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상트 페테르부르크
[세계일보 2005-01-20 16:27]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네바강이 흐르는데 네바는 핀란드어로 늪이란 뜻이다. 이 늪 위에 도시를 세운 이는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 표트르 대제였다. 젊은 시절 포병 상등병으로 위장한 채, 서유럽 사절단에 참가해 직접 유럽문명을 체험한 그는 돌아와 개혁의 화신이 됐다. 러시아정교에서 신성시했던 턱수염을 스스로 깎은 후, 주변 관리들의 턱수염을 직접 면도기로 깎아 주었다. 그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지 말라는 등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목의 교훈서를 발간할 정도였다.

유럽풍의 새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올랐던 그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수도를 건설하는 동안 열악한 기후 조건으로 인해, 약 3만명의 노동자가 죽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뼈 위에 세워진 도시’란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졌으나 현재는 러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됐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도로는 약 4㎞에 달하는 네프스키대로다. 시골에서 올라와 심한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꼈던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아, 꿈엔들 이 네프스키 거리를 믿지 말지어다. 모든 것이 허위이고, 모든 것이 환영이며, 모든 것이 보기와는 다른 것이다.”

그 네프스키대로는 12월 초에도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해는 오전 9시나 돼서야 떴고 오후 3시만 되면 어둠이 깔렸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순간의 네프스키대로는 문득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의 무대 같았고, 가끔은 어디선가 볼셰비키 혁명군의 총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러시아 귀족의 전통 복장.

네프스키대로에는 화려한 백화점, 아름다운 이사크 러시아정교 사원, 한국 기업들의 간판, 미국의 패스트푸드점들이 들어서 있고 2월 혁명의 현장인 궁전 광장도 있다.

1917년 2월, 영하 20도의 살벌한 추위 속에서 식량 배급을 받던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식량이 없다며 ‘니예트’라고 외친 병사의 말에 흥분해서 궁전 광장으로 행진했다. 결국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물러나고 케렌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2월 혁명은 그해 10월 레닌과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공산주의 혁명으로 완결된다. 이 역사의 현장인 궁전광장에는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다. 300여개의 방에 전시된 소장품은 약 300만점인데, 작품 한 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잠 안 자고, 쉬지 않고 볼 경우 2083일이 걸리니 햇수로 계산하면 5년 8개월이다.

이 어마어마한 박물관 못지않게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예술가들이 남긴 흔적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구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시인 푸슈킨의 집은 운하 옆에 있다. 푸슈킨은 4개월 동안 이곳에서 살다 죽었는데 창 밖으로 파란 운하가 보이는 낭만적인 집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썼던 5층 하숙집.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위대한 문호 도스토예프키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하철 센나야역에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대지에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그의 하숙집이 있다. 운하 근처 노란색 건물 5층의 어느 방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1864년부터 약 3년간 머무르며 ‘죄와 벌’을 썼다고 한다.

그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박물관은 지하철 도스토예프스키역 근처에 있다. 그는 1881년 1월28일 오후 8시36분 이곳에서 숨을 거뒀고, 네프스키대로 끝에 있는 타흐빈묘지에 묻혔다. 정치범으로 사형 직전까지 갔었고 간질병, 도박, 변태성욕 등에 시달리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제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과 함께 평화롭게 쉬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못지않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은 바로 사라져간 것들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역시 사라져간 러시아 예술가들의 흔적에 의해 아름다운 도시로 우뚝 서 있었다.

여행작가

◇네프스키대로의 러시아정교회 사원.

■여행 정보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의 현장을 찾아가려면 일단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센나야 역에서 내려야 한다. 바로 나오면 센나야 광장이고, 그곳에서 10시 방향으로 걸어가다 운하를 건너면 노란색 5층 건물이 보인다. 현재 이곳은 박물관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을 찾아가려면 지하철 4호선을 타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이 보인다. 근처에 꽃집이 보이는데 꽃집을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져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식료품 파는 시장이 나오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허름한 건물 모서리 지하에 ‘도스토예프스키무제이(박물관)’라고 씌어진 팻말이 보인다.

푸슈킨의 집은 지하철 3호선의 네프스키 프로스펙트 역에서 내려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산책하다 보면 오른쪽에 보인다.

■여행 에피소드

예술가 동상앞 꽃 천지

삶 남루해도 마음은 풍성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언제, 어디서나 낭만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가거나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밤에는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했고 가끔 구걸하는 이들도 만나게 됐다. 기차 교외선의 바닥이나 문이 낡은 목조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았고,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가장 부럽고 감탄스러운 것은 지하철역 중에 푸슈킨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기리는 ‘푸슈킨카야’, ‘도스토예프스키카야’ 등이 있다는 점이다. 역 안, 혹은 역 밖에 있는 그들의 동상 앞에는 늘 꽃다발이 바쳐져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렇게 꽃을 좋아했고 예술가들을 흠모했다. 비록 그들의 삶은 남루했지만 마음이 풍성해보이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어느 역 대합실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대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성을 우울한 미소(depressed smile), 우울한 희망(depressed hope)이라 했다. 그래서 그럴까? 겨울에 바라본 그들의 겉모습은 우울해 보였지만 나는 그 속에 흐르는 따스한 미소와 희망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by 100명 2007. 4. 13.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