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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모스크바 | ||||
[세계일보 2005-01-27 16:27] | ||||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여 모든 게 빠르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빠르며 지하철 플랫폼은 한국보다 두 배가 깊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두 배나 빠르다. 그 빠름의 물결을 타고 모스크바는 상품광고로 뒤덮여 있다. 대부분 수입품 광고이고 그 중의 많은 부분이 한국 제품들이다. 여행자들의 눈길을 가장 끄는 것은 역시 붉은 광장이다. 붉은 광장은 크렘린 궁 앞의 광장으로 크렘린 성벽과 굼 백화점, 역사박물관, 성 바실리 사원 등에 둘러싸인 폭 130m, 길이 695m의 포근하고 아름다운 광장이다. 붉은 광장에는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크라스나야’라는 러시아말은 붉다는 뜻도 있지만 어원으로 보면 아름답다는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붉은 광장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단연코 양파처럼 올라간 돔과 아름다운 색깔이 조화를 이룬 성 바실리 사원이다. 1562년 이 사원을 만든 사람은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4세였다. 당시 덕이 높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바실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반 4세는 용감한 차르였지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친위대 오프리치니나 사람들은 국가의 반역자들을 모두 물어뜯어 쓸어버리겠다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말의 안장에는 개의 머리와 빗자루를 달고 다녔다. 그 때문에 이반 4세는 ‘이반 공포제’라 불렸고 성 바실리 사원이 만들어진 후,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옆에는 크렘린 궁이 있다. 한때 음모와 음흉의 대명사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관광지다. 원래 목조로 만들어졌으나 1363년 하얀 돌로 재건축됐다. 그 후 15세기에 이르러 수많은 교회와 성벽이 만들어졌고 17세기에 이르러 차르가 이곳에 머물게 된다. 1872년 나폴레옹 침입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후 개축한 모습이 현재의 크렘린이다.
◇(왼쪽부터)톨스토이 동상. 크렘린 궁 안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사원. 아래 사진은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러시아정교회 사원. 크렘린 궁 안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 크렘린 궁 안에는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는 세계 최대인 차르의 대포가 있고, 한 번도 울려본 적이 없다는 무게 202t의 깨진 종이 있다. 또한 수많은 정교회 사원과 진기한 무기, 왕관 보석들이 전시된 무기고 박물관 등이 있는데 이곳에는 구한말 우리의 흔적도 서려있다. 1896년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대관식을 했을 때 대한제국의 민영환, 윤치호 등의 일행이 이곳에 왔다. 그러나 이들은 안에 들어가질 않았다. 갓을 벗어야 했지만, 그들은 갓을 벗기를 거부하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크렘린 궁의 맞은편에 있는 굼 백화점에는 1000개 이상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한때 이곳은 질 나쁜 상품과 긴 줄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수입명품들을 팔고 있다. 러시아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보고 싶으면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32㎞ 떨어진 고르키 레닌스키에로 가면 된다. 이곳에서 레닌은 말년을 보내다 1924년 1월21일 뇌경색으로 죽었다. 혁명이 성공했을 때 그의 나이 47살이었고 죽었을 때가 54살이니, 그가 혁명의 열매를 맛본 기간은 약 7년 정도였다. 그나마 말년은 병에 시달렸는데 그가 살던 방과 정원 등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인생무상, 정치무상을 느끼게 된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톨스토이 박물관도 있다. 톨스토이는 모스크바를 싫어했지만 부인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곳에서 살았다. 2층 집에는 조그만 방이 매우 많다. 용도별로 나뉘어 있는데 세어보니 약 18개나 된다. 톨스토이는 이곳에서 ‘부활’ 등의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빈민 실태조사를 하며 종교·사회 활동에 더욱 심취했고, 결국 가출했다가 삶을 마감했다. 모스크바의 매력은 이런 역사나 문화의 흔적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있는 것 같다. 이제 서방을 향해 활짝 문을 열고,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달리고 있는 그들이 가끔 각박하고 쌀쌀맞게 보여도 그들의 삶을 엿보는 즐거움이 모스크바에는 있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시비걸며 때리는 스킨헤드족에 죽기살기로 싸워 출국하던 날 나는 스킨헤드족에게 얻어맞았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렀다면 당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간 후, 그곳에서 공항행 미니 버스를 타려다 생긴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가던 중에 갑자기 누군가 내 뒤통수를 세게 갈겼다. 돌아보니 머리를 빡빡 깎고 가죽점퍼를 입은 친구가 무리와 함께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눈앞에 스치는 가족들 생각을 하며 꾹 참고 돌아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런데 지상에 거의 다 왔을 때쯤 그 녀석이 쫓아와 배낭을 밀며 계속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마침내 역에서 나오자 2명이 나에게 발길질을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나는 배낭을 벗어던지고 싸우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빙판길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일까, 나는 그 녀석들을 흠씬 패줄 수 있었다. 어느 중년 사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 녀석들은 아마도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 만큼 나는 분노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부들부들 떨렸다. ‘못난 녀석들…, 자신들의 불만을 외국인들에게 풀다니.’ 여행길에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낭만을 누리다 보면 종종 이런 위험이 다가오는데, 특히 모스크바에서는 밤거리나 외진 곳은 가급적이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여행정보
▲고르키 레닌스키:지하철 2호선 남쪽의 도모데도브스카야 역에서 내려 439번 버스를 타면 된다. 약 25분 후에 ‘레닌무제이(레닌박물관)’란 곳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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