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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투바 키질 | ||
[세계일보 2005-01-06 16:54] |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곳이 투바 공화국의 수도 키질(Kyzil)이다. 그곳에 아시아의 중심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이끌렸다고 한다. 그는 10여년 동안 그곳에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88년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3년 후 소련은 해체됐고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땅이 됐다. 투바 공화국의 수도 키질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우선 하카시야 공화국의 수도 아바칸으로 간 후,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탔다. 11월 중순 영하 20도의 추위 아래서 덜덜 떨며 버스를 타니 시트는 누더기처럼 낡고 스팀조차 들어오지 않아 달리는 내내 발가락을 꼼지락거려야만 했다. 중간에 들른 화장실은 담도 없이 탁 트여 있고 소변이 얼어 만들어진 누런 작은 언덕이 있었다. 거대한 사얀산맥을 넘는 동안 엄청난 폭설이 내렸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설차들이 부지런히 다녀 버스운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얀산맥을 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버스는 검문소에 도착했다. 검문하던 군인은 한국인과 얼굴이 비슷했다. 투바인 역시 몽골리언으로 전혀 낯설지 않다. 투바인들은 스탈린 때도 라마교를 국가의 종교로 채택할 정도였는데 소련이 망하던 무렵에 폭동이 일어나서 약 3000명의 러시아 기술자들이 투바 공화국을 떠난 적도 있다. 투바 공화국은 인구 밀도가 아주 낮다. 면적 17만㎢에 사는 사람은 약 30만명. 한반도 전체 면적이 약 22만㎢인데 남북한 전체 인구가 70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곳은 텅 빈 곳이나 마찬가지다. 투바 지역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흉노족이 지배했고 6세기 돌궐족, 8세기 위구르족, 13세기부터 몽골족, 18세기부터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지금은 러시아 연방에 속해 있다. 투바 공화국의 수도 키질은 인구 9만5000명으로 한나절만 걸어도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다. 낮고 오래된 건물, 초라한 행인들의 옷차림으로 보면 한눈에 이 지역이 사얀산맥 속의 오지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한글이 새겨진 새우 스낵과 한국산 신발들이 있고 투바족 청년들은 ‘카레이스키, 카레야 넘버 원’을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높이 쳐들 정도였다. ◇키질의 투바족. ◇키질에서 만난 샤먼. 마을 중심지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예니세이강은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강 한가운데는 북극의 빙하처럼 얼음덩어리가 흘러가고 있었고, 이미 얼어버린 강가에서는 사내들이 얼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시아 중심 기념비는 예니세이강을 내려다보며 강변에 우뚝 서 있었다. 단이 있고 커다란 지구본 위에 뾰족한 탑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이 기념비는 19세기에 이곳을 여행했던 별난 영국 여행자가 세운 것으로, 나름대로 계산을 한 결과 이곳을 중심으로 잡았다고 한다. ◇우리 어린이와 비슷한 생김새의 투바족 어린이.<사진왼쪽> 아시아 중심 기념탑. 러시아나 서방의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변방 중의 변방이지만 이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던 유목민들에게는 변방이 아니라 중심지였다. 이곳은 이제 관광 명소가 되었고 결혼식을 올린 현지의 신혼부부들이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우리 민족과 관련된 흔적도 있다. 우연히 예니세이 강변을 거닐다 서낭당처럼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알록달록한 천을 세워 놓은 곳을 발견했다. 그 옆에 집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 보니 무당집이었다. 무당들은 향을 피워놓고 찾아온 여자 손님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있었다. 마침 남자 무당, 즉 박수가 있었는데 그는 친절하게도 청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의식하는 모습을 재현해주기도 했다. 자료에 의하면 1931년 투바 공화국에는 725명의 샤먼이 있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반반이었다고 한다.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접촉하여 미래를 예언하고 병을 고치는 샤머니즘의 발원지가 바로 이 사얀산맥이라는데, 의식은 물론 생김새까지 똑같은 투바족을 보며 우리 샤머니즘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라는 느낌이 들고 말았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키질의 중심지에도 극장이 있다. 표를 끊고 들어가는데 할머니와 아이 그리고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 같이 들어가 보니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한참 지나 어둠에 눈이 익은 후 보니 창문도 없이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한 40평 정도 되나? 거기에 긴 나무 의자 몇 개 갖다 놓고 나머지는 그냥 바닥에 앉게 돼 있었다. 화면은 큰 비디오 화면 정도였고 거기서 상영되는 영화는 인도영화였다. 화면에서는 죽죽 비가 내리는데, 재미있는 것은 변사가 있다는 것. 녹음된 러시아 남자 변사의 목소리는 남녀노소의 역할을 혼자서 다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와 얘기하는 게 재미있었는데 아이는 간단한 영어를 곧잘 했다. 한참 얘기를 하다 중간에 나왔는데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아무 난방 장치가 없는 그곳에서 한두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떠나는 나에게 ‘다스비다니야(안녕히 가세요)’를 속삭이는 아이들의 마음씨가 따스하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여행정보 ▲교통:아바칸에서 키질까지 가는 버스는 예매하는 것이 좋다. 오전 8시30분에 떠나며 약 7달러로 8∼9시간 소요된다. 버스표는 기차역 안의 창구에서 팔며 버스는 역 앞에서 출발한다. 키질에서 아바칸 가는 버스는 오전 6시 50분에 출발하는데 예매하는 것이 좋다.(승객이 없는 경우 대형버스가 미니버스로 바뀌기도 하며, 시간도 정확히 지켜지지 않는다.) ▲숙소:몽굴렉 호텔, 키질 호텔 등이 시내에 있는데 외국인은 잘 받지 않는 분위기고 쌀쌀맞으며 만원인 경우가 많다. 예니세이 강변의 호텔 코테츠, 호텔 오두겐 등이 싸고도 쾌적하다. 호텔 코테츠의 경우 약 7달러를 받는다. ▲치안:여름 밤에 술 취한 청년들이 가끔 행패를 부린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순박한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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