궁들이 살던 하렘이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톱카피 궁 근처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데 알렉산드로스의 석관이 있다. 또한 기원전 13세기 터키 중부에 있었던 히타이트 왕국과 이집트 간의 카데슈 전투에서 체결됐던 평화 협정문이 새겨진 설형 점토판도 전시되어 있다.

조금 발길을 멀리하면 아름다운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예니 모스크 등 크고 작은 3000여개의 모스크를 볼 수 있으며 시내 중심부에는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카팔리 차르시(지붕이 있는 건물이란 뜻)라 불리는 이 거대한 옥내 시장 안에는 3300개 정도의 상점이 있는데, 금은 보석과 촛대, 조명기구, 기념품, 접시, 도자기, 각종 의류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면 누구나 길을 잃게 되니 아라비안나이트의 세계가 따로 없다.

이스탄불은 밤도 즐겁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지만 이들의 생활은 세속적이다. 술을 마실 수 있고 피로를 풀 수 있는 하맘(증기탕)이 있으며 가슴을 설레게 하는 터키 무희들의 벨리 댄스가 있다. 또한 중국·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음식 중의 하나라는 터키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이스탄불이다.

◇예니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모습.

흔히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서 매력적이라지만, 숭고한 종교적 이상과 현세적인 욕망이 묘하게 결합된 분위기는 더욱 매력적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탄하고, 즐기고, 먹고 마실 것이 매우 풍부한 이스탄불은 풍성한 인류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카페서 피운 물파이프 담배맛 몽롱

평소에 담배를 안 피우지만 이스탄불에 와서 물파이프 담배, 즉 나르길레를 안 피울 수는 없었다. 내가 처음 그것을 펴본 곳은 술탄 아흐메트 광장 근처의 노천 카페였다. 사과향이 나는 나르길레를 피웠는데 호스가 달린 호리병 같은 나르길레를 가져온 종업원은 집게로 벌건 숯덩어리를 몇 개 집어 호리병 위의 움푹 파인 곳에 넣었다. 처음에 담배를 피우듯이 빨았으나 빨아지지 않았다.

다시 작심을 하고 깊게 빨자 호리병 속에서 뽀르륵 물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입 안에 차는데, 제어가 안 되고 그만 가슴속 깊이까지 연기가 들어가서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나르길레는 니코틴이 있지만 사과 향기 나는 것은 니코틴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로 어지럽지도 않고 기분 좋을 정도로 몽롱해졌는데, 어쨌거나 나는 담배보다 분위기를 즐겼다. 이런 노천 카페도 좋았지만 갈라타대교의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물파이프를 빨고, 파란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는 순간들이야말로 이스탄불 여행의 멋진 낭만이었다.

■여행정보

한국인은 3개월 동안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하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터키 돈의 액면 크기에 놀라기 십상이다. 근래에 1달러에 약 140만터키리라(TL) 정도였다. 100달러를 바꾸면 무려 1억4000만TL이 생겨 갑부가 된 느낌이 들 정도. 그러나 웬만한 대중식당에서 식사 한끼에 600만TL 정도니 좋아할 수만은 없다. 뒤의 0 세 개를 떼고 보면 1달러에 1400TL처럼 보여 식별하기가 편리하다.

여행하기 좋은 때는 5월에서 10월 사이.

이스탄불에는 최고의 호텔부터 배낭 여행자들이 묵는 게스트 하우스까지 숙소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개인 여행자들은 대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부근에서 많이 묵는데, 깔끔하고 쾌적한 펜션의 더블 베드가 40∼50달러고, 배낭 여행자들은 도미터리에서 7∼8달러에 자기도 한다.

by 100명 2007. 4. 13. 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