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체코-체스케 부데요비체·체스키 크룸로프
[세계일보 2004-10-28 16:33]
체코를 위아래 절반으로 잘랐을 때 왼쪽으로 프라하를 포함한 서부 5개주를 보헤미아 지방이라 부른다. 사방이 산과 숲으로 싸인 분지로 이곳의 주인은 원래 집시들이었다. 그런 연유로 프랑스인들은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 하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자유분방한 예술가, 방랑자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유와 낭만의 이미지가 넘쳐 흐르는 땅, 그 중에서도 남부 보헤미아 지방에는 매우 고풍스러운 도시들이 있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와 체스키 크룸로프인데, 이곳으로 가는 길, 특히 오스트리아 빈에서 올라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국경에서부터 두 량짜리 장난감 같은 기차를 타면 저수지, 예쁜 목조 가옥, 한가로이 노니는 젖소들, 사과나무들이 어울어진 보헤미아 평원이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다 그 끝에서 체스케 부데요비체라는 중세풍의 도시가 나타난다.

체스케 부데요비체는 인구가 10만명 정도로 19세기부터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에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프르제미슬 오타카라 II 광장이 있고 보헤미안 양식인 팔(八)자 모양의 박공지붕(gable roof·맞배지붕)들이 눈길을 끈다. 또한 이곳은 ‘버드와이저’의 원조인 체코의 유명한 ‘부드바’맥주의 원산지여서 값싸고 맛있는 피보(pivo·체코어로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약 25㎞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도시는 S자형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블타바강이 감싸고 있는데, 블타바 강은 보헤미아 삼림에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지나 수도 프라하를 거쳐 독일의 엘베강과 합수한다. 독일에서는 블타바강을 몰다우강이라 불러왔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의 프르제미슬 오타카라Ⅱ 광장.

블타바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도시로 들어서면 예쁜 중세풍의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동화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13세기에 만들어진 탑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16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 전망대에 서는 순간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블타바강, 도시를 한가득 메운 붉고 뾰족한 중세풍의 지붕들,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대저택과 파란 하늘을 떠가는 하얀 구름들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 앞에서 누구나 넋을 잃게 된다.

체스키 크룸로프가 마을의 모습을 갖춘 것은 8세기에서 12세기경이었다. 이곳을 처음에 다스리던 가문은 비텍 가문이었다. 그리고 1302년, 그들의 뒤를 이어 친척인 로젠베르크 가문이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16세기에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지가 된다. 그 영주들이 살던 곳이 대저택이었다. 대저택 안에는 그 당시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화려한 벽화, 가구들, 금빛 마차, 극장, 정원들이 있는데 그것 못지않게 여행자들을 감탄시키는 것은 주변의 자연이다. 파란 하늘과 강물, 하얀 햇살, 그 밑에서 카약을 타는 이들…. 그 한적한 평화 속에 푹 젖어 있다 마을 중심지로 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인구는 1만5000명이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의 발길로 어딜 가나 붐빈다. 한때,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렸던 체코의 유명한 화가 에곤 실레 박물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구경에 지친 사람들은 아담한 카페에 앉아 중앙의 넓은 스보르노스티 광장 주변에 들어선 고딕·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과 교회를 감상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로부터 벗어난 체스키 크룸로프는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현재는 프라하 다음 가는 체코의 관광지다. 이곳 건물들은 모두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건축된 것이니, 한국으로 말하면 조선시대 세종 무렵부터 정조 무렵까지다. 한국도 그 시절의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도 문득 우리 생각을 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허름한 목로주점에 사람들 북적

부드바 생맥주맛 값싸고도 좋아

◇체스키 크롬로프의 숙소와 음식점.

2002년 8월 홍수가 난 직후여서 관광객이 드문 탓도 있었겠지만, 체스케 부데요비체는 오후 5시만 돼도 인적이 드물었다. 저녁을 먹으려 해도 문을 연 음식점도 잘 안 보였다. 이리저리 헤매다 발견한 곳이 허름한 목로주점이었는데, 들어가보니 웬걸 어딜 갔나 했던 사람들이 다 주점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피보를 시켰다. 부드바 생맥주 맛은 쌉쌀하고 시원한 게 기가 막혔다. 웨이터는 레슬링 선수처럼 몸집이 큰 사내였는데, 별로 친절하지도 않았지만 매우 성실해 보였다. 생맥주 석 잔에 소고기 요리를 먹고 나니 계산서에 적힌 금액은 204코루나, 약 8000원 정도였다.

별로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계산서 위에 따로 적힌 30코루나, 1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은 뭘까? 웨이터에게 묻자 “팁 오케이?”라며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팁을 주려고 했기에 서슴없이 주었지만 조금 황당했다. 이런 현상은 후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도 겪었는데, 공산주의가 멸망한 직후인 1992년에 왔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서양의 팁 개념이 동유럽에서는 이렇게 바뀌고 있었다.

■여행정보

▷교통:체스케 부데요비체는 프라하에서 기차로 2시간30분 소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오스트리아 빈의 프란츠 요세프 역에서 국경도시 그뮌트뇌에 도착해서 기차를 갈아 타고 체코의 국경 도시 체스케 벨레니체에 도착해 다시 기차를 갈아타면 체스케 부데요비체에 도착한다. 기차표를 끊을 때 체스케 부데요비체 표를 달라면 몇 장을 함께 끊어준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체스키 크룸로프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소요.

▷숙소:체스케 부데요비체의 깔끔한 펜션은 33유로(약 5만원) 정도. 체스키 크룸로프에는 값싼 숙소에서부터 고급 숙소까지 훨씬 다양한 숙소가 많이 있다.

by 100명 2007. 4. 13.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