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프라하(Praha)
[세계일보 2004-11-04 16:06]

프라하에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숨어 있다. 달콤한 솜사탕처럼 포근한가 하면, 우울하고 알 수 없는 상징들이 도시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고색창연한 좁은 골목길에서 바라본 세상은 탈출구 없는 미로처럼 우울하나, 아름다운 구시가지의 광장이나 카를교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감미롭다.

또한 프라하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엇갈리는 경계선들이 있다. 몸과 마음이 그 경계선을 넘나들 때 견고한 현실 세계는 슬며시 허물어지면서 프라하는 뿌연 안개 속에서 환상이 된다. 그 아름답고 모호한 프라하의 정경들은 완벽한 예술품이다. 파리가 아름답되 너무 넓어 품에 안을 수 없다면 프라하는 품안에 꼭 안기는 작고 귀여운 소녀 같다.

물론 너무 환상적인 기대를 갖고 가는 여행자는 프라하역에서부터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초라한 역과 도시 외곽의 우중충한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에 지친 현지인들의 쌀쌀맞은 시선, 밤이 되면 가로등의 부족으로 어두컴컴해지는 거리를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블타바 강변의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프라하야”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프라하 여행은 대개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시작한다.

광장의 언덕 정상에는 웅장한 국립박물관이 있고 부근에는 체코를 구해낸 영웅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1968년 반소 운동 당시 희생되었던 이들을 추모하는 사진들과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구시가지다. 확 트인 광장, 파란 하늘 밑에서 뾰족하게 솟구친 틴 교회, 그 옆의 고풍스러운 킨스키 궁전, 화려한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 얀 후스의 동상 그리고 낭만적인 노천카페들이 들어선 그곳은 딴세상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구 시청사에 있는 천문시계다. 1410년 미쿨라스라는 시계공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고, 1490년 하누스라는 학자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개량된 시계인데, 매 시마다 종이 울리면 예수의 열두 제자 인형이 나타난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것을 보러 몰려들고 그 틈을 타 소매치기들도 바빠진다.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사진왼쪽), 새로운 명물인 ''댄싱빌딩''

구시가지 광장 근처의 블타바 강변에는 카를교가 있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난간에는 수많은 기독교 성상들이 있고, 거리의 예술가들은 그 밑에서 그림을 팔고 노래를 부른다.

다리를 건너 흐라드차니 언덕을 오르면 프라하성이 나온다. 지금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성 근처에는 성 비트와 성 이지 교회가 있으며 그 근처에 황금소로가 있다. 예전부터 황금 세공사들이 살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울퉁불퉁하게 포장된 30여m의 좁은 길에는 16세기 풍경 그대로 게딱지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중에 주황색 담벼락에 22라고 쓰인 곳이 카프카가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머물렀던 작업실이다. 누이동생이 마련해준 그 집에서 카프카는 외롭게 글을 썼고, 지금 그 집은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프라하에서는 늘 음악회가 열리고, 특히 여름철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공연된다. 또 교외로 나가면 1787년 모차르트가 머물며 돈 조반니를 작곡한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빌라가 있고, 그곳에는 모차르트의 편지와 악보,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프라하에서는 죽음의 흔적도 낭만적으로 보인다. 블타바 강변의 언덕에는 비셰흐라드 성터가 있고 그 근처에 체코의 예술인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묘지 입구에는 체코의 위대한 시인 얀 네루다와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의 묘가 있으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보르자크가 평화 속에 안식을 취하고 있다.

프라하에는 이렇듯 예술과 문화의 향기가 넘쳐 흐르고 그것은 과거에만 연관되어 있지 않다. 춤을 추는 것처럼 비틀어진 현재의 ‘댄싱빌딩’은 머지않아 미래의 명물이 될 것이니, 예술과 문화는 프라하에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프라하의 매력이 아닐까?

by 100명 2007. 4. 13.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