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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Vladivostok | ||
[세계일보 2004-12-02 16:03] | ||
우리에게 블라디보스토크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무식한 붉은 군대, 초라한 보따리장수들, 식료품을 사려는 긴 줄, 춥고 음산한 날씨…. 이렇듯, 옛 소련의 풍경과 공산주의가 망한 후의 외신 보도가 어우러져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의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 멀고 먼 도시였다. 하지만 ‘극동의 정복자’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러시아 도시다. 비행기를 타고 동해를 따라 북상하다 보면 2시간도 안 돼 연해주 땅이 펼쳐진다. 물결처럼 퍼지는 광대한 숲 한가운데 공항이 있고, 그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복을 입은 예쁜 러시아 여인들의 쌀쌀맞은 표정과 금발이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아, 러시아 땅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예쁜 도시다. 물론, 조잡한 물건을 파는 허름한 가게들도 많고 역 앞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여전히 서 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매우 평화스럽다. 기차역은 동화 속에 나오는 성처럼 예쁘고,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는 쪽빛 바다와 항구들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스베틀란스카야 거리에는 제정 러시아 때 세워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한가운데를 장난감 같은 전차와 트롤리 버스들이 달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박제와 이 근방에 살던 현지인들의 민속 유물, 소비에트 시절의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들이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혁명전사 광장으로 깃발과 나팔을 든 채 진격하는 역동적인 병사들의 동상이 서 있다. ◇레닌 동상 앞에서 록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이들. ◇천진난만한 러시아 아이들. ◇거리의 장터. 블라디보스토크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때 이곳에 러시아 태평양 해군기지가 생기면서 급속하게 발전했는데, 공산주의 혁명 직후에 미국과 영국, 일본군이 상륙하여 반혁명 러시아 세력인 백군을 지원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러시아인들은 늘 이런 침략에 시달렸다. 몽골인들의 침략, 나폴레옹의 침략, 히틀러의 침략…. 그러나 어느 나라나 그렇듯 그들 또한 힘을 갖게 되면서 끝없는 팽창 정책을 추구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 시기에 만났었다. 제정러시아의 확장을 외치던 그들을 구한말 시대에 만났고, 소비에트 공산혁명을 외치던 그들을 해방 후에 만났다. 그래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러시아인들의 이미지는 침략적이고 팽창적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도 외국에 늘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려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우리의 흔적도 배어 있다. 항일 독립군들은 볼셰비키와 백군들 싸움에서 볼셰비키를 도와 1919년 말 그들의 승리에 일조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성장했고 서북 변두리 언덕의 신한촌(新韓村)에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한때 거주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밀려난 백군, 즉 황실과 귀족들은 중국의 하얼빈으로, 상하이로 도망가게 되고 몰락한 그들의 딸들은 생계를 위해 술집에 드나들기도 했다. 그들이 백군에 속해 있었기에 백계 러시아인이란 용어가 생겨났고 우리들에게도 백계 러시아 여인의 미모가 다소 과장되게 전달됐다. 원래 백러시아란 옛 소련 해체 후 독립한 벨로루시의 전 국가 이름이었다. 그들의 흰 피부와 흰 의상, 흰 집으로 인해 그렇게 불렸다는데, 우리는 백러시아와 백계 러시아를 혼동해서 쓰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무얼 보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런 역사가 서린 고풍스러운 골목길을 걸어보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아무르만을 산책하며, 가끔 러시아인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그들의 체취에 젖어보는 것이 큰 만족을 준다. 그리고 밤늦게 카페에서 러시아인과 함께 앉아 홍당무로 만든 새콤한 보르슈 수프에 독한 40도 보드카를 마시며 러시아 음악을 듣는 순간이야말로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탔을 때, 1등칸 좌석 밑에서 팔자 좋게 누워 있는 송아지만한 개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뒤 러시아를 여행하며 아침과 낮에는 물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러시아인들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개를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거리에서 마주친 러시아 여인들이 하나같이 모델처럼 멋진 외투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높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고급 옷을 입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그 의문은 풀렸다.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외투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다. 그리고 소비재가 아니라 내구재이기도 하다. 대개 결혼할 때 평생 입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기에 큰돈을 들여 좋은 것을 마련하는 것이다. ■ 여행정보 ▲항공편:대한항공과 블라디보스토크 항공이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운항한다. ▲비자:여행으로 가는 사람은 관광비자를 얻어야 하는데 초청장이 필요하다. 여행사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된다. ▲거주등록제도:일단 러시아에 가면 3일 이내에 오비르란 관청에 가서 비자 등록을 해야 한다. 이걸 안 하면 나중에 출국할 때, 혹은 길거리에서 경찰에 검문당했을 때 문제가 된다. 대개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에 수수료를 내면 대행해서 받아준다. 혹은 자신을 초청해준 여행사에 수수료를 주고 부탁하면 된다. 또 각 도시에 들를 때마다 3일 이내에 그 도시의 오비르에 가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호텔에 묵으면 즉시 호텔 측에서 처리를 해준다. 단, 값싼 호스텔에서 묵거나 민박할 경우 개인적으로 알아서 해야 하는데, 여행사에 수수료를 내고 부탁하거나 3일 이내에 그 도시를 떠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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