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부랴트 울란우데
[세계일보 2004-12-16 16:33]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따라 달리다 보면, 베이징에서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 오는 중국횡단철도(TCR)와 만나는 지점이 시베리아 한복판에 나타난다.

부랴트의 수도인 울란우데로,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마주치는 얼굴들이 우리와 매우 흡사해서다. 울란우데에 사는 부랴트족은 유전학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부랴트는 현재 러시아 연방에 속해 있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될 때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은 완전히 분리되었지만 러시아 밑에 있던 부랴트와 하카스, 체첸 등의 자치공화국들은 ‘자치’를 떼어내면서 공화국으로 격상되었고 이들이 모여 새로운 러시아 연방을 만들었다.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이슬람을 믿는 체첸은 완전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철저히 러시아에 예속된 부랴트는 현재 러시아 연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썰매를 타고 노는 아이들.

울란우데는 교통 요지답게 시내는 활발하다. 그러나 중심지를 벗어나 몇십분만 외곽으로 걸어나가면 목조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러시아인들과는 달리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시내 민속박물관에는 티베트 불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울란우데에서 30㎞ 정도 떨어진 이볼긴스키 다산이란 민속촌에 가면 멋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버스를 타고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30분 정도 달리면 목조주택이 간간이 들어선 곳에 우뚝 서 있다. 화려한 법당 안에는 불상과 함께 14대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모셔져 있는데, 평일에는 승려 서너 명이 간소한 의식을 치르지만 특별한 날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모여 거대한 의식을 치른다. 이곳은 러시아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으로 부랴트족의 불교도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울란우데의 외곽에는 야외 민속박물관도 있다. 넓은 벌판 한가운데는 유목민들의 거주지인 게르(몽골식 이동식 천막)와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있고, 올루스(ooloose)라는 통나무로 만든 근세 부랴트 전통가옥도 있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의 개혁을 거부하고 17세기 초에 시베리아로 와 숨어 살던 보수적인 정교회 사람들의 집도 전시되어 있다. 어찌나 꼭꼭 숨어 살았던지 이들은 1980년 발견되었을 때, 레닌이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약 350년동안 세상을 모른 채 자기들끼리만 살았던 것이다.

◇야외 민속박물관에 있는 게르.

이곳에는 솟대도 있다. 기둥 위에 나무를 깎아 만든 새를 얹어 놓은 한국의 솟대와 똑같다. 그곳에 쓰인 팻말의 설명을 소개하면 이렇다.

“예벤크족(초기 퉁구스족)은 북쪽의 툰드라와 타이가 지역을 개척한 종족이다. 러시아에 모두 2만5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그중 1700여명이 이곳 부랴트에 살고 있다. 예벤크족에게 우주는 3개의 정신세계로 형성되어 있다. 다르페(darpe)는 하늘의 세계를 의미하며 샤먼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하늘의 세계는 곰과 물고기로 형상화되고 오난(onan)은 악과 죽음의 세계, 땅의 세계로 늑대와 여우로 표현된다. 이 두 세계 사이의 중간세계를 나타내는 정신은 무그데네(mugdene)라 하며 이것은 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즉 이들에 의하면 솟대는 하늘과 땅의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세계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솟대는 세계의 무질서와 부정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하늘에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었으니, 형상은 물론 의미에서도 비슷하지 않은가?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난 솟대를 바라보노라면, 땅 위에서 힘든 현실을 살아가며 새를 통해 하늘의 축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언어와 의미 이전에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느낌을 통해서다. 그것은 아마도 이곳을 거쳐왔던 우리 조상의 추억이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숙소

고급 호텔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시내 중심지 광장에 있는 호텔 바이칼(거스티니치 바이칼)이 싸고 편리하다. 8달러 정도.

▲교통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는 이볼긴스키 다산으로 가는 버스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다. 약 40분 걸리는데 버스는 오전 7시10분, 낮 12시40분, 오후 5시 등으로 뜸하다. 야외민속박물관(에트노그라피체스키 무제이)은 바이칼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8번 버스를 타면 된다. 20분 정도 가다 내려서 숲길을 따라 20분쯤 걸어들어가면 나온다.

■여행 에피소드

울란우데는 많은 여행자들이 거쳐가는 곳이어서 종종 간판에 쓰인 영어도 눈에 띄었다. 카페라는 글자를 보고 허름한 건물 2층으로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아무 인테리어도 없는 조그만 공간으로, 보드카나 생맥주를 셀프 서비스로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부랴트족이어서 나의 얼굴도 그렇게 튀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복장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이란 표시가 났나보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그들의 눈초리를 피하며 구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여종업원이 와서 서투른 영어로 ‘저기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합석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전했다. 외로웠던 나는 흔쾌히 합석했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남녀 커플이었는데 한국인과 얼굴이 똑같았고, 특히 남자는 나의 고교 동창생 얼굴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는 머리에 노란 염색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의대생으로 한국에 매우 관심이 있었다.

시베리아의 한복판이어서 오지일 줄 알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유행을 다 알고 있었다. 한동안 이데올로기 밑에서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시키며 이제 힘차게 달리고 싶어했다. 교통의 요지여서 수많은 외국인이 드나들기도 하는 이곳은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에 엄청난 욕망과 에너지에 휩싸인 도시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란우데 거리.

by 100명 2007. 4. 13.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