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루마니아 브란성·시기쇼아라
[세계일보 2004-10-22 13:15]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은 15세기에 실재했던 왈라키아 공국의 왕자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였다. 왈라키아 공국은 현재 루마니아의 트란슬바니아 평원에 있었는데, 그는 한때 브란성에 유폐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두어 시간 올라가면 중세풍의 도시 브라쇼브가 나온다.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서남쪽으로 달리면 드넓은 트란슬바니아 평원이 펼쳐지다가 40분쯤 후 예쁜 목조 가옥들이 들어선 브란성 주변의 마을이 나온다.

현재 브란성 주변에는 작은 호수와 울창한 숲, 낭만적인 옛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언덕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켜난 절벽 위에 음산한 브란성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성안에는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밴 왕족들의 방과 거실 등이 있고 곳곳에 고풍스러운 침대와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5층까지 오르는 동안 거대한 바위 속을 뚫어 만든 좁은 계단도 있는데, 여기를 오를 때는 드라큘라 백작이 튀어나와 목에 이빨을 들이댈 것만 같다. 5층에서 계속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탑이 나온다. 이 탑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산과 언덕, 그리고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과연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는 이곳에 유폐되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원래 이 성은 1377년 브라쇼브 상인들이 쌓았고 14세기 말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의 조부가 한때 살았을 뿐이지 그가 유폐되었다는 것은 한낱 근거 없는 전설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그런 소문이 퍼졌고, 후일 그는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 된 것일까.

그것은 그의 잔학함 때문이었다. 15세기에 그는 오스만투르크와 용감하게 싸웠으나 잡힌 투르크 포로들의 몸을 날카로운 말뚝으로 뚫어 공중에 매달아놓을 만큼 잔인했다. 또한 자기 왕국 내의 가난한 자와 병자들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푼 후 그들을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모두 불에 태워 죽이기도 했다. 테페스는 ‘말뚝으로 박는 자’, 드라큘라는 ‘악마 또는 용’을 의미하니 그의 이름과 걸맞은 행위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위만으로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 된 것은 아니다.

중세 기독교의 논리에 따르면 흡혈귀는 산 자의 세상에도 죽은 자의 세상에도 속하지 않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시기쇼아라의 드라큘라 백작 생가.

11세기에 들어서면서 흡혈귀들이 무덤에서 나와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떠돌았고, 그런 미신은 특히 산맥으로 둘러싸인 오지에다 문맹률이 높았던 동유럽 지역이 심했다. 바로 이런 풍토 속에서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에 관한 나쁜 소문도 가세했다. 그리고 18세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흡혈귀에 대한 소문은 전 유럽에 퍼졌으나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소동이 가라앉았다.

이 사라져가는 흡혈귀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19세기의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흡혈귀를 부활시켰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897년 발표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였다.

브람 스토커는 트란슬바니아의 역사와 풍습, 전설 등을 연구한 후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를 모델로 작품을 썼다. 그 후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대명사가 됐고 영화화되면서 우리에게 각인됐다.

또한 브라쇼브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정도 올라가면 시기쇼아라라는 도시가 나온다.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그는 이곳에서 1431년에 태어나 4년 동안 살았는데 지금 그의 생가는 레스토랑으로 바뀌어 있고 그 앞의 조그만 광장에 그의 두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중세풍의 집들이 들어선 마을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좁은 골목길을 걷노라면 나팔꽃 피어난 담장 너머로 파라솔과 의자 몇 개가 들어선 예쁜 카페들이 종종 보인다. 이런 소박한 마을 풍경과 푸근한 인심에 취한 여행자들에게는 음산한 드라큘라의 이미지조차 아련한 낭만이 되고, 그 낭만 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때문일까. 현재 시기쇼아라는 루마니아 최고의 인기 관광지다.

/여행작가

◇시기쇼아라에서 본 결혼식 풍경.

■여행 에피소드

시기쇼아라에서 결혼식을 본 적이 있다. 토요일이었는데 한국의 1960∼70년대처럼 풍선을 매단 차 몇대가 나타나더니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예복을 입은 신랑이 내렸다. 그리고 많은 친구와 친척들, 아이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 들어가 보니 시청 건물 같았다. 웬 방으로 들어가자 주례 선생 앞에 신랑 신부 그리고 부모들이 섰다. 긴 주례의 말씀도 없었고 하객들도 20여명 정도였다.

주례 선생이 뭐라고 묻자 신랑 신부는 “다(예)”라고 대답한 후 장부에 사인을 했다. 그것으로 결혼식은 끝이었다.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가 키스하자 축하하며 샴페인을 마셨다. 약 30분 정도 다과를 나누던 그들은 밖으로 나와 꽃으로 아치를 만들었고 신랑 신부가 그곳을 통과하는 동안 쌀을 던지며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옆에서 신나는 곡을 연주했다. 물어보니, 피로연은 다른 곳에서 한다는데 이렇게 결혼식이 검소하면서도 흥겨워서 부러울 정도였다.

■여행정보

▷교통:브라쇼브에서 브란성에 가려면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바르톨로메우 역까지 가서 여기서 브란성 가는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시기쇼아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생가는 걸어서 갈 수 있다.

▷숙소:브라쇼브와 시기쇼아라에는 고급 호텔부터 1박에 10여달러 하는 저렴한 숙소까지 있는데, 1박에 10달러 하는 민박집도 많다. 현지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권할 만하다.

▷음식:루마니아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죽인 ‘마마리가’다. 또 다진 돼지고기를 포도잎으로 싼 ‘사르말레’가 전통 음식이다. 관광객 상대의 식당에서 마마리가, 사르말레, 옥수수 수프, 샐러드, 오렌지 주스 등을 먹으면 약 4달러 정도 나온다.

by 100명 2007. 4. 13. 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