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러시아 하바로프스크 | ||||
[세계일보 2004-12-09 16:45] | ||||
하바로프스크란 이름은 러시아의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동방의 끝까지 탐험했던 이유는 모피 때문이었다. 9세기 말 러시아의 기원이 된 나라 키예프 루시가 터를 잡았으나 13세기 초 몽골에 굴복해 러시아인들은 약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그 치욕을 털어내며 일어선 나라가 모스크바공국인데, 16세기경 우랄산맥 서쪽에 있던 시비리란 나라로부터 담비·다람쥐 가죽 등을 공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시비리가 의무를 게을리 하자 이 지역을 정벌한다. 이렇게 시작된 시베리아 정복은 17세기 초 로마노프 왕조에 와서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는데, 그 전위대는 사냥꾼과 모피류를 수집하던 상인들과 민병들이었다. 하바로프 역시 기업가적인 야망을 안고 17세기 중반 아무르 강변을 탐사하며 원주민을 점령했다. 이렇게 해서 아무르 강변에 만들어진 도시가 하바로프스크다.
◇아무르강. 현재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지방의 최대 도시지만 첫발을 내디디며 낡은 아파트와 목조 건물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 등을 보는 순간 낙후된 우리의 1960∼70년대 풍경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바로프스크는 전원풍의 낭만적인 도시이고 23개의 대학과 수많은 중등교육기관, 전문기술학교가 있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코 아무르강이다. 길이 4350㎞로 동북아시아 최대의 강인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헤이룽강이라고 부른다. 아무르강은 바다 같은 강이다. 가물가물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러시아인들은 산책을 즐기는데,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바로프스크 여인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강 근처의 향토박물관에는 아무르 호랑이와 곰, 순록들의 박제, 아궁이와 솥이 걸린 부뚜막, 마루가 있는 집, 나무 탈 등 낯익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아무르강은 만주족의 무대였고 먼 옛날엔 우리의 무대이기도 했다. 또 적군박물관에는 극동지방에서 벌어졌던 일본과 중국, 소련군의 전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서 식료품을 파는 사람들. 하바로프스크 중심지는 레닌광장에서 콤소몰 광장까지 이어지는 아무르스키 거리다. 이곳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많다. 그런데 문이 엄청 두껍고 창문이 없거나 조그마해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방인은 무슨 건물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개 백화점이나 상점인데, 소련이 망할 때와는 달리 안에는 풍부한 식료품과 상점들이 있어 열기가 후끈하다. 그리고 거리에서 깜찍한 제복을 입은 여인들이 양담배 판촉 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러시아는 완전히 공산주의를 털어버리고 자본주의화되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몽골 접경지역인 울란우데까지 약 54시간이 걸린다. 이 길에는 거대한 타이가 숲이 펼쳐지는데, 러시아의 시인 안톤 체호프는 타이가의 매력을 이렇게 읊었다. “타이가의 매력은 우뚝 솟은 거목이나 깊이 모를 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새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끝없는 넓이에 있다.” 과연 그랬다. 인도 대륙을 다 덮을 수 있다는 그 겨울의 눈 덮인 숲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횡단 철도 인근의 마을. 그 길에는 우리 민족의 흔적도 있었다. 중간에 벨로고르스크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얼마 안 떨어진 아무르 강변에 블라고베시첸스크라는 도시가 있다. 그 근방에서 자유시 참변 혹은 흑하사변이란 우리 항일 무장독립투쟁사에서 가장 처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독립군은 볼셰비키 쪽에 가담해 일본군과 싸웠으나, 후에 일본군과의 확전을 원치 않은 볼셰비키 측은 우리 독립군을 무장해제하려 한다. 이를 거부하자 1921년 6월 28일 볼셰비키는 우리 독립군을 학살했다. 사망 272명, 익사 31명, 행방불명 250여명, 포로 917명이었다. 시베리아를 그냥 달리면 밋밋하다. 그러나 단조로운 풍경에 지칠 때쯤 이런 책을 읽고 역사를 회상하며 러시아 음악을 듣노라면 애환과 달콤함이 묘하게 결합한 낭만적인 길이 된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검문을 많이 당한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오전 4시쯤 하바로프스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경찰이라며 제복을 입은 이가 다가와 여권을 보자고 요구했다. 여행자들은 러시아에 도착하거나 혹은 어떤 도시에 다다른 후 3일 이내에 오비르란 관청에 가서 도장을 받아야 하는 거주등록제가 있는데, 나는 다 해결했으므로 자신만만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다음에 기차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순간 이 사람이 정말 경찰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휴가나온 군인이 여행자를 겁줘서 뭔가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브이, 크토 에타(당신, 누구야?)” 서투른 러시아말로 크게 외치자 이 사내는 얼떨결에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내가 보면 아는가? 그러나 나는 기세를 몰아 그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시늉을 했다. 그가 정말 경찰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면서 생각하니 ‘도대체 지금 내가 어딜 가서 뭘 하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고 표를 보여주었다. 난생 처음 시민에게 이런 거친 대접을 받은 이 경찰은 기가 푹 죽은 채 표를 돌려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 동료와 함께 순찰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가 정말 경찰임을 안 순간 아찔했다. 다행히 그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가 만약 거친 사내였다면 어땠을까? 남의 나라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기에 부렸던 만용이었다. |
[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러시아 하바로프스크 | ||||
[세계일보 2004-12-09 16:45] | ||||
하바로프스크란 이름은 러시아의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동방의 끝까지 탐험했던 이유는 모피 때문이었다. 9세기 말 러시아의 기원이 된 나라 키예프 루시가 터를 잡았으나 13세기 초 몽골에 굴복해 러시아인들은 약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그 치욕을 털어내며 일어선 나라가 모스크바공국인데, 16세기경 우랄산맥 서쪽에 있던 시비리란 나라로부터 담비·다람쥐 가죽 등을 공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시비리가 의무를 게을리 하자 이 지역을 정벌한다. 이렇게 시작된 시베리아 정복은 17세기 초 로마노프 왕조에 와서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는데, 그 전위대는 사냥꾼과 모피류를 수집하던 상인들과 민병들이었다. 하바로프 역시 기업가적인 야망을 안고 17세기 중반 아무르 강변을 탐사하며 원주민을 점령했다. 이렇게 해서 아무르 강변에 만들어진 도시가 하바로프스크다.
◇아무르강. 현재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지방의 최대 도시지만 첫발을 내디디며 낡은 아파트와 목조 건물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 등을 보는 순간 낙후된 우리의 1960∼70년대 풍경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바로프스크는 전원풍의 낭만적인 도시이고 23개의 대학과 수많은 중등교육기관, 전문기술학교가 있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코 아무르강이다. 길이 4350㎞로 동북아시아 최대의 강인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헤이룽강이라고 부른다. 아무르강은 바다 같은 강이다. 가물가물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러시아인들은 산책을 즐기는데,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바로프스크 여인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강 근처의 향토박물관에는 아무르 호랑이와 곰, 순록들의 박제, 아궁이와 솥이 걸린 부뚜막, 마루가 있는 집, 나무 탈 등 낯익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아무르강은 만주족의 무대였고 먼 옛날엔 우리의 무대이기도 했다. 또 적군박물관에는 극동지방에서 벌어졌던 일본과 중국, 소련군의 전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서 식료품을 파는 사람들. 하바로프스크 중심지는 레닌광장에서 콤소몰 광장까지 이어지는 아무르스키 거리다. 이곳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많다. 그런데 문이 엄청 두껍고 창문이 없거나 조그마해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방인은 무슨 건물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개 백화점이나 상점인데, 소련이 망할 때와는 달리 안에는 풍부한 식료품과 상점들이 있어 열기가 후끈하다. 그리고 거리에서 깜찍한 제복을 입은 여인들이 양담배 판촉 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러시아는 완전히 공산주의를 털어버리고 자본주의화되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몽골 접경지역인 울란우데까지 약 54시간이 걸린다. 이 길에는 거대한 타이가 숲이 펼쳐지는데, 러시아의 시인 안톤 체호프는 타이가의 매력을 이렇게 읊었다. “타이가의 매력은 우뚝 솟은 거목이나 깊이 모를 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새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끝없는 넓이에 있다.” 과연 그랬다. 인도 대륙을 다 덮을 수 있다는 그 겨울의 눈 덮인 숲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횡단 철도 인근의 마을. 그 길에는 우리 민족의 흔적도 있었다. 중간에 벨로고르스크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얼마 안 떨어진 아무르 강변에 블라고베시첸스크라는 도시가 있다. 그 근방에서 자유시 참변 혹은 흑하사변이란 우리 항일 무장독립투쟁사에서 가장 처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독립군은 볼셰비키 쪽에 가담해 일본군과 싸웠으나, 후에 일본군과의 확전을 원치 않은 볼셰비키 측은 우리 독립군을 무장해제하려 한다. 이를 거부하자 1921년 6월 28일 볼셰비키는 우리 독립군을 학살했다. 사망 272명, 익사 31명, 행방불명 250여명, 포로 917명이었다. 시베리아를 그냥 달리면 밋밋하다. 그러나 단조로운 풍경에 지칠 때쯤 이런 책을 읽고 역사를 회상하며 러시아 음악을 듣노라면 애환과 달콤함이 묘하게 결합한 낭만적인 길이 된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검문을 많이 당한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오전 4시쯤 하바로프스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경찰이라며 제복을 입은 이가 다가와 여권을 보자고 요구했다. 여행자들은 러시아에 도착하거나 혹은 어떤 도시에 다다른 후 3일 이내에 오비르란 관청에 가서 도장을 받아야 하는 거주등록제가 있는데, 나는 다 해결했으므로 자신만만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다음에 기차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순간 이 사람이 정말 경찰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휴가나온 군인이 여행자를 겁줘서 뭔가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브이, 크토 에타(당신, 누구야?)” 서투른 러시아말로 크게 외치자 이 사내는 얼떨결에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내가 보면 아는가? 그러나 나는 기세를 몰아 그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시늉을 했다. 그가 정말 경찰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면서 생각하니 ‘도대체 지금 내가 어딜 가서 뭘 하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고 표를 보여주었다. 난생 처음 시민에게 이런 거친 대접을 받은 이 경찰은 기가 푹 죽은 채 표를 돌려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 동료와 함께 순찰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가 정말 경찰임을 안 순간 아찔했다. 다행히 그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가 만약 거친 사내였다면 어땠을까? 남의 나라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기에 부렸던 만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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